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학연습부터 자제, 활쏘기의 수련방식 등 설명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활쏘기 비결
초학연습부터 자제, 활쏘기의 수련방식 등 설명
정조 때 초계문신으로 정약용의 일 년 후배 서유구(徐有榘)는 젊은 시절 활솜씨가 정약용 보다 못했다. 여북하면 활솜씨가 ‘구제불능 최하급,’ ‘깎아내지 못할 썩은 나무 같았다’고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기록이 남아있을까. 서유구는 전라 관찰사, 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뛰어난 학문 수준으로 정약용과 함께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집안 대대로 실용적 세계관을 가진 실학자들로 선대가 판서, 대제학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家學을 이어 당시 나라의 근간이던 농업을 중심으로한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쓰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임원경제지』에 실린 활쏘기 비결(사결射訣)을 살펴본다.
정조가 49세 젊은 나이에 승하하자 왕의 총애를 받던 초계문신 출신 관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약용이 18년 유배길에 오르고, 같은 초계문신 동기 김달순이 축출 당하며 삼촌 서형수가 유배형을 받자 서유구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파주시 장단면, 현 군사분계선 내)으로 낙향한다. 정계복귀까지 18년간 민초들과 섞여 생활한다. 이 초야 생활 동안 몸으로 체험한 삶을 바탕으로 임원林園(시골 또는 향촌)에서의 살림살이와 농사를 중심으로한 조상의 생활 속 지혜를 담은 실용백과 『임원경제지』를 저술한다. 서유구는 현실에 써먹지 못하는 지식을 미련없이 버리고 사회의 개혁을 꿈꾸던 실용학문의 길을 걸었다. 사대부들을 향해 “메뚜기처럼 곡식이나 축내고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자 중에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다.”라고 일갈 했다. 실용적 가풍속에서 자란 서유구가 18년간 겪은 백성들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사대부들이 메뚜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총 16개 분야로 농업, 제조업, 상업, 예술, 교양, 취미 등 각 분야별로 나누어 내용을 정리했다. 농사일, 화훼와 수목을 재배하는 일, 향약(鄕藥)을 활용한 구급처방을 비롯하여 향촌 사회의 의례 및 여가활동 등 경제활동부터 의례에 이르기까지 선비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활쏘기에 관한 내용은 두 가지가 실려 있는데
첫째, 활쏘기 수련과 관련된 사결射訣은 13번째 교양 · 기예백과의 「유예지遊藝志」에 독서법讀書法, 산법算法(수학), 서벌書筏(글씨), 화전畵筌(그림), 방중악보房中樂譜(실내악)와 함께 실려 있다. ‘유예遊藝’는 “예에서 노닌다(유어예遊於藝)”는 의미로 『예기』와 공자의 말에서 따왔다. 강경 덕유정 이름 유래가 “『예기』에서 활쏘기로 덕德을 본다라는 말에서 '덕德' 자와 『논어』에서 예藝로서 논다(유어예遊於藝)는 '유游' 자에서 뜻을 취했다.”고 했는데 ‘유예’가 같은 의미로 쓰였다. ‘예’는 조선 시대 선비가 배워야 하는 육예六藝 즉,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예절, 지음知音, 활쏘기, 말 타기, 글 읽기, 셈하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육예를 주된 내용으로 쓴 「유예지」에 활쏘기(射) 사결이 실린 것은 활쏘기가 조선시대 선비의 필수 덕목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둘째, 활쏘기와 관련된 향사례鄕射禮는 12번째 가정과 향촌생활의 의례백과인 「향례지鄕禮志」에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약鄕約, 관혼상제와 함께 자세히 나와있다. 가정과 마을공동체의 화목과 질서를 세우려는 목적의 향사례는 단순히 화살로 과녁을 맞추는 기예技藝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고, 뜻을 바로 하는(정지正志) 예의와 연고덕행자年高德行者를 숭상하고 백성들에게 선을 권면하고 악을 징계하는 풍속교화 노력의 하나이다. 『임원경제지』는 16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고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완역되지 않은 책으로 「임원경제연구소」에서 번역중에 있다.
