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지역별 활쏘기의 조사 보고서 <조선의 향토오락>

1941년에 간행된 마지막 ‘조선총독부 조사자료 제47집’
13개 도, 226개 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놀이와 유희에 대해서 조사
그 중 107개 지역의 활쏘기에 대한 조사와 보고를 수록

 24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파묘破墓’에는 핵심이 되는 사건을 만든 흑막으로 ‘무라야마 준지’라는 일본인 음양술사가 등장한다.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이 캐릭터의 이름인 ‘지준’을 ‘준지’로 순서만 바꾸면 ‘무라야마 지준’이 되는데, 그가 바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촉탁 연구원으로서 당시 한국의 민속과 민간신앙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일제의 조선통치를 위한 인문학적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던 실존 인물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純, 1891~1968)’이다.  
 

△ 무라야마지준

 ‘무라야마 지준’은 한국에 대한 사진 등을 포함한 많은 조사 자료를 남겼고 이를 모아 조선총독부에서는 식민지 통치를 위해 출판물로도 펴냈는데, 그중에서 1930년대 중후반 조선에서 행해지던 오락, 놀이를 조사하고 모아놓은 서적이 ‘조선의 향토오락 朝鮮の鄕土娛樂’이라는 책이다.

 1920년대 일본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민속놀이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전통놀이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여러 방면에서 전승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무라야마 지준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집하던 시기에는 ‘향토오락 보호 조장. 200여 종을 조사·수집하여 지방의 특수성에 적응된 것은 민중의 오락으로 지도·발전시킨다. 씨름, 그네, 널뛰기, 달맞이, 답교, 농악 등은 활성화한다(동아일보 1938년 7월 28일자).’라는 정책을 펼쳤다.

 위 신문 기사에서 보이듯이 일제의 이러한 조사는 사라져가고 있던 조선 전래의 전통놀이 문화에 대한 보존과 부흥을 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조선인들의 오락과 놀이 문화를 조사한 뒤에, 이를 선별하여 보급하여 불만을 잠재우고 특히 전시체제로 전환되는 시기와 맞물려 농촌 지역민의 이탈을 방지하고 식량 생산성을 높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전국적인 조사인 만큼 놀이를 하는 주체들을 ‘일반인, 양반, 농민, 남자, 여자, 어린이’등으로 분류하고 이에 해당하는 예를 제시하여 각 신문 등에 게재하였다. 

 

△ 조선신보. 조선의 향토오락조사

[大邱]
농촌진흥운동의 확충과 함께 농산촌민의 오락기관을 충실하야 소위 애향심의 개념을 양성하고 청소년의 도시동경심을 해소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시설로 도당국에서는 이 방면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기로 되어 금반 농촌에 在한 오락관으로 남자에게는 윷놀이擲柶 씨름脚戲, 女子에게는 산유회遊山, 儒生에게는 시회詩會 또 小兒 農靑少年 에게는 豊年舞等을 각 군에 통첩 상황조사를 하야 이를 장려하기로 되엿다. <매일신보>󰡕(1936년 4월 16일)

 그중에서 충북지역의 향토오락을 조사하면서 ‘남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들’에 ‘궁술회弓術會’라는 명칭으로 분류되어 있다.

 ‘조선의 향토오락’은 각 지방의 보통학교에 의뢰하여 수집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930년대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총 6,400여 종에 달하는 놀이 이름과 1,300여 종에 달하는 놀이의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전국을 당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여 13개 도道로 나누어 서울은 경기도에, 제주는 전라남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13개 도는 모두 226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놀이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으며 ‘향토오락’이라는 주제에 포함되는 민속놀이와 명절 이외에도 무속이나 노동에 해당하는 것까지 조사하였다. 

