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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의 호미각궁
중요민속자료 제35호
기사입력 2010-11-18 오후 8:29:00 | 최종수정 2010-12-13 오후 8:29:07   

고종황제의 호미각궁

출처 : 문화재청 발간(2005.08),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① 신앙.생활자료

    각궁 : 角弓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35호
    소재지 : 서울 노원구 공릉2동 77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소유자 : 대한궁도협회
    지정일 : 1976년 12월 31일
    시대 : 대한제국기
    지정내용 : 활 1점

19세기말 20세기초 대한제국기에 고종황제가 친히 사용하였다는 어궁(御弓)으로 지금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는 문호개방 이후 서양문물의 전래로 개화물결이 휩쓸고 있어 전래의 활쏘기문화가 급격히 퇴조하였고, 1894년 갑오경장으로 무과시험이 폐지되자 대부분의 사정(射亭)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1899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윤음으로 새로이 사풍(射風)이 진작되는 가운데 같은 해 경희궁 북쪽 기슭에 황학정(黃鶴亭)이란 사정이 새로 지어졌다. 이를 계기로 고종황제는 자주 활터로 나와 여러 신하들이 활쏘는 광경을 관람했다고 한다. 이 무렵 고종이 애용하던 활이 현전하는 호미각궁(虎尾角弓)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유일한 어궁(御弓)이다.

이 활은 몸체에 부착되어 있는 물소 뿔, 곧흑각(黑角) 양끝에 각각‘호미(虎尾)’ 및 ‘주연(珠淵)’이라는 작은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붉은색의 칠을 해 놓아 그 내력을 짐작케 하는데, 즉 주연은 고종황제의 어호(御號)이다.

호미는 활에 사용된 흑각 가운데에 한 줄로‘人’자모양의 황백색 얼룩무늬가 나타나 있어 마치 호랑이 꼬리와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활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소뿔을 켤 때 나타나는 아름다운 무늬인데 이런 재료는 희귀함으로 인해 이 수우각(水牛角)으로 만든 각궁은 빼어난 양궁(良弓)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호미는 최상품으로서 제작된 각궁이란 용어와 뜻을 같이 한다. 이 활은 당시 서울의 이름난 궁인(弓人)이던 철재(哲齋) 장문환(張文煥)이 만들어 진상한 것이다.

    [주] 호미각궁은 제작자가 장문환이라는 설과 그의 아들 장기홍이라는 견해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호미각궁의 분명한 제작 년대가 확인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밝히기가 불가능하다. 다만 고종황제가 황학정에서 집궁(執弓)하던 시기가 대략 1899년에서 1910년 전후시기로 추정됨에 따라 이 무렵 호미각궁도 제조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이 때 장기홍은 10대의 소년이므로 호미각궁은 부친인 장문환의 작품으로 추정하는것이 자연스럽다.

 장문환은 1854년에 서울에서출생하여 제궁업을 시작하였으나 사사(師事)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본적지인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33번지, 경희궁터(옛 서울고교자리, 현 서울역사박물관) 건너편에 궁방(弓房)을 개업하였다. 기술이 좋아 당시부터‘오궁골 장궁방(張弓房)’이라면 이 방면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궁중에도 납품하여 그 공으로 사용(司勇)벼슬도 받았다고 전하며 호미각궁은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40대의 나이에 제조된 것으로 짐작된다. 1937년 사망할 때 까지 83세의 장수를 누렸다. 아들 장기홍(張基弘)도 가업을 계승하여 가명(家名)을 유지하다가 1940년 56세로 사망하고 손자 장진섭(張鎭燮: 1916~1996)으로 가업이 계승되었다. 장진섭은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궁시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만년(晩年)까지 황학정 궁방에서 각궁을 제조하였다.

고종황제가 애용한 호미궁과 전통(箭筒),어시(御矢)가 고종사후에 어떻게 보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미각궁이 세인에게 다시 알려진 것은 1960년대에 당시 집권자인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이다. 이 무렵 호미각궁은 청와대에 입수되어 있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박대통령에게 흘러갔는지 그 정확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덕수궁의구황실유물을 정리할 때 이 호미각궁과 전통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유품을 정부가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궁도인 단체에서 보관해야 가치가 있다고 하며 유관단체인 대한궁도협회에 이관할것을 지시하여 당시 협회장 김정대(金正大:1961~1968년까지 재임)가 직접 청와대에 가서 인수한 뒤 대한궁도협회에서 보관하였다 한다.

