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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문화유산, 남한산성 이위정기(以威亭記)

기사승인 21-05-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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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인문학의 시작-사정기문(射亭記文)

활터 인문학의 시작-사정기문(射亭記文)
 
 이위정은 순조17년(1817) 광주 유수 겸 수어사 심상규(沈象奎, 1766년 ~ 1838 년)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인조가 병자호란 (1636년) 당시 40 여 일간 청나라에 대항하여 항전을 하던 역사적 현장인 남한산성의 행궁 안에 위치한다. ‘이위(以威)’란 원래 ‘활과 화살로써 천하를 위압 한다’는 뜻이다. 사정을 창립한 심상규는 ‘이위(以威)’가 원래의 뜻을 초월하여 성내(城內) 백성들의 ‘인의(仁義)와 충용(忠勇)’이 결부됨으로서 더욱 ‘천하를 위압’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호란을 경험한 전략 요충지를 방어하는 수령다운 결기가 듬뿍 담겨진 명칭이다. 1950년 육이오 전쟁 기에 사라졌다가 2010년에 복원 재건되었다. 남한산성이 2014년에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유적의 하나인 이위정도 이제 자연스레 내외국인들의 주목을 받는 산성 활터가 되어 가고 있다.  
 
 심상규는 1789년 (정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규장각 관원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한 이래, 중앙과 지방의 중요 직책을 거쳐 순조와 헌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당대 최고의 권력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문장에 뛰어 났으며, 수많은 장서를 소장한 대 장서가이기도 하였다. 광주 유수는 한양도성을 방어하는 관문 중의 하나인 남한산성 방어를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다. 51세 때 1년간 이 요직에 재임하면서 심상규는 행궁 내에 유수부 관아인 좌승당(坐勝堂; 좌승은 앉아서도 좋은 계책으로 적을 물리진다는 의미)을 신축하였고, 그 후원에 심신 단련을 위한 활쏘기 장소로 이위정을 건립하였다. 관아 건물인 누정의 하나로 신설된 것이다. 사정 창립기인 이위정기는 본인이 짓고, 글씨는 당시 이미 명필로서 잘 알려진 31세의 추사 김정희에게 부탁하였다. 그 결과 이위정기는 그동안 활쏘는 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사의 글씨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탁본이 최초로 발견된 1980년대부터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고 한다. 이위정기의 내용은 탁본 외에 『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를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다. 
 
 심상규는 서영보(徐榮輔)와 함께 1808년 (순조 8년) 정부의 재정과 군정 등에 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만기요람』을 편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명의 문신들이 모두 활쏘기와 인연을 맺고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정조 예하에서 규장각 각신으로 재직할 때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서영보는 당대의 명궁인 이춘기의 사법을 채록한 「사예결해(射藝訣解)」를 남겼고, 심상규는 유수부 관리들과 방문객들이 활로 교류를 하던 이위정의 역사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이들은 요즈음 말로 가히 정조의 키즈(kids)들이라고 할만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위’라는 개념을 관건 어휘로 선택하여 활쏘기를 군민일치의 공적인 방어 수단으로 격상시키고 있는 이위정기가 은근히 내비친 연사(燕射)의 내밀한 즐거움은 정조로부터 심상규를 이어 오늘날의 현대판 한량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활꾼들만의 비밀 코드이다. 
 
그림1. 행궁의 가장 뒤쪽인 후원에 복원된 이위정. 좌승당 뒤편으로 정자 건물이 보인다. 
그림2. 육이오 때 없어졌다가 2010년에 복원된 이위정.
 
【번역문】
이위정기
 
 남한의 유수로 부임한 뒤 행궁 북쪽에 당을 만들고 누각을 세웠으며, 또 누각의 서쪽에 정자를 만들어‘ 이위정’ 이라 이름 짓고, 빈좌(賓佐) 및 군교(軍校)들과 더불어 잔치하며 활 쏘는 곳으로 삼았다.  
 