 그 가운데 활쏘기가 조사된 곳은 총 107개로 지역별로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를 편의상 현재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여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 중에서 활쏘기에 대해서 조사된 내용들이 대동소이하였기 때문에 시기나 대상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적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 별도의 설명이 붙어있는 지역과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서울 
<놀이법> 사정거리를 80간으로 하여 길이 12척 폭 8척의 나무판 과녁을 세우고, 사정射亭에서 사수들이 순서대로 화살을 활에 걸어 과녁을 향해 쏜다. 화살 다섯 발을 쏘는 것을 한 시합으로 한다. 대개는 회원을 조직해서 사정을 유지하는데, 봄과 가을에는 한 사정내에서 편을 갈라 경기를 하며, 다른 사정과의 시합, 혹은 전국적인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활쏘기 모임이나 시합 때에는 주연을 벌이고 기생을 불러서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게 한다. 
<유래> 예로부터 전해오는 연무의 유풍이다

○ 개성 
<놀이법> 대개 서울지방과 같다. 무사도 정신의 단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락적이다. 예쁜 기생을 불러 술잔치를 겸한다.

○ 고양
<놀이법> 서울지방과 같다. 사정거리 120보정도, 화살은 각자 다섯 발씩을 쏘며, 적중율이 높은 사람이 이긴다.

○ 양주 
<놀이법> 경기의 다른 지방과 같다. 경주용 활쏘기를 할 때에는 술잔치 베풀고 기생을 불러 성원하는 경우도 있다.

○ 연천
<놀이법> 약 150미터 거리에 있는 표적에 다섯 개의 화살을 쏘아 맞히는 경기다.

○ 부천 
<놀이법> 편사便射라고도 한다. 마을마다 선수를 출전시켜 활쏘기 대회를 여는 일도 있다.

○ 옥천
<놀이법> 뽕나무 가지로 활을 만들어, 대나무에 화살(촉)을 달아서 쏘면서 논다.

○ 대구
<놀이법> 아름다운 기생들이 궁사들의 뒤에 줄지어 서서 노래로 사기를 북돋운다. 화살이 적중하면 '지화자'를 부르며 춤춘다.

○ 경주 ※ ‘활쏘기’ 항목이 아니라 ‘신라제’ 항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놀이법> 신라 육촌의 조상의 재단을 황성 숲에 차려놓고, 그 자손들과 읍내의 관민이 합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 후 신라시대를 회상하는 뜻에서 궁술弓術, 씨름, 제등행렬, 신라무용, 신라행렬 등을 한다. 
<유래> 이 제사는 1934년 부터 시작한 신라 시대를 기념하는 제사이다.

○ 춘천
<놀이법>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설치하고 활을 쏘아 맞춘다.

○ 철산
<놀이법> 50미터 정도 거리에 과녁을 두고 겨누어서 쏜다.

○ 정평
<놀이법> 뜰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로 맞히든가 공중 높이 이것을 쏘아 날리며 즐긴다. 

○ 경성나남
<놀이법> 활터射的場을 설치하고 활쏘기弓射의 경연을 한다.

○ 명천
<유래> 옛날에는 각 면面을 사社라고 했는데, 각 사에는 사계社契가 있어 궁술弓術 연습을 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처럼 당시 행해지고 있던 활쏘기 풍습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을 알 수 있으며, 조사된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 시기별 구분
○ 계절별 시행
대부분의 지역이 계절에 관계없이 ‘수시’나 혹은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 하고 활쏘기를 하고 있지만, 농번기를 제외하고 겨울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농한기에 시행된 군사훈련의 흔적이거나 정월대보름 행사의 하나로 행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봉화: 겨울, 봄
- 춘천; 가을, 겨울
- 금화; 겨울  

○ 명절
‘명절, 추석, 단오, 4월초파일, 정월’ 등이 있는데 명절을 맞아 큰 활쏘기 대회가 있기 때문에 조사된 것으로 보인다. 명절에 활을 쏜다고 되어있는 지역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부지역들이다.  