그런데 황학정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1974년 1월 15일자)로 지정됨을 계기로 1975년 2월에 고종황제의 유흔(遺痕)이 서려있는 황학정(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산1)에서 호미궁을 전시할 것을 요청하자 이곳으로 옮겨졌다. 당시 황학정 사두(射頭)였던 김덕문(金德文)은 대한궁도협회장 신동욱(申東昱)에게 보관증(1975. 2. 20일자)을 써 주고 이 활과 전통을 황학정에 보관, 전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호미각궁은 처음으로 1976년 6월 이종석(李宗碩), 이화영(李華永)에 의해 학술적으로 상세하게 조사되어 보고서(민속자료 조사보고서제45호)가 작성되었고, 그해 12월 31일에 문화재위원회에 의해 중요민속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1993년 3월 12일자로 대한궁도협회가 이 활과 전통의 반환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며 18년 전 김덕문 사두가 써주었던 보관증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 이유는 호미각궁과 함께 있던 어시(御矢; 유엽전)가 누구인가에 의해 임의로 독립기념관에 기증되는 등의 사실로 인해 보안상 안전성의 문제와 분실의 위험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93년 4월 20일 호미각궁은 18년간 머물던 황학정을 떠나 다시 대한궁도협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1994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국궁축제를 위한 전시행사에 출품됨을 계기로 지금은 육군사관학교내에 있는 육군박물관에 영구대여형태로 보관, 전시되어 있다.

이 각궁은 전체 길이가 127.5cm, 오금 길이 12.4cm, 오금 너비는 3.1cm, 줌피 길이7.8cm, 아귀 길이 1.8cm로서 활의 일반적인 규격에 비하면 약간 작은 편이다.


    ▲ 각궁
    19c말~20c초 전체 길이 127.5cm 나무 물소뿔 대한제국기에 고종황제가 사용하였다는 어궁(御弓)이다.

이 어궁은 활의 강도가 사용인에게 너무 힘겹지 않도록 축소 약화시켜 만든 것이지만 재료와 형태에 있어서는 한국 전래의 각궁의 특징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 다만 이 활은 오랫동안 시위를 푼 채 보관하였기에 이제는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굳어져 시위 줄을 걸 수 없다.

호미각궁은 어궁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각재(角材)에 흠결이 하나 있다. 호미(虎尾)란 글자가 새겨진 활 끝자락 궁각(弓角)표면에 작은 결절(決折)부분이 확인된다. 이 현상이 제조과정에서부터 발생한 것인지, 이후보관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규칙적인 곡선형태로 발생한 결절임을 볼때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 어궁에는 화피위에 채화(彩畵)를 그리는 등 예궁처럼 치장한 부분이 없다. 다만 시위고리를 걸게 된 새코머리를 가죽으로 감싸면서 초록, 빨강 등 3색 천을 바르고 그 밑에 아자(亞字)무늬를 새긴 흑지(黑紙)를 감았다. 지금은 흑지가 많이 상하여 떨어진 부분이 많다. 동고자 역시 단단한 쇠가죽을 타원형으로 붙이고 그 가죽을 빨간 천으로 쌌다. 줌통은 두꺼운 종이로 싼 뒤 연녹색융단을 감았고, 줌통 옆을 감싸는 곁피는 짙은 갈색의 화피로 둘렀는데 지금도 윤기가 흐른다.

출전피로는 자색 가죽을 돌려 입혔다. 시위 줄은 청색으로 염색한 명주실로 만들었으며 화살을 거는 자리인 절피는 흰색 무명실로 감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무기 중에서 활을 가장 중시한 나라였다. 그것은 각궁(角弓)이있었기 때문이다. 각궁은 나무나 대나무 등의 간단한 재료로 만든 단순궁에 비해 가장 진화된 합성궁(合成弓)으로 두개의 판을 풀을 먹여 합치거나 혹은 나무로 된 궁체뒷면에 동물의 심줄과 물소 뿔을 붙여서 만든다.

합성궁은 활 중에 가장 발달된 구조를 가진 강력한 활이며 궁체의 길이가 짧아도 위력이 커서 기마민족의 무기로 가장 적합한 무기였다. 각궁의 전통은 오래되어 삼국시대에 크게 발달하였고, 물소 뿔을 덧댄 지금의 각궁형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  각궁 세부
    활의 양 끝에 각각‘호미(虎尾)’및‘주연(珠淵)’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우리나라 각궁은 대나무, 물소 뿔, 쇠심줄, 구지뽕나무, 참나무, 민어 부레풀, 화피(樺皮) 등으로 만든다. 이중에서 대나무, 물소뿔, 쇠심줄이 가장 중심적인 재료이다. 대나무는 활의 중심에 위치하여 지지대가 되는 것이다. 섬유질이 풍부한 3년생 이상의 것으로 마디가 가운데 하나 있고 전체 길이가90cm 정도면 가장 좋다.

물소 뿔은 수우각(水牛角), 색깔이 검다고 흑각(黑角), 각궁의 재료가 된다고 궁각(弓角)이라고 불렀다. 물소는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고 주로 아열대지방인 중국 남부와 동남아 지역에서 서식하는 동물이므로 수우각은 중국에 가는 사절단을 통하여 구입해야하므로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더구나 중국이 군사용 전략 물자로 취급하여 국외반출을 엄격히 금하므로 수입이 용이치 않아서 세조대에는 국보라 칭하며 귀하게 어겼다.

