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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 국채보상운동
성낙인 옹 유품 17번째 자료 : 국채보상 운동 자료
기사입력 2015-01-17 오후 8:54:00 | 최종수정 2015-04-02 오후 8:54:56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 국채보상 운동 자료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의 유품 가운데 근대사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이 여럿 있는데, 이번에는 국채보상운동과 관련한 자료를 소개한다. 모두 4건이며, 성문영 공에게 특별한 직책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광무 11년은 서기로 1907년이다. 국채보상운동은 국권을 되찾으려는 온 국민의 열망이 담긴 사건으로, 모든 한국사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채보상 운동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를 설치하고 식민지 지배를 위한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에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차관 도입을 강요하였다. 이 차관은 조선 내 경찰기구의 확장이나 일본인을 위한 시설 확충에 사용되었다. 1907년 무렵에는 차관이 늘어나 대한제국의 1년 예산과 비슷한 규모에 이르렀다.

    차관 도입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심해지자, 국민이 성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1907) 이 운동은 대구에서 서상돈 등의 제의로 시작되어 대한매일신보 등 각종 신문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에는 부녀자, 어린이, 기생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부녀자들은 비녀와 반지를 팔아 성금을 모았다.

    국채보상 운동은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한 경제 구국 운동으로, 전 국민의 큰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그러자 통감부는 국채보상 운동이 단순히 나라 빚을 갚자는 운동이 아니라 국권 회복 운동이자 항일 운동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국채보상 성금을 수합하던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탄압하였다. 이에 따라 국채보상 운동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천재교육) 223쪽

군대와 경찰권을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집어삼킬 마지막 순서로 경제를 파탄내면 조선은 스스로 무너져서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차관을 들여와서 빚을 지게 하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당한 대한제국은 무너지기 직전에 이른다. 그 마지막 안간힘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마저 일제의 간교한 술책으로 실패하자, 결국은 3년 뒤인 1910년에 강제 합병이 이루어진다.

민족사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 사건에 성문영 회장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은 활쏘기를 하는 후학으로서는 특별한 일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활쏘기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 하는 것을 언뜻 언뜻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문영 공은 벼슬에 임관될 초기부터 고종 황제의 측근에 있었고, 황제권을 강화하려는 궁내부에 소속되어, 온 나라 백성의 지지를 받는 국권회복 운동에 호의를 지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자료는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례들은 활이 민족사의 흐름과 함께 고동쳐 왔다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은 국궁인들 스스로 활쏘기를 과녁맞추는 스포츠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지만, 골프가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활쏘기는 고위층의 사교수단이었고, 활터는 그런 사교클럽이었다. 따라서 정치권이나 사회 상층부의 모든 논의는 활터에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서구 사회의 로비와 같았던 장소이다. 오늘날 골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보면 골프가 차지하기 이전의 활터 모습을 쉽게 연상해볼 수 있다. 활터는 한 마디로 고품격 문화 공간이자 사교 클럽이었다.

온깍지궁사회

기사제공 : 국궁신문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 부의록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 대한제국훈장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초대회장 궁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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