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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試誌) 세미나의 낙수(落穗)
-“정순”의 의미를 뒤늦게 깨우치다
기사입력 2020-05-15 오후 9:30:00 | 최종수정 2020-07-07 오후 9:30:36   

시지(試誌) 세미나의 낙수(落穗)
-“정순”의 의미를 뒤늦게 깨우치다 

 지난 주말 파주 영집 궁시박물관에서 열렸던 ‘여무사와 시지’ 세미나에서 우리는 지난 50여 년 활만을 추구하였던 어느 여무사 님의 감동적인 활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아울러 그 원로 여무사 님이 기증해 준 60여권의 시지 덕분에 그동안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시지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시간도 경험하였다. 그것에 더하여, 필자는 이번 시지 세미나를 들으면서 뜻밖에 깨닫게 된 활터 용어 하나가 있어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한다.

 활터의 용어 중에 자주 쓰면서도 그 뜻을 잘 모르는 용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정순’ 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오늘 정순 내었다‘라는 말을 할 때, 그 정순이라는 말을 한자로 ‘正巡‘ 이라고 생각하면서, 9 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 시지 세미나에 제공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정순의 한자가 ’定巡‘이며, ’정(定)해진 순(巡)‘이라는 의미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 정순은 때에 따라 9순이 될 수도 있고 7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지에서 오는 부끄러움보다, 늦게라도 그 뜻을 발견하게 된 기쁨이 더 컸다.


[사진1] 정읍 박물관 소장 필야정 시지 (1936)
- “定三巡” 

 편사의 대부분은 삼순 대회였다. 큼직하게 정삼순 (定三巡)이라고 쓴 표기가 보인다.  [사진1] 이런 의미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려주는 표시가 홍심정이 소장한 1903년 시지에 나타난다. [사진 2] 양 사정 기록의 중앙에 “中 依射法 定三巡”이라고 쓰여진 문구는 대략 “ 활쏘기 대회 규정에 의거하여(依射法) 정한 삼순(定三巡)에서 화살을 맞힌 것(中)”의 기록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양식이 변형되어 관중수 (中)이 정순 표기 속으로 들어가면 “정중삼순(定中三巡)”이 되어 난해한 문구가 되어 버린다. 정순을 이렇게 표기해 놓는 전통은 오늘날의 천양정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2] 김제 홍심정 소장 시지 (1903)
- “中 依射法 定三巡” 

2019년 편사 기록판의 사진이다.[사진 3] 5순 정순 편사임을 알 수 있다. 삼백년의 역사를 지닌 전주의 다가정, 읍양정, 군자정 삼개 정이 1912년 천양정으로 합쳐졌다. 그 기념일에는 삼개 정을 의미하는 홍, 황, 청 삼색지에 화살표로 관중을 표시하는 전통 양식의 시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홍심정 소장의 시지가 황과 홍, 두 색깔의 채색시지인 것은 편사 팀에 따라 다른 색깔의 시지를 사용하던 전주 활터의 풍습이 반영된 것임을 알겠다.


[사진3] 천양정 편사시수기록판 (2019년)
- “依射法 定五巡”
천양정 삼백년사, 72쪽. 

 정순이라는 용어는 실록에도 나온다. 병자호란(1636)을 치른 후 조선 조정은 무관만이 아니라 문관도 의무적으로 정기적인 활쏘기에 참석해야 했다. 그런데 활쏘기가 전문이 아닌 문신들은 ‘정해진 순’ (定巡)을 다 쏘지 않고, 한 두 순 쏘다가 불(不=無分)이 계속되면 바로 활을 접고 가버린 모양이다. 이에 병조에서 이렇게 정순을 쏘지 않은 문신들을 문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인조에게 건의하고, 인조는 그 건의를 승인하였다. 한발도 맞지 않자 그대로 활터를 떠나 버리는 문신들을 상상해 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파격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서이다. 민간 사정에서의 기록 문화가 조정의 활쏘기 문화와 연관된 사례이기도 하여, 승정원 일기에 나오는 그 사건의 전말을 여기에 곁들인다.   

 [좌부승지] 구봉서가 병조의 보고를 임금에게 전한다.

    “무신 당상(武臣堂上)과 문신(文臣)의 시사(試射)는 곧 무사(武事)를 잊지 않으려는 조종조(祖宗朝)의 뜻을 받들어 설행하는 것입니다. 낮의 길이에 따라 순수(巡數)를 정하고[定巡數] 그 순(巡)을 끝까지 다 마친 다음 성적에 따라 논상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인데, 근래 기강이 해이해져 편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풍조를 이루었습니다. 문신의 시사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순에 분(分)이 없으면 즉시 시험을 그만두고 물러가니 [文臣試射一二巡, 旣無分, 則卽止退去], 그 가운데 비록 활쏘기를 끝까지 다 마치고자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러한 풍조에 길들여져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 매우 놀랍습니다. 지금부터는 정해진 순을 준행하지 않는 자 [不準定巡者]는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승정원일기, 인조 17년(1639년)  10월 14일 기사)

20.05.15. 사법고전연구소 김기훈

기사제공 : 국궁신문
전통활쏘기문화의 재발견, 세미나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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