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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지난 5월 27일 평창 노성정 승단대회에서 형편없는 시수로 자불(自不)을 하고 일찌감치 궁시를 챙기는데 최진규 접장(평창 이목정)이 이목정에서 함께 습사를 하자며 잠깐 들렀다 내려가라 하여 이목정에 들리게 되었다.
이목정 사무실에서 벽에 걸린 계훈이 갑자기 크게 와닿길래 무슨 글귀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불가필중십원실'이라는 제목으로 10가지의 계훈이 적혀 있었다.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 최진규 접장에게 물어보았다. 사법비전공하라 하였다. 고전의 해의 본인 평양감영의 활쏘기 비법'을 탐독하였음에도 그 글귀가 생각나질 않은 것이다. 책을 뒤져보니 '원실(原失)'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글이다.

예전에 '평양감영의 활쏘기 비법'을 볼때 그 부분을 크게 보지 못했는데 승단대회에서 형편없는 시수를 내 놓고는 집으로 가는 길에 편안히 습사나 하려고 들렀던 이목정에서 그것이 크게 와닿는 것은 활 공부의 가르침일 것이다.

'불가필중십원실'은 사법비전공하의 나오는 원실(原失)에 관한 부분으로 '평양 감영의 활쏘기 비법'에 72쪽에 해의된 내용을 소개한다.

- 생궁(生弓), 불가필중(不可必中)
- 생소(生疎), 불가필중(不可必中)
- 궁강시경(弓强矢輕), 불가필중(不可必中)
- 궁약시중(弓弱矢重), 불가필중(不可必中)
- 기교지태(氣驕志怠), 불가필중(不可必中)
- 심신황홀(心神恍惚), 불가필중(不可必中)
- 사다역피(射多力疲), 불가필중(不可必中)
- 견기지병불개(見己之病不改), 불가필중(不可必中)
- 호승지심심(好勝之心甚), 불가필중(不可必中)
- 겁유지심생(怯懦之心生), 불가필중(不可必中)

:: 원실(原失) : 근본을 잃은

:: 활이 설어도 맞지 않고, 생소해도 맞지 않는다. 활이 세고 살이 가벼워도 맞지 않고, 활이 약하고 살이 무거워도 맞지 않는다. 기가 교만하거나 뜻이 게을러도 맞지 않고, 심신이 황홀해도 맞지 않는다. 너무 많이 쏘아서 힘이 딸리고 피곤해도 맞지 않고, 자기의 탈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아도 맞지 않는다. 시합에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심해도 맞지 않고,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이 생겨도 맞지 않는다.

:: 해설

활이 잘 맞지 않는 경우를 열거하면서 <원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활을 잘 쏘지 못하게 되는 요건을 설명한 것이다. 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평상심'이다.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습하면 맞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이 활이다.
여느 운동의 경우에는 타고난 재주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난다. 달리기 같은 경우, 둔한 사람이 아무리 연습을 해도 타고 나면서 발빠른 사람을 도저히 다라갈 수 없다. 서양의 거의 모든 운동이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 활은 그렇지 않다. 물론 타고난 재주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타고 났어도 성실하게 연습하는 사람은 따라가지 못하는 운동이다. 다른 운동에서 전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사람이 활쏘기에서 의외로 잘 쏘는 경우를 보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교만하면 완전히 망칠 수 있는 것이 이 활쏘기이다. 활쏘기에서 교만함보다 더 큰 방해군은 없다. 교만함이야말로 폐궁(廢弓)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옛날 선비들이 활쏘기를 좋아한 것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다.<평양 감영의 활쏘기 비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