뽕나무는 활의 양 끝부분인 고자(시위줄을 거는 곳)를 만드는 나무로 탄력성이 좋고 질기며 단단하다. 쇠심줄은 소의 척추와 근육에 붙어 있어 신축성이 좋고 질기며 탄력성이 좋아 활의 중심부인 대나무에 접착하여 활의 신축성과 유연성을 좌우하는 일을 한다. 참나무는 활의 손잡이인 대림목을 만드는 재료로 단단하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화피는 벚나무 껍질로 통기성이 좋은 한편 내수성도 뛰어나 습기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활의 심줄 표면에 붙여 습기에 약한 활을 보호하는 방수제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견고하게 결합시켜주는 것은 민어부레풀이다. 접착제인 민어부레풀은 접착력이 대단히 좋으며 어떠한 충격에도 잘견디어 낸다.

각궁의 제작방법을 소개하면 대나무를 재단하여 80cm 정도로 다듬고 나서 둥글게 휘어놓고 끈이나 철사로 끝을 서로 묶어 펴지지 않게 고정시킨다. 대림목이 되는 참나무와 고자가 되는 뽕나무도 적당한 크기로 구부려 놓는다. 다음에 물소 뿔을 톱으로 켜서 필요한 양각(陽角) 부분만 잘라낸 다음 얇게 가공하고 열을 가해 곱게 펴둔다. 그 다음 둥글게 말려 있던 대나무와 뽕나무를 다시 펴둔다.

이렇게 재료가 준비되면 각각 필요한 만큼 재단하여 다듬어 둔 후 본격적으로 활제조에 들어간다. 대나무 양끝을 ∨자모양으로 파내고 뽕나무는 반대로 ∧자 모양으로 깎는다. 이 두 가지 재료를 마주 끼우고 풀로붙여 단단히 고정한다. 그 다음 대나무와 뿔을 접착하기 위해 뿔에 풀칠을 하고 활의 표면에도 역시 풀칠을 한다. 이후 뿔을 뜨겁게 열을 가한 후 대나무의 바깥쪽에 접착하고밧줄을 이용하여 칭칭 동여맨다.

이것은 풀을 강하게 압박하여 대나무에 밀착시키기 위한 것으로 흔히 부각(付角)작업이라고 한다. 부각작업이 끝나면 손잡이 부분에 참나무로 만든 대림목을 붙이고 그 위에 심놓이 작업을 한다. 이것은 바로 대나무 안쪽표면에 쇠심줄을 풀에 이겨 붙이는 작업인데 보통 세벌을 입힌다. 이후 시위 줄을 걸 자리인 고자를 다듬어 깎고 활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해궁(解弓)작업을 한다. 그 다음 활을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다듬은 다음 쇠심줄이 놓인 표면을 화피로 감싸는 화피단장 작업을 하고 마무리 한다. 시위 줄은 무명실을 합사하여 만들고 밀랍을 먹여 사용한다.

이러한 각궁은 전부 동.식물성의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항상 습기 방지에 주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점화(點火)라고 하여 습기가 많은 여름에는 항상 27-34℃의 밀폐된 점화장치 내에 보관하여야 한다.

호미각궁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제조된 각궁으로 현전하는 습사용 활의 전범(典範)이다. 거기에 유려한 호미문양뿐 아니라 고종황제가 애용한 어궁(御弓)이라는 역사성으로 인하여 보존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큰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환)

    <참고문헌>
    - 김일환,『 궁시장』, 화산문화, 2002.
    - 황학정,『 黃鶴亭百年史』, 2001.
    - 황학정,『 國弓1번지』(1-9), 1995~2001.
    - 육사 박물관,『 한국의 활과 화살』, 1994.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월간문화재』108호(1993년 7월 1일자).
    - 金基源,『 韓國의 弓矢』, 富川聖武亭, 1977.
    - 박희현「, 각궁과 화살의 제작」『, 한국민속학』10,민속학회, 1977.
    - 梁在淵「, 韓國의 弓術」『,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第80號, 文化財管理局, 1970.
    - 이중화, 『朝鮮의 弓術』, 조선궁술연구회,1929.

Important Folk Material No. 35
Gakgung (Horn Bow)

Gakgung (horn bow) was apparently used by Emperor Gojong during the Daehan Jeguk(Empire of Korea) period (late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The bow is covered withcolored cherry tree bark, and the tips where the bowstring loops are fitted in are wrapped with leather, and then covered with tri-colored cloth. The section below is wrapped up with a piece of black paper bearing a latticework design. The piece of water buffalo horn attached to the body of the bow bears small inscriptions at either end, including the nameof the royal ow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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