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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고자채기’의 실체와 변론
기사입력 2017-12-22 오후 5:42:00 | 최종수정 2017-12-25 오후 5:42:00   

지난 12월 18일 국궁신문 기사로 소개된 <우리활쏘기 묘와 수(妙手) 이야기> 기사 본문중에 언급된 '발시동작에 있어 앞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고자채기는 쌍분의 범주에서 벗어난 형태로 정사법에서 벗어난 사벽(射癖)이며, 활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국궁신문 밴드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사실 고자채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개념을 기술한 자료는 없다. 그것이 정사법 또는 활병이라고 칭하려면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다. 조영석 명궁의 강연에서는 활쏘기 과정의 쌍분의 범주에서 인위적인 요인이 가미된 '고자채기'는 활병으로 단언한 것이었다. 그러한 앞뒤 맥락의 이해없이 사법을 논하는 것은 토론을 위한 자세가 부족한 것이다.

국궁신문에서는 열린 토론을 언제든지 환영하며 정리된 사법글을 제공하면 편집과정을 거쳐 더 나은 토론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소개되는 글은 '고자채기'에 관한 김세랑 접장(살곶이정)의 소고이다. 아울러 본문에 언급된 활쏘기 단체의 사법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동 단체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국궁신문 편집실】

속칭 ‘고자채기 사법’의 실체와 변론

오늘날 활터에서 상당히 민감하게 여기는 속칭 ‘고자채기’에 관해서 논함에 있어 본고는 특정사법의 옳고 그름이나 우와 열을 가르고자 함이 아니며, 비록 소수이나 엄연히 실재하고 있는 비주류 활쏘기 방식중 한가지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며 우리 활쏘기의 흐름과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고자채기 = 윗장짚기?
먼저 ‘고자채기’라는 용어는 활터에서 구전되고 사용될 뿐 정확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용어로 보입니다. 고자채기, 고자치기등으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이 용어를 ’윗장짚기’와 별 구분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윗장짚기란 활을 당겨 발시할때 줌의 아귀부분에 힘을 주고 손목을 아랫쪽으로 찍어 누르며 발시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살걸음이 짧아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마땅히 활은 상하장을 균형있게 당겨 발시해 최대의 효율을 지향하며 쏘아야 한다고 볼때 권장할 수 없는 동작이지요. 이 경우 발시를 하고 난 최종 자세는 윗고자가 팔의 연장선상에서 전방을 향하고 활의 뿔과 시위가 있는 면이 하늘을 보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발시는 ‘윗장짚기’로 보아야 맞겠으며,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유형과는 다름을 먼저 밝혀 둡니다.


서양 궁사의 사진이지만 전형적인 윗장짚기의 예시를 보여주는 사진

고자채기는 활병?
그동안 활터에서 고자채기는 활병의 하나로 치부되었으며,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발시동작이 어떠하든간에 앞손에 움직임이 있거나 소위 ‘활을 뿌리면’ 무조건 고자채기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과연 이 고자채기가 정확히 어떤 동작을 일컫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즉, 용어에 대해 정리된 정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소위 ‘고자채기 사법’으로 활을 낸다는 궁사들도 이 용어가 과연 자신들의 사법을 나타내는 용어로 적합한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해서 일부에서는 이런 궁체가 그림으로 표현된 ‘북관유적도첩’을 인용해 ‘북관사법’이라 칭하기도 하고 중국사법서의 용어를 빌려오기도 하지만, 제 경우에는 지금은 잘 행해지지 않는 옛 방식의 사법이라는 의미에서 그저 ’옛 사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단 본고에서는 기왕 기존에 활터에서 통용된 용어라는 점을 고려해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제대로 된 고자채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합니다.

 

정상적인 고자채기는?
핵심은 앞손의 힘과 움직임을 가두어 통제하느냐, 앞손에 걸리는 힘을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활을 흘려잡고 적당히 기울여 활을 당기며 중구미를 엎게 되면 줌팔과 줌손, 줌통, 활채에는 대각선 시계방향으로 방향성이 걸린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일반적인 발시는 이후 뒷손이 놓아질때 줌손을 꽉 움켜 잡아 앞손의 힘을 가둬놓고 발시하는 방식이고, 앞손동작이 있는 궁사들의 경우 걸려 있던 힘의 방향성에 몸을(줌팔을) 맏겨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뒷손은 시위를 당기던 방향으로, 앞손은 줌팔을 축으로 줌손과 활채가 맹렬하게 회전하게 됩니다. 이때 줌팔이 앞이나 뒤로 삐치지 않아야 하며, 특별히 아랫장이나 윗장을 더 밀지 않고 활의 위아랫장 균형을 잘 맞춰 밀어서 발시때 줌손이 위아래로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비록 활은 맹렬하게 움직이지만 줌은 마지막 발시직전의 위치에서 꿈쩍도 하지않고 그 자리에서 빠르고 맹렬하게 회전하는 것을 최상으로 칩니다.

