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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에 활쏘기도 있다

기사승인 21-09-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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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모래톱에서 활쏘기 대회 추진...

반구대 암각화에 활쏘기도 있다.
반구대 모래톱에서 활쏘기 대회 추진...

1971년에 한 주민의 제보로 발견되어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는 세상에 아주 잘 알려진 벽화이다. 이곳 이름이 반구대로 붙은 것은, 그 근처의 명승지인 반구대 때문이다. 암각화에는 고래 그림이 고래의 이름까지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잘 묘사되었고, 근처 울산 방어진이 그 전부터 포경산업으로 명성을 떨쳐서, 이 암각화는 고래를 위한 그림으로 더욱 널리 퍼졌다.
 
그러나 암각화에는 고래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고래보다 더 많은 숫자를 보이는 것은 호랑이 그림이다. 옛날부터 조선은 백두산호랑이의 근거지로 일제강점기까지 조선을 대표하는 짐승이었다. 그래서 암각화에도 호랑이 그림이 필요에 따라 많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활량인 우리가 주목할 그림이 또 있다. 활쏘기 그림이다. 활을 당긴 사람을 그린 그림이 몇 개나 있다. 이런 벽화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도 있고, 얼마 전에 한겨레 신문에서 답사하여 소개한 알타이 산맥의 벽화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활 그림은 이런 것의 연장이다.
 
알타미라나 알타이 산맥의 그림과 다른 점은, 활의 크기이다. 알타미라나 알타이 산맥의 활 그림은 굉장히 길다. 하지만 반구대의 활은 굉장히 짧다. 궁사의 허리까지만 내려오는 길이이다. 따라서 이런 점에 이 반구대 암각화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 활의 짧음은 고구려 고분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이전의 활 모양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는데, 뜻밖에도 반구대 암각화의 활 그림이 짧은 활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로 보면 한반도에 사는 우리 조상들은 다른 민족보다 더 짧은 활을 오래전부터 써왔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보는 벽화는 2000년 전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가장 오랜 시기인데, 이곳 반구대 암각화는 학계에서 7,000년 전의 유적으로 보고되어, 우리 활의 역사가 7,000년까지 거슬러가는 근거가 된다. 활량인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암각화 활쏘기 장면 사진

암각화 모사도 활쏘기 사진

반구대 앞에는 집청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다. 반구대가 있는 물길 대곡천에는 상류로부터 하류까지 절경마다 정자가 있는데, 순서대로 백년정-집청정-관서정-오산정이다. 반구대는 포은 정몽주의 유배지로도 유명한데, 집청정은 반구대 바로 건너편에 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비화는 여기서 비롯한다. 이곳 주인은 현재 최원석(울산 고헌정) 접장인데, 최 접장의 선친이 최경환이고, 지역에서 한학을 하시던 분인데, 그곳을 방문한 김정배 문명대 이융조 연구 팀에 암각화의 존재를 제보하였고, 실제로 암각화 탁본을 뜰 때도 적극협조하여 집청정에 군불을 때서 젖은 탁본을 말리기도 했다고, 최 접장은 선친을 회고했다. 최경환이 아니었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아직도 이끼 밑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고헌정 사원들은 전무이사인 김동욱 접장을 비롯하여, 집청정 주인인 최원석 접장을 중심으로 반구대 모래톱에서 활쏘기 대회를 추진하려고 논의 중이다. 아직 발상의 단계여서 어디까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행사이나, 반구대 암각화의 활쏘기 그림이 있기에 이런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전통을 살린 방향으로 대회가 추진된다면 국궁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고헌정 사원들의 활 사랑을 기대해 볼 차례이다.
 
집청정에서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가는 길(강철조, 류근원, 김동욱, 최원석 접장)


국궁신문

<저작권자 국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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