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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집전

기사승인 21-04-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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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영집 유영기 47호 궁시장

소개되는 자료는 국가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보유자 유영기의 2020 공개행사(파주 영집궁시박물관) 도록 표지와 서문입니다.

archerynews@gmail.com

2020 영집전


劉氏는 얼굴이 가무잡잡하였다. 자그마한 키에 날카로운 눈매, 가벼운 들창코에 살짝 곰보였다. 金村邑 밖 높직한 언덕빼기에 선 射亭 아래기슭 나직한 草家에 살고 있다. 기둥이 팔뚝만한 그런 허술한 집이었으나, 뜰에 닭의 벼슬 꽃이랑 가을꽃들이 조심스레 피어있어 환했다. 어둑한 집안은 가는대랑 부레풀이 끓는 도가니랑이 어질러 온 집안이 화살 만들기에 매달려 있었다. 劉氏內外와 二十六歲 난다는 그의 외아들 內外하여 하루 十七,八時間 勞動을 한다는 것으로, 모두 다 얼굴에 疲勞의 빛이 있었다.
고동색 마고자를 입은 劉氏는 『이 장난질을 시장한 지가 十八歲 때부터였습니다』고 自讚인지 自嘲인지 모를 무표정으로 말했다.
- 1961년 2월 3일 한국일보 '인간문화재를 찾아서 箭匠 劉福三편'의 탐방기사 중에서 -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도 화살을 만들었다. 난 그렇게 대대로 화살을 만드는 것을 가업으로 잇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탓인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슬하에서 심부름처럼 시작한 일이 한평생 내 삶이 되었다. 그런데 이 짓거리가 내 대에서 그치칠 않는다. 다시 아들이, 손주가 그리고 손녀가 이 장난질을 배워 익히고 있다. 아버지는 이 일을 장난질이라고 하셨다. 십 대 소년에서 시작한 일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놓지 못하던, 그 길의 끝에서 꺼낸 '장난질'은 자찬이었는지 자조였는지 나는 묻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장난질은 어디에서 그칠 것이며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 2015년 8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2015 영집전'에서 -

국궁신문

<저작권자 국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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