대구: 구3월 혹은 수시
경주: 신라제 10월1일~3일
- 회양: 수시, 명절
- 은율: 정월
북청: 추석
무산: 4월초파일
청진: 단오, 추석

■ 연령별 구분
나이대가 특정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중년 이상의 유한계급이 주된 참여계층이라고 하겠다. 
‘중년이상’ ‘장,청년’ ‘대인[성인]’ ‘장노년’ ‘중노(인)’ ‘자공[어린이]’

■ 신분별 구분
○ 유한계급의 놀이
일반 혹은 남자들로 표기된 경우가 가장 많지만, 활쏘기를 즐기는 대상은 그 지역에서도 어느정도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남자들이 주로 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상류계급남자’ ‘유한계급유지’ ‘유한남자’ ‘유산자’ ‘부유남자’ ‘중류이상’ ‘신사’ ‘유림’ ‘상류인’ ‘호화자제’ 라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 상류계급남자, 상류인사, 상류남자: 서울, 대구, 하동, 산청
유한남자, 유한자, 유한인, 유한계급, 유산자: 개성, 고양, 충주, 대덕, 부여, 무주, 남원, 경주, 성주, 청주
부유남자: 양주, 가평
중류이상: 이천, 영동, 괴산, 
유림: 광주, 시흥, 논산, 아산, 부안, 여수, 해남, 김해, 서흥, 강릉 , 원주
호화자제: 정선
무부: 함안
신사: 옥구

특이하게도 함안에서는 ‘무부武夫’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농민’ 이 참여자인 경우도 있는데 주로 북쪽 지역으로 행해지는 시기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와 있다. 

○ 여성의 참여
당시 다른 지역에서도 여성들의 활쏘기 참여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여성들이 활쏘기에 참여가 기록되어 있다. 주로 기생들은 편사 등에 선수가 아니라 흥을 위해서 동원이 되는 경우가 있었기에 기록이 활쏘기 행사의 한 구성요소(선수가 아닌 응원)로서 기록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신문기사나 사진자료들을 보면 기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활을 쏜 기록들이 많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남녀가 함께 참여하는 놀이의 경우에는 ‘일반’으로 표기되어 있다.

- 일반: 청주 구례 보성 진양(진주) 김해 춘천 회양 평창 평강
- 유한자와 기생: 경주 성주
- 일반 취미있는 자 : 부천
- 남녀애호자: 동래(부산) 
- 남(여) : 통영 사천 함양
 
부천과 동래의 경우 ‘기생’과 구분하여 ‘일반 취미있는 자’, ‘남녀애호자’라고 하여 여성들도 취미로서 활쏘기를 즐기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인근 지역들인 통영, 사천, 함양에서는 주로 남성들이 활쏘기를 즐기지만 소수의 여성들도 함께하고 있어서인지 ‘남(여)’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자면, 1935년 대구 관덕정에서 열린 대회를 보면 여무사들의 참여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1935년 5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제4회 전조선 궁도대회(全朝鮮弓道大會)가 대구궁도회 관덕정 주최와 동아일보사 대구지국의 후원으로 25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특히 여자 활량의 성적이 좋았음을 이채로운 점으로 들며, 여사女射 부문에서 1, 2, 3등을 차지한 진주 출신의 금월색金月色과 마산에서 온 한석란韓石蘭, 3등이 된 경주 출신 송죽松竹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

○ 어린이
어린이들의 놀이로 활을 만드는 기록도 있고, 주로 근거리의 활쏘기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없는 지역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을 테지만, 조사 결과는 3개 지역으로 나온다.

- 옥천: <놀이법> 뽕나무 가지로 활을 만들어, 대나무 끝에 촉을 붙여 화살을 쏘면서 논다. 
- 제천: 남자, 어린이 
- 정평: <놀이법> 뜰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로 맞히든가 공중 높이 이것을 쏘아 날리며 즐긴다. 

 이 책에 수록된 활쏘기가 행해진 지역들을 보면 당시 신문이나 사진자료들에는 활쏘기가 행해졌지만 누락된 지역들이 더러 있고, 참여자중에도 여성들이 있는데 빠져있는 지역도 종종 보인다. 특히 평안도, 함경도와 같은 북한지역의 활터들에 대해서는 조사가 상당히 미흡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놀이와 유희의 종류와 조사 사지역에 광범위하였고, 조사내용이 오락, 유희등 당시 태평양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시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에서는 그다지 조선의 통치에 긴요한 사안이 아니다보니 추가적인 자료 조사나 내용 보강에는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간에, 이 책을 통해서 단편적이나마 일제 강점기 지역별 활쏘기 문화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양준모 hwalsso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