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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길이와 무게에 대한 의견
조선의 궁술
기사입력 2010-06-19 오전 9:04:00 | 최종수정 2017-07-29 오전 9:04:57   
2006-03-03

지난 2월 27일 국궁신문에 소개된 “경산 경조정, 조선의 궁술 강연회 성황리 마쳐!” 라는 기사에 대한 독자의 의견에 대해 강의를 한 백인학 명궁이 독자 의견에 대한 보충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실 웹에서 소개된 내용은 필자가 강연 내용을 듣고 정리한 것이기에 강의를 한 사람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원저자와 독자간의 의견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이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지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과 백인학 명궁의 의견을 소개합니다.(편집실)

 

2월 27일 국궁신문 “경산 경조정, 조선의 궁술 강연회 성황리 마쳐!” 기사에 대한 독자의 글

(토론의 주제가 된 기사의 본문)

“아울러 궁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예전 궁시의 규격을 말할 때는 촉의 길이와 무게를 뺀 순수 살대의 길이와 무게로만 화살의 규격을 규정하는 옛날 방식과 지금의 둥근 촉이 포함된 화살의 규격 표시 방법의 차이는 우리도 모르게 전통의 방식을 잘못 이어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위의 기사 내용에 대해 (필명) 화살길이기준 님의 기사 댓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목) "촉" 의 정의부터..
    (내용) 과거 조선의 궁술 편찬 시기의 유엽전촉은 과녁에 꽂히고 나면, 화살을 뽑을 때 촉은 과녁에 그냥 박혀있고 살대만 뽑혀 나오죠. 그래서 과녁에 남아있는 촉까지 끄집어내느라 촉돌이가 필요했었던 거고, 자연히 수시로 꼈다 뺐다하는 촉은 아예 빼놓고서 무게와 길이를 쟀겠죠. 그러나 현대의 둥근촉은 그게 사실 옛날의 그 촉이 아니죠. 그 둥근 촉 위로 뾰죡하고 날이 서있는 실제 촉이 있는 건데 그
    날이 갈아진 촉은 제거하고 아래 둥근 받침만 남겨진 것이 현재의 형태이죠. 따라서 현재의 둥근 촉 (사실은 촉받침) 까지 무게와 길이에 포함이 되어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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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의견에 대한 백인학 명궁의 보충 글)

안녕하십니까? 지적하신 유엽전에 대하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의례를 다룬 향음주례에 따르면 천자는 백색의 곰 가죽으로, 제후는 붉은색의 고라니 가죽으로, 대부는 범이나 표범을 그린 천으로, 선비는 사슴이나 멧돼지가 그려진 천으로 만든 관혁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유교사상이 깊은 조선에서는 위의 법에 따라 민간에서는 솔포를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그 증거로서, 철종시대 의성의 권대규 선생께서는 화살에 관을 뚫지 못하고 관에 걸려 있으면 즉시 다음 화살로 그 화살을 쏘아 쪼개버렸고, 같은 철종시대에 울산 사람인 배익환 선생은 너무 많이 맞추어 관이 상하자 같이 쏘던 사람들이 원망함에 살 하나로 관혁 중앙 하단을 통과시킨 후 종일토록 그 뚫어진 구멍으로 화살을 통과시켜 관을 상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철종시대 이후 민간에서도 내구성이 강한 나무 관혁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 혹을 뽑기 위하여 촉도리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유엽전의 촉은 내촉과 외촉으로 나누며 그 가운데를 “더데”라 하여 원형으로 솟아오르게 만들어 두고 외촉은 직각 4변형으로 1면의 폭이 1푼~1.5푼이며, 길이는 5푼~7푼으로 끝을 뭉텅하게 만들었다.

또한 내촉은 대나무 속으로 깊이 박아 넣었으며, 살대 끝이 충격에 견디도록 얇은 쇠로 고리형으로 “토리”를 달았고 그 밑으로 대가 충격에 쪼개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사”를 소 힘줄로 넓게 감았습니다.

따라서 대나무 속을 깊이 파고든 내촉을 쉽게 끼웠다 뺐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의견을 준 독자)께서 지적하신 둥근 촉은 촉 받침이 아니랍니다.

둥근 촉이 사용된 것은 6.25 동란을 거친 후 칼빈 탄피가 흔해진 시기에 칼빈 탄피를 이용해 촉끝을 덮어 씌었으며, 또한 폐타이어를 나무 과녁에 덮어 씌워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1967년 처음 화살 제작을 배울 때 드물게 우엽전 깃갈이를 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경주의 화살장인 최금동님의 증언에 따르면 둥근 촉이 사용된 시기는 1960년대 초로 추측됩니다.

화살대가 6돈일 때 촉 무게는 1돈, 7돈일 경우 촉은 1돈 1푼~1돈 2푼, 8돈일 경우 촉은 1돈 3푼~1돈 4푼, 9돈일 경우 촉은 1돈 5푼~1돈 6푼으로 유엽전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무게 중심의 비율이 있는데 이것은 화살비행의 최적 비율이라는 것이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한 사람의 의견입니다.

화살대에 촉을 씌워서 전체 무게를 동일하게 만들었을 경우 일어나는 무게 중심의 오차(천연 재료인 화살대 무게의 편차를 촉으로 조절할 때 발생하는 무게 중심의 차이)와 옛글을 읽을때 그 시대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의 통용되는 사고로서 이해해 버림으로 우리 조상들의 우수했던 유산들에 대하여 곡해를 걱정하며 전해 내려오던 전통을 구태어 개정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소신을 밝힌 것이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수의 전문가만이 우리 옛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 염려스러웠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의 궁술 강연회 성황리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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