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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기고 있는 국궁의 역사-반구대 암각화

입력 : 21.09.03 15:31|수정 : 21.11.10 15:31|국궁신문|댓글 0
7천년전 한반도 활쏘기의 모습, 반구대 암각화 수렵도

물에 잠기고 있는 국궁의 역사 - 반구대 암각화
7천년전 한반도 활쏘기의 모습, 반구대 암각화 수렵도

김기훈 (육사 명예교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렵어로 장면을 바위에 새긴 그림들이 있다.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바위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그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다양한 종류의 고래들과 작살이나 배를 타고 고래를 포획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 세계 포경사를 새롭게 쓰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전리 암각화는 선사 시대의 기하문양과 신라 왕실의 로맨스가 새겨진 명문으로 유명하다. 1970년 최초로 암각화들이 세상에 알려 진 이래 이 좁은 계곡에 박물관이 두 곳이나 지어졌고,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이제는 명실공히 울산의 특급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가보지 않은 이도 아마 한두 번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연이 닿아 우리 일행이 이곳을 찾은 것은 지난 8월 30일 늦은 저녁이었다. 반구대 바로 앞에 세워진 집청정 정자에서 대곡천의 자연과 인문 환경에 대한 주인장의 설명을 듣고, 정자 뒤쪽에 민박용으로 지은 황토방에서 간만에 등을 대고 따뜻한 구들목에 누워 하루 밤을 지냈다. 다음 날 아침 방을 나서니 눈 앞에 보이는 곳이 바로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반구대요, 이 곳에서 상류 쪽에 천전리 암각화가 있고, 하류 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한다.

우리 일행의 답사를 위해 울산궁도협회 김 전무가 어렵게 근접 촬영 허락까지 받았으나 행운이 뒤따라 주지 않았다. 늦여름의 비가 화근이었다. 그래도 천전리 암각화를 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약간 앞으로 경사지게 기울어진 암벽에 새겨진 그림들은 문양과 그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불어난 물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는 근접 촬영도, 육안 확인도 해 볼 수 없었다,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그림 바위 건너편에 설치된 관람대에서 일반 관람객처럼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바위 그림들의 형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안타깝게도 가까이서 보아도 잘 안보일 정도로 그림들의 훼손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암각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 못해도, 박물관의 모형이나 탁본 등 다양한 형태의 시각 자료들이 그 전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결과 현지 탐방은 이 태화강 상류 대곡천의 암각화가 고래 그림과 신라 화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한 순간에 일깨워 준다. 반구대 암각화 속에는 고래와 같은 해양 동물 외에 호랑이 사슴 등 육지 동물도 많이 그려져 있다. 우리 일행이 특히 주목한 것은 그 중에서도 육지 동물들과 활 사냥꾼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수렵의 모습이었다. 답사 전에 미리 본 책에서는 사냥꾼이 한 명 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현지에서 준비해 준 채색 도면을 통해서 살펴보니 대략 세 명의 활 사냥꾼 그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전리 암각화에서 활을 든 또 한 명의 사냥꾼 그림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대곡천 암각화에서 활로 동물을 사냥하는 최소한 4명의 인물상이 확인된 것이다.

‘발견’이란 상대적인 개념인 모양이다. 대곡천 바위에 활 쏘는 수렵도가 있다는 사실은 현지의 궁도인 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미 발견되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우리들에게도 이것은 ‘첫 발견’이었다. 우리들에게도 그 발견의 기쁨과 흥분이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흥분시켰을까.  

 


반구대 암각화 – 세 명의 활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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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우리를 흥분시킨 것은 비록 그림을 통해서이지만 선사시대의 활을 처음 눈으로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활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수렵도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활이 등장한 시기는 구석기 후기로 본다. 그 시대의 화살촉이 여러 지역에서 발굴됨으로 비록 유물은 없지만 선사시대에도 활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반도의 선사 시대에 활이 존재하였음을 추정이 아니라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수렵도의 역사도 바뀌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수렵도는 1,500여 년 전의 만주 무용총 수렵도를 제일 선두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무용총 수렵도보다 훨씬 앞선 7,000여 년 전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 수렵도를 최선두에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한반도 최고의 활 그림 유적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활의 유구한 역사를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부심을 한층 더 고양시켜 준다. 동시에 이 암각화를 국궁의 역사와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자산으로 보존하고 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의무도 부여한다. 선사 시대의 암각화가 설치된 공간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와 축제의 공간이요, 신성한 공간이었다. 우리에게는 국궁 문화의 유구함과 풍부함 그리고 발전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가 없다. 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는 국궁의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올림픽 대회가 그리스의 올림픽 신전에서 벌어진 축제를 복원 발전시켰음을 상기해 본다면, 스포츠 국궁과 신성한 문화는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사 시대 수렵꾼들의 신성한 기원 장소인 이 반구대를 국궁인 들의 성지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치 강화도 마니산에서 전국 체전 성화가 채취되듯이 이곳을 매년 최초의 국궁대회 성화가 채취되는 곳으로 만들고, 이곳을 또한 국궁인 들이라면 평생 한 번은 꼭 들리는 최고의 순례 성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평소에는 이 대곡천을 다양한 활쏘기의 전시장이요 체험장이며 축제장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전국 대회를 멀다않고 찾아다니는 국궁인 들이다. 우리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이러한 문화 사업들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실천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아닌가.

늦게 알게 된 까닭에 급히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9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고래 그림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 유산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산으로 정식 등재 되지 못하고, 아직도 후보격인 ‘우선 등재 목록’에 선정되어 있을 뿐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탁월한 인류 문화자산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번번이 정식 등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암각화를 물로부터 보전할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65년 대곡천 하류에 건립된 사연 댐 때문에 2014년까지는 일 년에 거의 8개월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암각화가 잠기지 않게 수위를 낮춘다고 하지만, 태풍이나 큰 비가 오면 여전히 물에 잠겨 버린다. 우리 일행이 반구대 암각화를 보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울산 시민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서 구출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운동을 그들만의 운동이 되게 하지 말자. 그들의 운동은 곧 우리 국궁의 역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함을 잊지 말자. 반구대 암각화는 수영을 못한다.

 


천전리 암각화 – 한 명의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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