 『주역』 계사 편에 이르기를 “활과 화살의 예리함으로 천하에 위엄을 떨친다”라고 하였다. 성인은 위로 하늘의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의 지리를 관찰하여 지혜로써 만물을 창조할 수 있으므로 활과 화살이 없던 때에 문득 이것들을 만들어냈다. 이에 금수들이 어느 날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쏘면 반드시 쓰러져 죽게 되는 것을 보고는, 놀라 떨며 서로 이끌고 길들여지지 않는 놈들이 없었으니, 이 또한 천하에 위엄을 떨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창조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일단 활과 화살이 만들어지고 나면 두려워 떨던 금수들도 또한 점차 익숙해져서 모두 도피할 수 있게 되니, 어찌 이것만 가지고 또 천하에 위엄을 떨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이 아니면서 오직 이것만을 믿고 사람들에게 위엄을 떨치려 한다면, 비록 조그마한 마을이라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천하의 대중들에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숙신의 호시(楛矢), 임호와 누번의 기사(騎射), 흉노의 명적(鳴鏑)은 천하에 막강하여, 이것들은 성인도 바라던 무기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익혀 능숙하게 사용하던 민족들이 지금은 도리어 다른 민족의 위엄에 복종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날 이 곳에서 활쏘기를 익히는 것은 장차 어디에 위엄을 떨치려는 것인가. 대저 활과 화살은 도구이다. 이를테면 밭가는 도구인 쟁기, 따비, 괭이, 호미 등과 마찬가지이다. 농지에는 기름진 땅과 척박한 땅의 차이가 있고 농부에는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차이가 있어 수확이 번번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오랑캐의 사납고 난폭함은 척박한 땅과 게으른 농부에 비유할 수 있고, 군자의 인의와 충용은 기름진 땅과 부지런한 농부에 비유할 수 있다. 저 사납고 난폭한 자들이 한갓 무기만을 익혀서도 오히려 천하에 막강하였으니, 만약 인의와 충용을 지니고, 거기에 무기의 예리함도 함께 보탤 수 있다면, 이러고도 천하에 위엄을 떨치지 못하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그러한즉, 내가 이곳에서 활을 쏘는 것은 단지 활쏘기만을 권장하려는 게 아니고, 이곳 성안의 사람들이 나날이 인의와 충용의 길로 떨쳐 나아가기를 크게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마침내 천하에 위엄을 떨치지 못할 것인가. 
【원문】
以威亭記
象奎守南城, 旣爲堂爲樓於行宮之北, 又爲亭於樓之西, 名之曰以威, 以爲與賓佐軍校燕射之地。易繫辭曰: “弧矢之利, 以威天下”。聖人觀象於天, 觀法於地, 以智創物。當其未有弧矢之時, 而輒爲之, 其禽駭獸獷之類, 一朝見木之弦者剡者, 發必有殪, 則莫不震恐 相率而馴, 其亦可以威天下矣。 然雖非聖人, 莫可創也, 旣一有弧矢焉, 則其駭且獷而震恐者, 亦將漸習而遍能之, 是又安可以威天下哉。 故非聖人, 而徒欲恃此以威於人, 雖一井之里, 吾知其不能也, 而况天下之衆乎。肅愼之楛矢, 林胡樓煩之騎射, 匈奴之鳴鏑, 莫强於天下, 是皆聖人之所欲威者也。而今其習而能之, 反已威於人矣。然則吾今日射於此者, 將安所可威乎。夫弧矢器也, 如耕之器, 耒耟錢鎛器一也。地有膴确之異, 農有良惰之殊, 以其獲[薙?]輒相愆。譬則戎賊之悍猾貪暴, 确而惰者也。君子之仁義忠勇, 膴而良者也。彼悍猾貪暴, 徒習其器, 而尙能莫强焉。則苟有仁義忠勇, 而又益以其器之利, 如是而不威天下者, 吾未之信也。然則吾射於此, 非直弧矢之是事深勉, 而大望於此城之人, 欲其日興於仁義忠勇之塗, 豈卒不能以威天下乎哉。 
 
【풀이】
(1) “弧矢之利 以威天下“: 周易 繫辭下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문은  ”弦木爲弧 剡木爲矢  弧矢之利 以威天下 蓋取諸睽“ (나무를 구부려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었다. 활과 화살의 예리함으로 천하를 위압하였다. 대개 규괘(睽卦)에서 취하였다.) 왕자(王者)의 무기는 그 예리함을 이용하여 천하에 유익하지만 패자(覇者)나 폭도가 차지한 무기는 온 세상을 위압하게 된다. 안민(安民)을 위한 무기라도 폭객의 손에 들어가면 해민(害民)의 무기가 된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 심상규의 이위정기도 이러한 논리를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2) 빈좌·군교 (賓佐軍校) : 수령을 보좌하는 문신(빈좌)들과 무관(군교).
(3) 연사(燕射): 원래는 제후가 동료 및 근신들과 함께 활을 쏘며 술을 마시던 예사의 일종을 연사라고 하였다. 정조는 근신들과 함께 궁중에서 활을 쏘던 대회를 연사례라고 한 것이 그 한 예이다. 여기서는 그런 격식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고, 그냥 광주 유수가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연회를 하면서 활을 쏘는 것을 연사라고 칭하고 있다.  
(4) 호시(楛矢): 광대사리로 만든 화살을 지칭.
(5) 숙신(肅愼),임호(林胡), 누번(樓煩), 흉노(匈奴): 중국 북방에 거주하던 유목민족.
 
김기훈(사법고전연구소)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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