〔서유구 존영〕
사결은 「유예지」 1권에 나오는데 서유구가 초계문신 시절 그렇게 활을 못 쏘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쏘기 비결이 자세히 나와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의 연습법(초학연습初學練習)을 시작으로, 활쏘기 바른자세(임장해식臨場楷式), 자세의 결점(자병疵病), 바람과 기온(기풍風氣), 활과 화살 제조와 보관법(기구器具) 등 당시 활쏘기의 수련방식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다.
짐작컨대 초계문신 시절 망신당한 이후 절치부심 하던 중 낙향하여 여유가 생기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활쏘기를 배우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사결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다음 두 가지 기록이 이런 사실을 뒷 받침 하고 있다.
서유구가 처음 활을 배울 때 기록을 보면 친구와 함께 고향인 파주 임진강 근처의 작은 산인 백학산 서쪽 기슭에서 들판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으로 활을 잡은 서유구는 가득 당기지도 못했는데 팔을 덜덜 떨거나, 팔을 완전히 뻗어 자세를 굳히지도 못하거나,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머리를 뒤로 제껴 몸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등 초보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수를 거듭하고 마침내 과녁에 화살을 적중시키는 모습이 들어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는 ‘도덕道德을 활과 화살처럼 여기고, 인의仁義를 과녁처럼 생각하는 삶의 철학’을 활쏘기를 통해 확립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기록은 활쏘기를 익히고 난 다음의 기록으로 보인다. 시골에 사는 은자隱者가 갖출만한 집 바깥 공간 하나로 여긴 활터 모습은 이렇다. “뒤로는 산언덕을 등지고, 앞으로는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 한 채를 얽어 짓는다. 장송長松과 늙은 느티나무는 좌우에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끼는 대지를 뒤엎어 푸른 담요에 앉은 느낌을 자아낸다. 정자 남쪽에는 평탄한 들판이 드넓게 펼쳐있어서 활을 쏘기에 적합하다. 백수십 걸음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둔덕이 가로로 걸쳐있어서 이 둔덕에 붙여 과녁 두서너 개를 설치한다. 한가한 날 두 사람이 함께 서서 활을 쏘는 장소로 삼는다.”
서유구와 정약용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서로 대비되는 면이 많다. 똑같이 정조대왕의 신임을 받은 신하였고, 실학자였으며, 초계문신 선후배로 학문에 뛰어났지만 활 솜씨는 젬병이었다. 특히 활쏘기는 서유구가 구제불능 수준이었고 정약용은 조금 낫다고 하지만 임금으로부터 벌 받는 수준이었다. 비록 활쏘기 출발은 이렇게 망신스러웠지만 정약용은 「북영벌사기北營罰射記(벌로 활쏘기를 연습한 기록)」를 남기고, 서유구는 「유예지」에 사결을 남겨 활쏘기에 역사적 얘깃거리를 남겼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붙임으로 최근(2020년12월) 조선일보에 실린 글을 덧붙인다.
실학에 관해서는 두 사람의 길이 뚜렷하게 갈린다. 정약용이 경제와 제도, 국방 등 국가제도 개혁을 추구했다면 서유구는 농업과 의학, 산업 발전을 위한 실학을 추구했다. 정약용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을 집대성했다면 서유구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것이다. 서유구의 이용후생학은 부국강병 같은 제도개혁보다는 일반 백성의 피부에 닿는 생활현실과 복리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 점이 특징이다.
『임원경제지』 안에 활쏘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여태까지 활을 쏘면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조선시대 농촌생활 실용백과사전에 전혀 어룰릴 것 같지 않은 활쏘기라니?
