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자 대한궁도협회에서 전국 활터로 송부된 "정간배례에 따른 정간론"에 대한 이태호(청주 우암정) 접장의 반박 글이다. 전국 독자 제현의 많은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내용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실).
우리 조상들은 예절을 매우 중요시하여 사소한 예절도 규범으로 정하여 후세를 교육하여 왔고, 이 분야에 관한한 너무나도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궁도협회에서 각 정에 보내온 정간배례에 대한 공문(2006. 03. 07)울 검토해보니
첫째, 정간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기록조차 불필요하기에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둘째, “정간사상”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정간배례는 정간이라 씌어진 목찰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가운데(정간)을 향하여 배례를 하는 것이기에 목찰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지속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셋째, 정간배례가 우리들의 미풍양속이고 이것의 의미는 선현들에 대한 경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간과 정간배례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정간”이라는 말은 아주 드물게 건축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3칸으로 지어진 건물의 중앙 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절을 중요시하는 우리민족의 어느 문헌에도 “정간배례”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소설, 서간문, 전래동화, 풍속화, 전설 등에서 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간배례라는 말은 최근에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궁도협회의 주장대로 정간배례가 옛날부터 존재하여 왔고 너무나 당연하여 기록할 필요조차도 없었다고 말한다면 이 때의 정간배례는 정 건물의 중앙이나 정간이라고 쓴 판자에 대고 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계신 어른께 인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 것입니다.
정의 구조가 단 칸이던 두 칸이던 네 칸이던 간에 어른이 계시는 곳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이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거니와 가르칠 필요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기본예절이기에,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을 정간배례라고 한다면 정간배례라는 별도의 용어도 당연히 필요 없었고 대한궁도협회의 주장처럼 기록할 필요조차 없었겠지요.
지금도 각 정에서는 처음 정에 올라오면 정의 중심처(정 건물의 중앙 = 정간)에 계신 어른을 찾아뵙고 반드시 인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간에 계신 어른이 받아야 할 절을 허수아비처럼 걸려있는 나무판이 대신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기이한 일이 아닙니까?
나무판에 절을 하는 것은 그 나무판에 신성과 권위를 부여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건물의 중앙을 표시하는 목찰에 어떻게 신성과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정간에 선생안을 모셔두고 그곳에 예를 표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가 갑니다만 추모할 아무런 대상도 없는 건물 한 가운데를 향해서 절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입니까?
어떤 관점으로든 이해하여 보려고 노력해 보아도 너무나 이상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억지로라도 설명하려하니 각양각색의 설이 난무하는 것이겠지요. 이번에 대한궁도협회에서는 새로이 “정간사상”(=건물의 가운데 칸을 신성시하는 사상으로 인간이 윤리와 도덕적 개념에 눈을 뜰 때부터 정간사상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함.)이라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제껏 정간이라는 용어는 들어보았지만 “정간사상”이라는 용어는 처음 듣습니다.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비전의 사상인 것 같은데 이번에 대한궁도협회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이것도 너무나 당연하여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까?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전통예절로 돌아가 정에 올라오면 우선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하는 것이 맞다 고 생각합니다. 정간배례라는 예는 필요가 없고 예전부터 늘 있어왔던 등정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간배례에 대한 저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처음 정에 올라오면 정간에 계신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예절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 예절이지요. 이것을 등정례라 합니다.
둘째, 최근에 누군가 어떤 의도로 정간이라고 쓴 현판을 달고 이곳이 정간이니 인사하라고 시켰는데 그 역사는 길게 보아 20 - 30년으로 추정됩니다.
셋째, 이후 사람들은 정에 올라오면 어른께 인사를 드리는 대신 무비판적으로 먼저 정간이라는 이름의 나무판에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간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진 나무판을 사람 위에 모시고 신성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멋대로 해석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결과적으로 사두님을 비롯한 모든 정의 어른들을 제치고 정간이라고 쓰인 나무판이 정의 진짜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어른에게 고개를 숙이자 않으면 예의 없는 망나니로 취급당합니다. 정에 걸려있는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 집안에 모셔진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보다도 더 극진히 모셔야 됩니다.
매일매일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하니까요. 결국 정간신앙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간배례를 강요하는 것은 모든 궁도인에게 正間敎의 신자가 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이를 두고 미풍양속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조상께 죄스러운 일입니다.
다섯째, 우리민족의 보편적인 관습에 의하면 선생안은 그 정의 특별한 기념일(예를 들면 창립일, 사두취임일 등) 행사 의식에 모셔놓고 배례를 하면 되지 매일 매일 배례할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각 정의 사풍에 맞게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정간배례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시 정간(표찰 또는 허공)이 아닌 어른께 먼저 인사를 올리는 전통예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에 오르면 등정례가 있어서 웃어른께 예의를 차리고 첫발을 낼 때, 초시례를 하면서 활 배우는 고마움을 일깨웁니다. 대회를 할 때에는 먼저 가신 선배궁사에 대한 묵념을 올립니다. 이 얼마나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절입니까? 우리 모두 국궁예절을 전통예법에 맞게 확립하여 후세에 물려줍시다. 끝.
청주 우암정 이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