이렇게 활이 앞으로 눕는 잔신을 보이는 쏨새라 할지라도 활의 세기나 줌통의 크기와 형태, 줌팔과 줌손의 힘을 쓰는 방식에 따라 그 양태는 궁사마다 다양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예컨데 활이 강궁이면서도 줌통의 크기가 옛식으로 아주 작거나 줌통의 마감재가 마찰력이 높지 않은 소재인 경우 줌통을 꽉 잡고 있어도 일본 규도에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게 활이 줌안에서 매우 빠르고 맹렬하게 스스로 180도 회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안정된 옛방식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궁력과 궁체수련이 필수적이며, 그 원리와 활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없이 겉으로 보이는 외향만 따라 흉내를 내다가는 화살이 중구난방으로 나가게 됩니다.

 

사법의 근거는 왕거의 사경.
이 사법의 핵심은 발시후 활이 회전하며 누워 양 팔이 일시에 나란히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온깍지 사법과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온깍지 사법은 이름에서도 보이듯 깍지손이 뒤로 빠지며 우아하게 펼쳐지는 것에 포인트가 있으며 줌손은 별도의 움직임이 없이 발시후 서서히 불거름으로 지우는 것입니다. 온깍지 사법은 앞손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으며, 고자채기 사법은 앞손의 힘과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데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궁사의 시선에서 볼때 발시후 줌팔이 축이 되어 줌손과 활이 대각선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시위가 아랫쪽을 향하며 윗고자는 과녁방향을 가르키고 아랫고자는 줌팔 어깨죽지 아랫쪽에 닿으며 발시동작이 마무리 되는 자세입니다. 문헌적인 근거는 당나라때 작성되고 원나라때 편찬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법서인 왕거의 ‘사경’에 등장하는데, 앞손은 ‘撇(별: 치다, 때리다, 던지다, 뿌리다)’ 하고 뒷손은 ‘絶(절, 끊어 내다)’하라고 되어 있으며 이는 이후 모든 사법서에 두고두고 인용이 됩니다.

자칫 글로써는 그 내용의 전달이 어려울 수 있으나 진원정이 편찬한 ‘사림광기'에 왕거의 사경 발시동작에 대한 삽화가 첨부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줍니다.


(사진 출처: 조선과 중국의 궁술 - 민경길 편역)

또한 활터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전추태산 후악호미’의 원래 출전이기도 한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집필한 ‘기효신서’에서도 수법에 관해 의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앞뒷손의 균형있는 밀고 당기기를 표현한 그 유명한 ‘전수여추태산 후수여악호미’ 문구에 뒤이어 겨냥법이 나오고 곧이어 다음 구절로 이어지는데, ‘별과 절은 활쏘기의 근본이다. 별과 절은 서로 호응하는 이치가 있다. 앞과 뒤에 동시에 같은 힘을 가해 동시에 방사하면 화살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평소보다 더 멀리 나간다. 이것이 수법(手法)이다.’라며 앞손과 뒷손의 균형있는 힘쓰기와 발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선에도 소개되었던, 그래서 우리 활터에서도 많은 분들이 읽어보는 ‘사법비전공하’의 사학문답중에서도 대동소이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앞뒷손의 통일된 움직임을 강조하던 중국사법서의 내용이 극적으로 변환되는 시점은 1637년에 명나라의 고영이 집필한 ‘무경사학정종’에 이르러서입니다.

고영은 ‘척확세’라는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궁체를 제시하는데, 활을 발아래에서 부터 당겨 올리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취하는 동시에 이전까지는 정법으로 통하던 별절 동작을 금하라고 주장합니다. 고영은 별절동작을 제대로 배워 무르익기가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영축이 발생한다 보았습니다.

이처럼 앞손 동작을 가진 궁체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법들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법이고, 고영이 무경사학정종을 통해 별절법을 금하라는 주장을 하기 전까지는 정법중의 정법으로 여겨지던 사법이었습니다.

 

조선의 사례
비록 중국처럼 다양한 사법서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나 몇가지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우리나라 역시 앞뒷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활을 쏘았음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그림입니다.