지금까지 막연히 알고 있던 『임원경제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큼 당시 활쏘기는 왕으로부터 향촌에 이르기까지 필수 덕목이요, 과거시험 과목으로 일상에 뿌리내린 풍속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정조대왕 시대는 정조 본인은 물론 무반, 규장각 각신들과 초계문신들을 중심으로한 활쏘기의 부흥기였고 많은 스토리가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활쏘기에서 신궁이라 불릴 정도로 활을 잘 쏘았던 정조의 여러 활쏘기 기록 「고풍古風」은 「어사기御射記」에 자세히 실려있고(실학자 박제가가 기록), 체재공蔡濟恭의 「사궁기賜弓記」,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 북영벌사기와 홍절도어사각궁기洪節度御賜角弓記」, 이번에 살펴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유예지」 등이 모두 정조대왕 시대의 기록이란 점이고, 모든 기록은 정조대왕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다음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정조대왕이 꽃 피운 활 문화를 한데 묶어 살펴보고자 한다.
서유구는 1764(영조 40)∼1845(헌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대구,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 판서 서종옥(徐宗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 서명응(徐命膺)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호수(徐浩修)이다.
참고문헌
임원경제지 유예지(2017). 지은이 서유구, 옮긴이 임원경제연구소 정진성, 정명현
김형국(2011). 활을 쏘다. 171~172쪽
최형국(2016). 18세기 활쏘기(국궁) 수련방식과 그 실제(탐라문화 50호. 255쪽)
조선일보(2020). 12월16일자 A34면, 12월23일자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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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선(서울 화랑정)
초계문신과 서유구
과거시험이 부정행위로 난장판이 되므로 정조는 초계문신 제도를 두어 인재를 등용했다. 초계문신은 인재를 골라서 왕에게 아뢰어 등용한 문신이다. 정조는 즉위 6개월 뒤 창덕궁에 왕립도서관 규장각을 세웠다. 규장각 간부인 각신 6명은 공무 중 면책특권을 비롯한 많은 특권을 누렸다. 한성 안팎으로 말을 타고 다니는 어마어마한 특권도 있었다.(1776년9월25일 정조실록) 그리고 5년 뒤 37세 이하 과거 합격생 가운데 초계문신을 뽑았다. 정조는 이들을 규장각에 근무시키고 직접 가르쳤다. 왕이 관료를 직접 양성한 것이다. 1781년 16명을 비롯해 1800년까지 초계문신은 모두 139명이 선발 됐다. 1789년 15명에는 정약용이, 1790년 19명에는 문제적 인물 서유구가 들어 있었다. 교육은 혹독해서 초계문신들은 동몽童蒙(어린아이)같이 맞으며 생도生徒(학생)같이 단속 당했다.(정약용 경세유표 권1 춘관예조 3) 활쏘기 또한 교양필수 였는데 , 정약용도 못 쏘았고 서유구도 못 쏘았다. 서유구는 특히나 1791년 10월 2일 초계문신들이 활쏘기 훈련을 받았는데 대부분 활을 쏘지 못했다. 실망한 정조는 시험을 중단 시키고 병영에서 훈련을 명했다. 많은 이가 재시험을 통과 했으나 서유구는 ‘구제불능 최하급이라(下愚不移 · 하우불이) 깎아내지 못할 썩은 나무 같았다(朽木不可雕也 · 후목불가조야).‘ 고문관 서유구는 또 숙직을 하며 훈련을 해야 했다.(1791년 10월 27일 승정원일기) 그런데 공부는 뛰어났다. 1789년과 1790년 초계문신을 대상으로 한 시경 강의 후 정조가 출제한 시험 문제 590개 가운데 후배 서유구는 181개, 선배 정약용 답안은 117개가 채택됐다.(정명현 등 ’임원경제지,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12, p149 이하) 똑같이 전도유망한 초계문신 선후배 정약용과 서유구는 이후 인생도 많이 닮았다. 활쏘기를 잘 못한 것도 닮았고, 학문에 뛰어난 것도 닮았다.(이하 중략)
○ 출처 : 조선일보 2020년12월16일자 A34면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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