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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정 전현감김종규농무시혜비 전문 밝혀져
민간사정 연구에 귀중한 자료, 국궁계의 경사.
기사입력 2019-06-26 오전 11:09:00 | 최종수정 2019-07-14 오전 11:09:01   

활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가봐야 할 활터. 충남 논산시 강경읍의 활터 덕유정에는 1828년부터 활터 풍속을 기록한 사계좌목 등을 포함한 많은 문서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난 2000년대부터 인터넷을 통해 국궁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활터 조사보고서 덕유정>편에 상세하게 번역, 국궁계에 공개되어 활터에 전해지는 각종 자료들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당시 활터 조사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한 덕유정의 자료 중 덕유정 마당에 있는 금석문인 <전 현감 김종규 농무시혜비> 전문이 밝혀져 국궁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전 현감 김종규 농무시혜비> 비문은 오랜 세월에 비석 표면의 글자들이 육안으로 판독이 어려워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대한민국 서예술대전 초대작가이면서 한국서예협회 대전·충남초대작가인 오헌 김태호 작가의 1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탁본을 거쳐 분석하고 판독하여 대다수의 글자를 확인하였다.

이번에 밝혀진 <전 현감 김종규 농무시혜비> 전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사정의 원형을 갖추고 있는 덕유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앞으로 후속적인 연구가 뒤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비문의 내용을 밝혀낸 오헌 김태호 작가의 노력에 고마움을 국궁계를 대신하여 큰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1년의 긴 시간 동안 탁본과 판독의 반복된 어려웠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귀중한 자료 일체를 공개한 오헌 김태호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청강 한영국, 덕유정 전사백>


전 현감 김종규 농무시혜비(사진;활터조사보고서) 

【碑 일반정보】

前縣監金鐘奎農武施惠碑 (전현감김종규농무시혜비)
현소재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동홍리 47 (덕유정 소재)  
재원: 460mm(가로) * 1210mm(세로), 화강석 비문
         기단 소실로 인해 콘크리트 기단 설치
         가로 20항 * 세로 30열[대자(前縣監金鐘奎農武施惠碑) 별도 1항]
         전 면 : 4항 및 大字 題目
         측 면 : 2항*2(좌측,우측)
         추 면 : 12항
         右에서 左로 게재
총자수: 본문 소자 593字,
           대자 제목(前縣監金鐘奎農武施惠碑)은 열한자로  총 604字
글자크기: 大字 題目은 가로110mm*세로110mm 내외
          소자 본문은 가로30mm*세로30mm 내외
비문요약: 덕유정 5대 사백이며 현감을 지낸 김종규의 업적을 농업분야, 덕유정 부흥분야, 농민난 해결분야로 나누어 기록
건립시기: 1881년 5월
각자기법: 大字 題目 포함하여 음각(백문) 기법
비문서체: 해서체(大字 題目 포함)
건립위치: 알수없음(차후에 현 위치로 이동)
글쓴이: 방달주(덕유정 사백, 통정대부 방규석의 父, 독립운동가 방한민의 祖)
관련자료: 덕유계첩, 사계좌목, 사체대개, 완문, 완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관련논문: 전현감김종규농무시혜비에 대한 논문은 없음

【연구 및 활용방안】
1. 경운보의 위치를 파악하고 덕유정과의 관계 연구
2. 경운보의 운용 및 관리 방법과 계방(稧防)에서 세수를 행한 관련자료 수집연구
3. 사계와 경운보, 계방(稧防) 및 보계의 관련 연구
4. 덕유정의 이전 위치의 파악과 현 위치 이전 과정 중 김종규의 역할 연구
5. 덕유정에 영(營)의 역할과 영에서 행한 관련 공문수집 연구
6. 사정에 관공서인 영(營)을 둔 사례의 연구와 덕유정 위상 제고에 김종규 역할 연구
7. 임술(1862)년 민란 평정시에 김종규와 사계 역할 연구
8. 사정의 입비 사례와 사원간의 입비 사례 연구
9. 당 비문의 완역을 위한 관련자료 조사


탁본과정


전면측면 탁본


후면측면 탁본


전면 측면 탁본후 가묵


후면 측면 탁본후 가묵


탁본후 집자

【비문해석】
1 蓋興擧金令事也吾將何事爲惠則可乎當以洑事言之也景雲浌卽沃畓五
   대개 김령의 일을 흥기한 일이다. 내 장차 무슨 일로 은혜라고 하면 가능할까? 마땅히 경운보에 관련한 일로 이야기 해야 한다  경운보는 즉 옥답

 2 千石沃之處擧幾齋緡民數事餘詔之所作祭需每秋防築役事浩大民力不
  오천석을 물댈 수 있는 곳으로 백성들의 여러 일들을 해결하기도하고 제사준비를 하기도 한 곳이다. 매년 가을 제방을 쌓으나 일은 크고 백성 일손은

 3 當設營當民洪遍爲道創補千金而民幾取錢而本錢空餘虛券金令擔着牧
   부족하여 감당할 수 없어 영(營)을 설치하여 백성의 보역을 감당케 하였는데 홍수가 자주 일어나므로 본도의 자금(道創)에서 천금을 보충하여 제방 쌓는 백성에게 근근히 지급하다가 본전은 텅 비어지고 나머지 물세 관련 채권은 쓸모 없어졌다. 이에 김령이 책임지고

4  民分事浩擧無□□□□不□沃□□成□□□洑錢盈給金令能當洪將幾
백성을 길러서 일을 크게 나누어 --------- 경운보전을 충분히 지급하게 되어 김령이 홍수를 다스림이 가능하였다 그러다가 경운보는