북관유적도첩은 고려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북방, 즉 최전선인 북관지역에서 벌어진 주요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낯익은 남이장군이나 신립, 이순신까지 주요 장수들의 기록이 다수 등장하며 발간연대는 17~18세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중 전투상황이 직접적으로 묘사된 야전부시도, 출기파적도, 일전해위도, 창의토왜도 네장의 그림에서 모두 앞뒷손을 동시에 뿌리는 별절법으로 활을 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김홍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수렵도에서도 동일한 궁체가 보입니다.

이처럼 조선의 그림을 통해서 보이는 궁체에는 중국의 그것과는 또다른 특징이 하나 있는데, 양손을 나란히 쫙 펼친 왕거의 사경 그림과 달리 조선의 그림에서는 손바닥이 뒤집어지며 하늘을 보고 있는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백과사전격인 임원경제지중 ‘사결’편에서도 일례를 볼 수 있는데, 비록 내용은 온전히 창작물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중국의 사법서에서 필요한 구절들을 따와 편집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저자인 서유구는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본인 스스로가 직접 활쏘기를 배우고 익힌 인물이기에 집필된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양이나 자세함, 체계적인 기술등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다른 어떤 문서보다 활쏘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발시에 있어서 수법은 앞손은 ‘별’하고 뒷손은 ‘절’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궁술 - 앞손을 봉하다.
이처럼 조선후기까지도 여전히 별절법을 고수하던 조선이 불과 100여년만에 앞손의 동작을 버리게 됩니다. 일제시대에 집필된 조선의 궁술에서는 더이상 앞손의 움직임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게 되니까요.

비록 충분치는 않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며 우리는 약간의 검색만으로도 손쉽게 조선말기부터 지금까지의 다양한 활쏘기 사진과 동영상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말기에서부터 1960년대까지 우리 활쏘기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뒷손을 빼어 쏘는, 즉 ‘절’ 동작을 이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온깍지 사법’의 근거가 되었으며, 온깍지 사법의 효율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 조상이나 선배들이 그렇게 활을 쏘았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그런데 ‘절’이 있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할 ‘별’이 없습니다.

조선의 궁술에서 앞손 동작이 사라진 것이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몇가지 힌트는 책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조선의 궁술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쟁, 수렵, 잔치및 활쏘기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활이 7종이 있었는데, 정량궁, 예궁, 목궁, 철궁, 철태궁, 고, 각궁을 지칭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식무기가 등장하면서 활쏘기 연습용의 각궁이 전할 뿐이고 기타의 것은 영원히 사라져 쓸모없게 되었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실물은 모두 사라져 그림으로도 그 형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글로써 그 제작을 설명할 도리가 없으므로, 다만 각궁의 제도를 설명할 뿐이고 다른 활은 명칭을 거론할 뿐이다.’

조선은 힘을 잃고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체되며 활과 화살도 모두 불쏘시개가 되고 말지요. 그렇게 옛 군대의 강력한 전투용 활과 최소 한냥 이상의 장전으로 적의 갑옷을 뚫고 치명상을 입히기 위한 활쏘기가 사라지고 민간에서 놀이와 활쏘기 연습에만 사용되던 평궁에 가벼운 유엽전 활쏘기만이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가던 시점에 조선의 궁술은 집필되었습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건데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의 궁술 편찬시기에 앞손 동작이 사라진 이유가 전투를 위한 실전궁술이 사라지고 활쏘기가 일종의 스포츠화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효율을 추구’하게 된데에 있다고 추정합니다.

우리나라의 민간 활터에서 유엽전 쏘기는 정해진 거리를 가벼운 화살로 일정하게 쏘아 맞추는 시수 집중적인 성격이 강했으므로 앞손의 움직임을 통제해 변수를 줄이고자 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활쏘기가 곧 인생이고 출세하는 길이어서 평생을 활쏘기 수련에 바쳐야 했던 조선시대 무관의 활쏘기와는 달랐던 것이지요. 실제로 조선후기 무관이었던 장언식 공의 정사론 발문에는 이런 증언이 나오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나는 17세부터 활쏘기 수련을 시작하여 40세에 무과에 급제해 금군에 발탁되어 철전쏘기를 담당하게 되는데, 정작 그것은 등한시하고 가볍고 만만한 유엽전 쏘아 맞추기에 탐닉해 당대의 시수꾼이 되어 떠돌다가 결국 활병을 얻고 궁체도 모두 망가져 폐궁의 지경에 이르게 되니 부디 후학들은 내 전철을 밟지 말 것을 당부하며 이 책을 쓴다’는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수십년을 수련하며 궁체와 궁력을 갈고 닦아야만 비로소 무과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고, 무거운 철전을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었으며 정량궁으로 육량전을 80보 이상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이죠. 활쏘기가 전쟁에서의 생존과 신분상승의 수단이 아닌 놀이와 스포츠화되어 가며 가능한 최소한의 힘과 움직임으로 최대효율과 명중률을 보장하는 쪽으로 변화했음입니다.

