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활터 가야정, 전통과 역사를 잇다
[함안=국궁신문] 함안 가야정(사두 강복균)은 단순한 활터가 아니다. 이곳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통 활쏘기의 명맥을 이어오며, 수많은 궁사들의 수련과 교류의 장이 되어왔다. 최근 『온깍지』 제2호 출간을 기념한 활쏘기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며, 가야정의 깊은 역사와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활터 가야정의 역사는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안에는 활터가 없어 뜻있는 인사들이 새벽녘 조일교 아래에서 활을 쏘며 사정 건립의 씨앗을 틔웠다. 그러나 하천변에서 습사를 지속하기 어려웠고, 1927년에는 철도변으로 이동했으나 열차 기관사의 불편 제기로 인해 다시금 활터를 옮겨야 했다. 결국 1941년, 현재의 아라공원 부근에 본격적인 정사를 건립하며 ‘가야정’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이후 가야정은 지역 궁사들의 꾸준한 노력과 지원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1989년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며 활쏘기 문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2012년에는 왕궁터 앞 마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활터로 거듭났다. 이러한 역사적 변천 속에서도 가야정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활터로서, 옛 궁사들의 정신이 깃든 국가무형유산 ‘활쏘기’의 전승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를 증명하는 자료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가야정에는 지난 세월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진과 기념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다. 1973년 구(具) 사범 송별기념 사진과 1999년 제61회 영호남 친선대회 사진은 과거 활터의 모습과 궁사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특히 1999년 기념사진은 말이산 가야고분군 기슭의 팔각정사 활터에서 촬영된 것으로, 당시 활쏘기 대회 개회식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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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具) 사범 송별기념 1973.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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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1회 영호남 친선대회 (1999년)
-말이산 가야고분군 기슭의 옛 활터, 팔각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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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창립 이후 많은 부침을 겪으며 가야정의 역사에 비해 남아 있는 활터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가야정이 소장한 활쏘기 대회 기록지(시지)는 생생한 대회 역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1973년 2개시 3개군 친선대회 기록지 부터 1996년 4군 8개정 친선궁도대회 기록지 등을 포함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의 대회 기록이 남아 있으며, 특히 당시 활쏘기 점수를 기록하는 도장이 독특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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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을 가득 당긴 형태의 도안이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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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4군 8개정 친선궁도대회 기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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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장 디자인의 변화는 단순한 점수 기록을 넘어, 활쏘기 문화의 정체성과 미적 감각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옛 궁사들의 멋이 시지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야정 활쏘기의 오랜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가 일제강점기 근대 신문 기사다. 1930년대 신문에는 함안 지역에서 활쏘기 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1931.10.24. 매일신보. 함안말산(咸安末山)에서 궁술대회개최 오는 3일 부터
함안군 가야면 말산리에서는 본월 오는 삼일부터 말산시장공터에서 전조선궁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한다.
△ 1936.04.29. 조선중앙일보. 본보지국후원 남녀궁술대회
[함안] 고전의 미풍을 자랑하는 함안 의봉정(儀鳳亭)에서는 조선일보 본보 양지국 후원으로 오는 5월 5,6,7, 3일간 전조선남녀궁술대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다는바 각지 선수의 다수 참가를 바란다하며 대회 규정은 다음과 같다 한다.
◇ 대회규정
- 신청기일: 5월 4일까지
- 신청장소: 화신 함안 연쇄점(連鎖店) 포목부
- 신입금: (미정)
- 등급: 남자 1,2,3,4,5,6. 여1,2,3
상품: 추후발표
△ 1936.05.19. 조선중앙일보. 함안궁술대회성황
함안에서 개최하는 전조선남녀궁술대회는 동서에서 모여드는 남녀사원이 의봉정에 가득하였으나 때 마침 5일 새벽부터 궂은 비가 내리므로 대회를 진행치 못하고 익일인 6일부터 3일간 대성황으로 마치었다고 한다.
이 자료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함안 지역에서 전통 활쏘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가야정의 전신이었던 의봉정(儀鳳亭) 궁술대회가 확인되어 가야정의 역사적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함안 지역의 활쏘기 역사는 근대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8년 함안군읍지 누정 편에는 읍성 동문 밖에 사정(射亭)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1832년에 발간된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에는 함안의 활터 중 하나인 모곡사정(茅谷射亭)의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조선 후기 함안 출신 학자인 조임도(趙任道, 1585~1664)의 시문집 『간송집(澗松集)』에도 활쏘기와 관련된 기록이 전한다. 조임도는 1615년(광해군 7년) 모곡리 활터에서 활쏘기를 즐기며 다음과 같은 칠언절구를 남겼다.
◌ 모곡사정에서 밤에 술을 마시며 (1615년 여름)
雨過微涼生古樹 – 비 그친 뒤 시원한 바람 고목에서 불어오고
夜深靈籟在長松 – 깊은 밤 솔바람 소리 낙락장송이 전해주네
醉來人臥白雲裏 – 취해서 돌아와 사람이 흰 구름 속에 누웠는데
明月滿臺淸露濃 – 밝은 달빛 누대에 가득하고 맑은 이슬이 진하구나
<공역: 남명학연구소; 김익재 양기석 구경아 정현섭:2015>
이 시를 통해, 조선 후기에도 함안에서 활쏘기가 단순한 무예 수련을 넘어 풍류와 정신 수양의 장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가야정 총무 김종옥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오랜 연혁을 담은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하며, 가야정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궁사들의 노력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기록뿐만 아니라, 이를 보존하고 전하는 이들의 헌신이 있기 때문임을 실감하게 했다.
함안에 들를 일이 있다면, 가야정에서 활을 쏘며 100년 전통의 활터에서 궁사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가야정 인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말이산 아라가야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어, 가야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한 세기를 넘긴 가야정은 여전히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점차 외면 받는 흐름 속에서 전통활쏘기를 즐기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전통 계승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궁사들은 활터의 의미를 되새기며, 단순한 운동이 아닌 정신 수양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활쏘기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활쏘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정신을 담고,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의 산물이다. 가야정이 걸어온 100년의 역사가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100년 역시 활을 사랑하는 이들의 노력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함안군 활터현황】
2025년 현재 함안군에는 가야정을 비롯하여 총 6곳의 활터가 운영되고 있다.
- 가야정: 함안군 가야읍 함안대로 619-5
- 와룡정: 함안군 군북면 월촌안길118-30
- 백이정: 함안군 군북면 함마대로 986
- 성심정: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 산4-2번지(궁도장)
- 마륜정: 함안군 법수면 국우로 271
- 산인정: 함안군 산인면 입곡공원길2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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