5 不防衰廢也戊寅復以難捧之未捧自辨千兩還付洑稧取剩築洑另出八百
거의 쇠폐하게 되었다. 무인년에 이르러서는 다시 백성들에게 물세를 거두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거두지 못한 물세를 김령이 스스로 천냥을 대신 출연하여 보계에 부쳐서 그이익금을 취하게 하고 별도로 팔백냥을

6金而居邊與府營年秋給捧資分殖各里取用每年稧防是惠之一也德㳺亭
 부(府)와 영(營)에 이자를 두게 하여 매년 가을에 이자를 나누어 불리어 각 마을마다 매년 계방에서 쓸 수 있게 한 것이 은혜의 첫 번째다. 덕유정은

7 卽浦民成□營海營道兼齋幾給每需營乃於乙丑金令仗義踈財辨出五百
  즉 본 포민들의 물길과 바다길을 함께 관할하고 영(營)에서 필요한 수요품을 공급하였는데 이윽고 을축년에 이르러 김령이 의로운 생각으로 자신의 재산 오백냥을 출연하였는데

8 兩而二百先用亭役二百追用落成一百更設射稧矣而是以左右欽慕鳩財
우선 이백냥으로 덕유정 짓기를 시작하고, 다시 이백냥을 출연하여 정자 짓기를 이루고, 또 백냥으로는 없어진 사계를 다시 설립했다 이 때문에 좌우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은 돈이

9 千金重建氷亭舊址而是以互相勸勉追入同志稧錢亦存本五百而取殖
   천냥으로 중건하여 옛 활터에 정자를 이루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서로 간에 권면하여 자금을 추입 하였다. 동지계전도 또한 오백냥 있으니 이돈으로 불리어

10 豊上之錢公設營於本稧是惠之二也壬戌  鄭御史道時金令呈單自願而
   돈을 풍족하게 하여 공적으로 영(營)을 본계(사계)에 설립하니 이것이 은혜의 두 번째다. 또한 임술(1862) 민란시기에 본도를 찾은 어사 정기회에게 사계의 단자를 보여주며 자원하여  

11 幾成幾當白骨之布亦係民隱輸納三千四百兩而二千分給本浦二十洞一
   백성들의 재판을 거의 마땅하게 처분하고 죽은자에 부과하던 군포(백골지포)도 백성과 연계하여 은밀하게 삼천사백냥을 납부하였는데,  이천냥은 나누어 우리 금포 이십개 마을에 보급하고

12 千四百分給戴成幾隱輸然門洛錢給錢成管處及隨施營盈盛綴夜幾嘉尙
일천사백냥은 나누어 모두 드러나지 않게 이루었다.  가상한

13 之聽補各底篤及是惠之三也斯三條外待而擧火者幾家待而治喪者幾處
  불상히 여겨 너그럽게 판결하여 각 판결마다 돈독함이 미치게 하니 이것이 은혜중 셋째이다.  이 3조목 외에 김령 은혜로 집에서 호롱불 피우는자 몇집이며 김령덕에 상례를 치루는 자 몇 곳이며

14 待而成婚者幾人甚至於流乞輩與之裳衣使無凍死施之路錢能免餓殍
김령 덕에 혼인한자 몇 사람이던가! 심지어 걸인들에게 옷을 주어 얼어  죽지 않게 하고 노잣돈을 주어 굶어죽는 것을 면하게 하였던 것이다.

15 又以奉公言者丙寅關役首先納五千兩本道砲設自願納五千兩壬戌歲還
 또한 공적으로 말하자면 병인(1866)양요 관역에 오천냥을 가장 먼저 선납하고 충청도 해안 대포 설치공사에 자원하여 오천냥을 납부하였으며 임술(1862)년 환납에

16 氓隱不捧者錢千兩自納補弊甲子春結代錢二百七十兩獨納而勿施結民
 백성중에 세금을 납부 못하여 숨은 자가 납부해야 할 천 냥을 스스로 납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웠다. 갑자년(1864) 봄에 백성중에 토지세 미납분 결대전(結斂錢) 이백칠십냥을 대신 홀로 납부하여 백성에게는 결대세를 내지 않게 하였다.

17 商人荷納道錢營自當修稧不貽洞獘也大抵金令之奉公宲心
   상인에게 부과하던 짐세를 영(營)의 수계(修稧)에서 감당하게 하여 마을에서는 감당하지 않게 하였는데 이것이 대저 김영의 공무 수행하는 진심이었다.

18 愚本分邊爲勞捧以奉公已示義不必更進而第江村事事均均及其惠亦果
   나의 생각으로는 본분은   김령의 공무수행 본심을 다시 보일 필요는 없다.  모든 강촌의 일마다 공평히 하니 그 은혜가 과연

19 何如耶此石此記公下尙存雖然非特爲金令之著惠也若後日稍饒有觀感
 어떠 하였던가? 이 비문의 이 기록에는 김령의 공을 오히려 낮춘 부분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는 단지 김령의 은혜를 드러내고자 할 뿐만이 아니라 후일에 점점 경제 형편이 나아져 느낌이 있어

20 而興起者公尙者矯捄識把心哉歲辛巳五月上澣溫陽方達周隨見記之
   흥기하거나 공을 높이는 자는 이 사실을 바로 알고 마음에 잡아 두어야 할 것이다.  신사(1881)년 오월 상한 온양 방달주는 견해를 쓰다

 

【오헌 김태호 작가】


광개토대왕비문 연구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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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전체 1   아이디 작성일
고맙습니다 kbow 2019.06.27
국궁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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