 

옛사법의 구현과 의미
오늘날 우리는 145m라는 정해진 거리에 동일한 규격의 과녁을 향해 활을 냅니다. 활을 처음 배우러 들어와서 늦어도 3개월 이내에 집궁해 독립적으로 활을 내는 궁사가 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오시오중의 기쁨과 함께 접장이 됩니다.

‘전통’을 따라보겠다고 깍지손을 뒤로 빼면 ‘시수가 나지 않는다’라고 지적을 받고 앞손이 끄떡이기라도 하면 사범님께 호되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뒷손의 움직임도 제한적인 현재의 활터와 사풍에서 옛방식으로 앞뒷손 모두에 움직임을 주는 사법은 눈에 거슬리기 마련입니다.

    ‘활병이란 활병은 죄다 달고 쏘네’
    ‘그렇게 쏴서 어디 과녁을 맞추기라도 하겠어?’
    ‘활쏘랬지 누가 춤추라고 했냐?’

옛식으로 활을 내다보면 이런 이야기쯤은 아무렇지 않게 들려오곤 합니다. 그러나 앞서 알아 보았듯이 이 앞뒷손이 호응하는 방식은 가장 유래가 깊은 활쏘기 방식이었습니다. ‘그 방식은 쉽게 익히기가 힘들텐데, 시수가 잘 나지 않을텐데’하며 걱정해주는 것은 좋으나 굳이 비난을 받을 만큼 족보가 없는 사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족보가 긴 사법이지요.

활을 쏘는데 있어서 추구하고자 하는 사법과 사풍은 다종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전국대회 제패를 목표로 활을 쏘고, 누구는 망가진 건강을 회복하려 활을 쏘는등 저마다 추구하는 활쏘기의 길과 방향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은 과연 어떤 활과 어떤 화살로 어떻게 쏘았을까?’라는 학술적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활공부를 시작했고 여전히 탐구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활을 쏘는 목표이자 즐거움입니다. 활쏘기와 그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장에 잘 쏘아 잘 맞추는 것 만큼이나 지금의 국궁이 있기까지 어떤 역사와 흐름이 이어져 왔던가를 잘 정리하고 연구하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저는 부디 ‘옛 사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관점에서 사법을 연구하길 바라며, 마치 자신이 구한 답만이 정답인 것 처럼, 시대와 장비와 유행에 상관없이 ‘전통궁체’는 단 한가지의 정답만을 허용한다는 식으로 비약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데 우리 활터와 궁사들이 조금만 더 열린 넓은 시선으로 활쏘기를 바라본다면 궁체와 사법을 두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믿습니다. 길기만 한 졸고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김세랑(살곶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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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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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전체 3   아이디 작성일
고자채기는 활버릇 kbow 2017.12.24
구사분들이 그거 하지 말라했지요. 그리고 고재채기라는 용어에 보듯이 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요. 활터에서 구사분들은 깍지로 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자채기를 하지 말라는거지요. 줌손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고자채기가 손목스냅에서 나온다는 말씀은 틀린것 khansan 2017.12.24
고자채기는 몸을 과녁과 마주하고 만작하는 자세에서 발현되는 궁체입니다.
죽머리가 내전해야 줌구미가 엎히고 흘려잡은 줌손에 의해 고자채기가 일어나는 것이지, 손목스냅으로 외형만 고자채기를 하면 깍지손 두벌위같이 줌손의 “두벌 앞” 고자채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부분 고자채기로 쏠 줄도 모르면서 고자채기를 논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http://cafe.daum.net/BosaengBowThimble/1MM9/93 맹렬한 고자채기 동영상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별과 절은 중국사법용어이지요 kbow 2017.12.23
중국의 전통적인 발시 동작은 별과 절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우리 활쏘기에서 앞손과 뒷손의 발시형태를 말하는 것이고요. 앞손에서 이루어지는 고자채기를 중국사법 용어인 별로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우리 활쏘기의 앞손에서 보여지는 여러 유형중 하나가 고자채기이며, 고자채기는 각지손 떼임과 동시에 앞손의 손목 스냅 등을 이용하여 고자를 채듯이 활을 내는 것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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