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활쏘기 철학, ‘물불가영야’
- 정조대왕 10순 49중 이야기

 지난 2024년 6월 29일, 경기도 파주시 영집궁시박물관에서 열린 「정조와 활쏘기」 세미나에서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윤백일 고문(전통활터 진남정)은 「정조의 고풍연구」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정조실록에 기록된 정조대왕의 활쏘기를 소개한 바 있다.
 윤백일 고문은 당시 발표의 마무리 과정에서 정조실록 1권의 부록 속편에 실린 「정조대왕 천릉지문(遷陵誌文)」에 있는 ‘물불가영야(物不可盈也)’를 인용하며, 정조가 활쏘기를 단순한 무예가 아니라 철학적 통찰과 연계하여 인식했음을 강조했다.

【정조대왕 천릉지문의 일부-원문과 국역】
 其於射藝, 得於天分, 五十發輒四十九中, 曰: ‘物不可盈也.’
 (기어사예, 득어천분, 오십발첩사십구중, 왈: "물불가영야)

  - 활쏘기에 있어서는 타고난 천분이 있어서 50발 중 49발을 명중시켰는데, 이때 왕은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가득 차면 못쓰는 것이다.”라 하였다.

  정조는 활을 쏘면서도 절제와 균형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50발 중 49발을 맞히고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충만함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이는 활쏘기를 넘어, 삶 전반에 걸친 정조의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신궁의 경지에 이른 정조대왕의 활쏘기는 고풍(古風) 자료를 통해 실제 활쏘기의 시수를 확인 할 수 있으며, 10순(50시)을 쏘아 49발을 과녁에 맞춘 기록이 수차례 있다. 또한 50발 중 일부러 한발을 과녁에 맞추지 않고 49중을 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정조실록에 언급된 10순에 49발을 맞춘 이야기를 살펴보면, 매 순마다 5시를 발시한 것이 아니라, 초순부터 4순까지는 정상적으로 매순 5발을 쏘아 몰기를 했고, 5순부터 9순까지는 매 순마다 4연중 후 5시를 쏘지 않았다. 이후 5순부터 9순까지 발시하지 않은 쏘지 않은 5발 화살을 모아 1순을 만들어 5순부터 9순의 각 막시인 5자대를 맞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막순인 10순은 초시부터 3시까지 연3중하고 4시를 일부러 허공으로 쏘아 비우고 5시는 채웠다. 49중이다. 
  정조대왕의 49중 시수를 보기 쉽게 표현해 본다. 실록에는 관변의 구분이 있었고 점수를 따로 계산 했지만 여기서는 관변 구분 없이 관중으로 표기했다.

◇ 제1순-제4순(20시/20시)
 초순부터 4순은 모두 몰기하여 20중이다.

◇ 제5순-제9순(매순마다 4시까지 발시, 연4중)
  5순 부터는 연4중을 하게 되면 막시(5시)를 발시 하지 않고 다음 순을 낸다.
  매순 마다 5시는 발시하지 않았다. 

◇ 제4순-제8순(매순 막시-1순)
 앞 순에서 발시하지 않은 매순 막시를 모아 만든 1순을 갖고 5순부터 9순까지 막시(5시)를 쏘아 맞춘다.

◇ 제10순(4시는 채우지 않고 허공으로 쏜다)
  10순에서 연3중을 하고 4시는 허공으로 쏜다. 그리고 막시를 맞추면서 49중을 기록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실록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49중을 기록한 고풍지 중 위와 같이 10순 4시를 비우고 막시를 맞춘 것으로 기록한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다. 대부분 아래의 고풍지처럼 10순 막시를 비워두고 있다.

