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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활쏘기, 깍지(角指)
다양한 형태의 깍지, 전통문화 상품으로 손색 없어
기사입력 2019-10-13 오후 2:06:00 | 최종수정 2019-11-04 오후 2:06:00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손가락에 끼워 사용하는 것을 깍지라고 한다. 국궁신문밴드를 통해 《깍지-角指》사이버 기획전시를 준비하면서 우리 활쏘기에서 사용되는 깍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 보았다. 깍지를 기록한 서지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종실록의 오례로 보여지며, 가죽으로 만든 깍지를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17세기 중반까지는 주로 수깍지를 사용했으며, 효종 때부터 암깍지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른 깍지 내용을 소개한다.

■ 세종실록 133권, 오례. 깍지[決]·팔찌[拾]
○ 깍지[決]
가죽으로써 이를 만들어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 끼우는데, 활시위를 당겨 활의 몸체를 벌리는 것이다

■ 고전번역서 > 연려실기술 > 연려실기술 별집 제12권 > 정교전교
○ 효종이 심양(瀋陽)에 있을 동안에 활 쏘는 법을 익히 보고 돌아와서 드디어 깍지[角環]를 혀[舌]가 없는 것으로 개량하여 사용하게 하고, 모든 장수에게 훈계하여 이르기를, “내가 심양에 있을 때에 조대수(祖大壽)가 항상 엄지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깍지와 피부가 한데 붙어 조금도 흔적이 없었다.” 하고 곧 명하여, 밤낮으로 항상 끼고 있도록 하여 감히 풀어버리지 못하게 하였다.
  ►조대수(祖大壽) : 조대수는 명(明)나라 무장으로, 항상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있어 나중에는 깍지와 손가락이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國朝寶鑑 卷47 肅宗朝7》

■ 효종/효종 7년(1656년 順治(淸/世祖)13년/효종 7년 8월/효종 7년 8월 24일
승정원일기 141책 (탈초본 7책) 효종 7년 8월 24일 기해 4/15 기사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無舌角指를 사용하라고 擧子들에게 분부했더니 원래 有舌角指를 가지고 習射해왔다고 호소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처리할지를 묻는 武科殿試命官의 계
  ►무설각지(無舌角指):암깍지, 유설각지(有舌角指): 수깍지

■ 일성록 > 정조 원년 정유(1777) 5월 16일(경진)
깍지[角指]에 대한 옛 규례를 거듭 강조하고, 군복의 제도 및 홑옷과 겹옷은 임금의 옷을 따르라고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어제 병조 판서와 훈련대장이 아뢴 바는 바로 내가 늘 신칙하려고 했던 일이다. 장신(將臣)은 문관, 음관, 무관을 막론하고 항상 깍지를 끼고 있는데, 전례(典例)가 그러할 뿐만이 아니다. 옛날에 우리 효묘(孝廟)께서는 장신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기를, ‘내가 보니 조대수(祖大壽)는 항상 엄지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있는데, 가락지와 살이 꼭 맞아서 흔적이 없었다.’고 하시면서 밤낮으로 항상 끼고 감히 빼 버리지 말도록 명하였다. 숙묘(肅廟)께서도 이 하교를 되뇌이면서 장신들을 신칙하였으니, 이것은 《국조보감(國朝寶鑑)》과 《문헌비고(文獻備考)》 등 여러 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열조(列祖) 때부터 무사(武士)를 검열할 때 임금이 쓰던 깍지가 전해 오는 것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으니, 이제부터 옛 규례를 거듭 밝혀 병조로부터 문관과 무관 장신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모두 깍지를 항상 껴서 솔선수범하는 바탕으로 삼도록 하라. 이렇게 하면 품계가 낮은 무관들이 어찌 감히 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철종어진
철종의 31세 어진으로 군복을 입고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의 전신상이다. 『어진도사사실』과 『철종실록』에 따르면 1852년과 1861년에 철종 어진이 각2본씩 도사되었으며 이 어진은 1861년(철종12) 강사포본과 함께 제작된 군복본이다. 이한철과 조중묵이 주관화사로 참여했다. 어진 우측 상단에는철종 친필로 “내 나이 31세 초상”이라고 적혀 있다. 그 옆에 “철종 희륜정극 수덕순성 문현무성 헌인영효대왕”이라는 표제는 철정 연간 이후에 적힌 묘호와 존호이다.<출처: 고궁박물관> 「철종어진」은 한국 전쟁때 부산 피난 시 보관창고의 화재로 화폭의 1/3정도가 소실되었다. 다행히도 어진의 왼손에 있는 깍지는 원형 그대로이며, 암깍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 부산지하철3호선 수안정거장부지 발굴유물 수깍지(2017년 발굴), 
 - 조선전기 동래읍성 해자 유물, 부산지하철3호선 현장설명회 자료

 

■ 한국의 활과 화살(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1994)
1994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의 활과 화살 도록에 실린 깍지이다. 암깍지와 수깍지 모두 조선 후기로 표기되어 있다.

 

 

■ 조선의 궁술(1929년)에 기록된 암깍지
조선궁술연구회에서 1929년 발간한 ‘조선의 궁술’에 소개된 깍지 그림과 설명이 있으며, 설명을 현대어로 쓰면 아래와 같다.

뿔로 만들어 현을 당길 때 엄지에 부착하는 도구이다. 군문에서 사용하는 것을 설(舌)이 있기도 하는데 이는 목전과 철전을 쏠 때 많이 사용하고 유엽전을 쏠 때는 적게 사용한다.

■ 《깍지-角指》사이버 기획전시 
2019년 전국활터의 무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깍지를 기록하고 있다. 국궁신문밴드를 통해 본인의 깍지 사진을 촬영해서 등록하면 그것을 취합하여 자료로 남길 예정이다.
[관련기사]
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1890&msection=10&ssection=44 


2019년 한국의 활쏘기-깍지

archerynews@gmail.com

기사제공 : 국궁신문
깍지-角指, 사이버 기획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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