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양평정 전경]
 

양평정의 독특한 신사 교육과 그 의미의 발견

김기훈(육사 명예 교수)

 아무리 장소가 넓고 시설 환경이 좋아도 방문하는 이들이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면 발걸음이 멀어지게 마련이다. 양평정과 인연을 맺은 후에 지난 몇 년간 일이 있으면 꼭 찾게 된 것은 양평정 사우들의 온정이 항상 온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의를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필자가 양평정을 더욱 기억나게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양평정이 다른 정과는 달리 독특한 신사 교육 과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양평정에서 국궁 교수회 모임이 있었을 때로 기억한다. 양평정의 민 사범이 지나가듯이 ‘우리 정에서는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좌궁과 우궁을 동시에 가르칩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독특하다고 생각하여 오래 기억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좌우궁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이 교육법이 가지는 ‘의미’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하였다. 

 그 교육법의 의미를 재삼 되새기게 된 계기는 최근 유튜브에서 튀르크에 활쏘기 사법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튀르크에 활쏘기 클럽 사범에 의하면, 자신들은 전통적으로 초학자들에게 좌궁과 우궁을 동시에 가르친다고 하였다. 그 말이 나의 뇌리를 쳤다. 초집중하여 그 사범의 설명을 되풀이하여 들었다. 요지는 이러하였다. ‘우리는 초학자들에게 좌우궁을 동시에 가르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양쪽 팔의 힘이 균형을 이루어야 부상을 방지하고, 동시에 정확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말을 타고 활을 쏘게 될 경우 말의 좌우측 모든 방향에서 동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 대비하여 사수는 좌우궁을 겸비해야 한다. 말의 왼쪽에서 동물이 나타나면 우궁으로 쏘다가도, 말의 오른쪽에서 동물이 나타나면 재빨리 좌궁으로 바꾸어 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의 몸도 보호하고, 사냥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초학자들에게 가장 먼저 좌우 빈 활 당기기를 시킨다. 이십 파운드 정도의 연궁을 사용하여 좌궁 육백 번, 우궁 육백 번 씩 빈 활 당기기 훈련을 먼저 한다. 근육 기억 (muscle memory)을 위한 훈련이다.’

 빈활 당기기 교육이야 우리나라에서도 한다. 별로 특별하지 않다. 다른 점은 양손 당기기 훈련이고, 내가 인상을 깊이 받은 것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필자가 즉각 양평정의 좌우궁 동시 교육의 ‘의미’를 떠 올린 것도 바로 그런 교육의 이유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양손 교육의 목적이나 이유가 튀르크에 교육과 같은지 다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양손 활쏘기 교육이 세계 여러 곳에서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이루어지고 있고, 그러한 흐름에 양평정이 의식했든 아니했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참 흥미로웠다. 

 세계 각 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양손 활쏘기 교육의 ‘의미’에 대한 내 나름의 자각이 이렇게 한 번 이루어지자, 그동안 미심쩍어 했던 주시안(dominant eye) 문제도 어느 정도 풀렸다. 주시안은 양 눈 가운데 거리나 형태를 판단할 때 주로 사용하는 눈을 말한다. 국궁 사법을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왼눈이 주시안인 궁사는 왼팔로 당기는 좌궁 쏘기를 해야 하고, 오른 눈 주시안을 가진 이는 우궁 쏘기를 해야 한다. 주시안(좌안, 우안)과 주손(좌궁, 우궁)이 같을 경우를 동측 지배라고 하고, 반면에 주시안과 주손이 다르면 대칭 지배라고 한다. 이들은 동측 지배가 대칭 지배에 비하여 과녁을 맞힐 수 있는 정확도가 훨씬 높다고 주장한다. 국궁의 통계는 없지만, 양궁 등 다른 스포츠의 통계를 이용하여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나는 처음에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보아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주손에 해당하는 좌우궁은 시작할 때 이미 결정된다. 사범들이 오른손잡이면 우궁을, 왼손잡이면 좌궁을 자연스럽게 권하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 나중에 구사가 된 후에 혹시 주시안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에 맞추어 주손을 바꾸려면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주변에서  주시안 때문이 아니라 팔의 부상 때문에 좌우궁을 바꾸는 사례를 간혹 본다. 바꾸기도 힘들지만, 그 효과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만약 양평 정처럼 신사 교육 과정에서 좌우궁을 동시에 익히게 하고, 주시안에 맞추어 좌궁과 우궁을 결정하게 지도한다면, 주시안 문제가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양평정 교육은 주시안-주손을 일치시키는 동측 지배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근육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내가 경험한 양평정은 훌륭한 시설 환경이나 사원들의 호의만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타 정의 구사들을 일깨우는 독특한 사법 교육이 실시되는 곳, 그래서 어쩐지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사정이 되었다. 

【주】 위 글은 「양평정 25년사」 기획 원고이며, 양평정 25년사 편집위원장의 허락을 받고 국궁신문에 먼저 소개함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archery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