△임자년 김희 고풍

아래 내용은 국역 일성록자료이다. 정조실록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국역자료】일성록 > 정조 > 정조 16년 임자 > 10월 30일
  정조 16년 임자(1792) 10월 30일(을미) 16-10-30[28] 
  춘당대에 나아가 유엽전으로 소적에 10순을 쏘아 49발을 맞혀 72분을 얻었다. 또 소소편혁에 단순을 쏘아 5발을 맞혀 7분을 얻었다. 또 유엽전 1순을 쏘아 5발을 맞혀 6분을 얻었다. 각신에게 고풍을 내리고 이어 신하들과 함께 연구를 지었다.
○ 전교하기를,
  “아, 우리 성조(태조)께서는 하늘이 내신 뛰어난 무예로 활 쏘는 솜씨가 신비의 경지에 이르셨다. 그리하여 난을 일으키는 무리를 모조리 제거하고 백번 싸워 대업을 이룩하셨다. 그 활과 화살이 지금도 풍패(함흥)의 옛 궁에 간직되어 있고, 우리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그것을 마치 한 고조가 뱀을 벤 검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아, 성대하도다. 그로부터 성스럽고 거룩한 임금이 대를 이어 오면서 선업을 더욱 빛내고 백성들에게 흡족한 덕을 베풀었기에 문치의 아름다움이 삼대에 비길 만하였다. 그러나 활 쏘는 기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때는 없었다. 역사와 야승(野乘)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것들은 그만두고라도, 궁중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들과 또는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것만 해도 활 쏘는 기법의 신묘함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바가 있으니, 활 쏘는 것은 사실 우리 왕조의 가법(家法)인 것이다.
  나도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고 또 그것이 선업을 이어 가는 한 가지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젊은 시절에는 활쏘기를 하여 40여 발을 맞힌 적이 자주 있었으나, 중간에 10여 년은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 10여 년 동안에 때로 활을 쏘기도 했지만 매번 몇 순에서 그쳤고 10순을 다 쏘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달 12일 정축일에 처음으로 10순을 쏘았는데 그날 41발을 맞혀 50분을 얻었고, 5일 지나 16일에는 30발을 맞혀 39분을 얻었고, 다음 날 17일에는 32발을 맞혀 38분을 얻었고, 18일에는 41발을 맞혀 52분을 얻었고, 20일에는 41발을 맞혀 51분을 얻었는데 그날이 바로 전(箋)을 지어 올린 여러 신하들이 나와 함께 쏘았던 날이다. 22일에는 46발을 맞혀 58분을 얻었고, 26일에는 47발을 맞혀 51분을 얻었는데 그날은 내각에 고풍으로 붓 한 자루를 내리고 이르기를 ‘이후로 49발을 맞히지 못하면 모두 이 격례(格例)를 쓰겠다.’라고 하였었다. 28일에 또 활을 쏘아 41발을 맞혀 52분을 얻었고, 29일에는 45발을 맞혀 57분을 얻었으며 또 소소편혁에 단순을 쏘아 모두 맞혔고 또 소소편포에 단순을 쏘아 4발을 맞히고는 전날처럼 고풍을 내렸다. 처음 10순을 다 쏘기 시작한 지 9일 동안에 많이 맞히기도 하고 적게 맞히기도 하였으나 요컨대 옛날의 성적과 비교하여 솜씨가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날 유엽전으로 소적에 10순을 쏘았는데 앞의 4순은 연이어 모두 맞혔고 제5순에서 또 연거푸 4발을 맞혔다. 보통 활쏘기를 하는 자들이 49발을 맞힐 것을 목표로 할 경우, 제4순이 지난 뒤로는 4발을 맞히면 중지하고 매번 1발을 남겨 두었다가 제9순이 지나면 남겨 두었던 것을 가지고 따로 1순을 쏘아 남아 있는 수를 채운다. 그래서 나 역시 그 관례대로 남은 화살을 남겨 두고 쏘지 않았으며 순기도 눕혀 두고 세우지 않았었다. 제6순도 그리하였고 제7순도 그리했으며 제8순과 제9순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9순을 쏘고 나서 따로 1순을 쏘아 모든 화살을 맞혀 채우고 난 뒤에야 순기 다섯 개를 함께 세웠다. 제10순에 와서 연거푸 맞히다가 네 번째 화살을 쏘려고 하면서 좌우에 이르기를 ‘다 맞혀서는 안 된다.’ 하고 왼쪽으로 화살을 쏘았고, 다섯 번째 화살을 쏘아 결국 맞혔다. 통틀어 10순을 쏘아 49발을 맞혀 72분을 얻었는데 

  이에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많은 분수를 얻게 되었는데 거의 무엇인가가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하고, 이에 각신들 - 오재순, 서유방, 이병모, 박우원, 서용보, 정동준, 윤행임, 서영보, 남공철, 김조순이다. - 에게 고풍으로 각각 반숙마첩 1장씩을 내리고, 검서관 9원(員)에게 고풍으로 각각 관 3자루와 현 1홀을 내리고, 각리에게 고풍으로 미 1섬, 전 10냥을 내리고, 각례에게 고풍으로 전 10냥을 내리고, 각동에게 고풍으로 전 100닢을 내리고, 서사, 겸리, 윤리, 보리에게 고풍으로 각각 미 1섬씩을 내리고, 화원, 사자관에게 고풍으로 각각 전 10냥씩을 내리고, 검률에게 고풍으로 장지 1권을 내렸다. 이날 등불 아래에서 고풍지에 생각나는 대로 쓰기를, “활 쏘는 기예는 바로 우리 집안의 법도여서 감히 유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10여 년 이래로 10순을 쏘는 활쏘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근일에 와서 팔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몇 차례 10순을 쏘는 활쏘기를 하였더니 10순에 40여 발을 맞혔다. 그래서 고풍을 써서 내렸더니 경들이 전을 올려 사례하기에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49발까지 맞히면 그때서야 고풍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오늘 맞힌 화살 수가 약속했던 그 수와 맞아떨어졌다. 
 이에 문방 용구와 마첩 등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전에 했던 말을 실천하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경들이 이미 사례하는 전을 올렸으니 또 고풍으로 답을 하고 겸하여 바른 마음으로 조정에 일할 것을 권면하고자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덕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에 다툼이 있지 않으니 왕의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 뜻이다.”하였다. 이어 신하들과 함께 연구를 지었다.

[주-D001] 전교하기를: 이 부분은 원문에는 없는데, 《정조실록》 이날 기사에 의거하여 ‘傳曰’ 두 글자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주-D002] 정축일(丁丑日): 원문은 ‘乙亥’인데, 《일성록》의 이날 일간지가 정축(丁丑)이므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희자 (역)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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