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되는 자료는 지난 2011년 6월 10일(금), 11일(토)에 한라대학교 교양관 1층 대강의실에서 “인류학과 스포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11회 한국스포츠인류학회 학술대회(한국스포츠인류학회 주관)에서 발표된 자료이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통활쏘기 정체성 확립방안 수립’ 연구진으로 활동 중인 김이수 교수(강원대)의 국궁수련기이다. 필자는 지난 2010년 1월 '21세기에 바라본 조선의 궁술'을 발간하였다.(편집자 주)
<國弓 체험기>
드디어 활을 내다
김이수(강원대학교)
Ⅰ. 집궁(執弓)하다
활과 화살에 대한 이야기는 로마의 <에로스>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한다. 때문에 활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그리스의 헤라클레스도 활쏘기를 하였다고 하며, 유럽, 북미인디언, 인도와 페르시아, 티벳과 터키, 가깝게는 몽골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활과 화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1)이 있을 정도로 세계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어디에도 한국의 궁시(弓矢)와 활쏘기를 능가할 수 있는 나라가 없음을 자부한다. 때문에 활쏘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체문화로 손색이 없다. 그 이유는 과학적인 궁시(弓矢)의 제작과정과 인체공학적인 사법, 그리고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사풍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현재 우리의 활터에 전해지고 있는 사풍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기록하고자 한다.
필자가 활터[射亭]에 처음 방문했던 기억은 1997년쯤의 일이다. 당시에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용인시내에 위치한 공설운동장을 방문하였다가 지근거리에 있던 용무정(龍武亭)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2001년 중순쯤에는 ‘택견과 송덕기에 대한 연구’(김이수, 허일웅, 2002)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송덕기 선생의 택견 수련터인 인왕산을 답사하면서 송덕기 선생이 활쏘기를 즐겼다는 것과 그곳이 황학정(黃鶴亭)이라는 것을 알고 황학정을 탐방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활터에 대한 깊은 인상이나 활쏘기에 대한 애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우연한 기회에 방문했을 뿐이고, 활쏘기[國弓]가 우리의 전통스포츠이며, 황학정은 ‘근대 활쏘기의 1번지’라는 명성에 걸맞는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개괄적인 상식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武藝書를 연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朝鮮武士英雄傳》과 《朝鮮의 弓術》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초부터 《朝鮮武士英雄傳》의 번역작업을 시작하였고, 2007년 11월부터는 《朝鮮의 弓術》에 대한 번역작업을 시작하여 현재에는 《朝鮮의 弓術》을 주제로 연구과제2)를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는 《朝鮮의 弓術》을 완역한 《21세기에 바라본 조선의 궁술》을 출판하기도 하였으며, 한국체육사학회지에 투고한 논문3)이 게재가 확정되어 6월에 게재할 예정이다. 더불어 2010년 12월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용역으로 “한국 전통 활쏘기의 정체성 확립방안 수립”이란 과제를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가 약 4년 동안 활쏘기에 대해 연구하면서 활쏘기관련 서적과 논문 등 웬만한 자료를 수집하여 탐독하였다. 그리고 40여 곳의 활터를 방문하여 궁사(弓士)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활쏘기와 관련된 다각적인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였다. 그리고 활터의 한 켠에 비치되어 있는 《21세기에 바라본 조선의 궁술》을 볼 때는 뿌듯함도 느꼈고, 몇 곳의 활터에서는 저자의 자격으로 sign(서명)을 하는 영광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활터에 방문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활터에 방문할 때마다 받게 되는 질문, “어디서 활을 냅니까?” 때문이었다. 언제는 당황스럽기도 했었고, 어떤 때는 민망함에 어쩔줄 몰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아직 못 내고 있습니다.”였다.
평소 학생들에게
스포츠와 체육, 그리고 무예는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함을 강조하는 내가...
몸으로 익힌 것(절차적인 지식)을 표상적 지식으로 체계화, 숙련화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내가...
정작 글로만 활쏘기를 느낄 뿐 몸은 활쏘기를 모르고 있으니 어찌 진정으로 활쏘기를 공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2011년 3월에 와서야 부끄러움과 부담감으로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기로 결심하였다. 아니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못 이겨 활쏘기의 세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따라서 이 발표문은 필자가 약 80일 동안 활쏘기를 체험하면서 몸으로 느끼고, 맘으로 느낀 얄팍한 지식을 일기형식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다만 얇디 얇은 경험을 구사(舊射)는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가 앞설 뿐이다.
Ⅱ. 활터에 등정(登亭)하다
1. 활터를 방문하다
보통 피교육자로서 가르침을 청할 때 고민하는 것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관, 능력있고 뛰어난 지도자, 접근성, 주변의 환경 등을 고려하게 된다. 필자도 집궁을 결심하고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정한 활터가 용인시내에 위치한 용무정(龍武亭)이다4). 용무정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이왕에 시작한다면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기 위하여 접근성을 고려하였으며, 두 번째 이유는 윤한의란 인물 때문이다.
집궁을 결심하고 자문을 받기위해 3월 15일 전화 통화를 통해 윤명궁과 점심약속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와의 만남에서 집궁의사를 전하면서 활터를 추천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대해 윤명궁은 용무정의 김사범(김송계)이란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용무정에서 집궁하기를 권유하였다. 당시 나는 윤명궁이 용무정 소속의 궁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S그룹에 있는 활터의 지도교수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3월 22일 처음으로 신사자격으로 활터(용무정)를 방문하여 처음 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윤한의명궁과의 만남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해야겠다. 윤명궁으로 통하는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1년 1월 22일 “한국 전통 활쏘기 정체성 확립방안 수립”이란 주제의 세미나장이며, 이후에는 두 번의 공식만남과 한 번의 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윤명궁과 첫 만남이 이루어질 당시 필자는 세미나의 2부 사회자로서 세미나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윤명궁은 객석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토론자들이 저마다 윤명궁에게 깍듯하게 예를 표했고, 결국 각 토론 주제의 결론은 윤명궁의 발언으로 정리되는 듯 하였다. 당시 윤명궁에 대한 필자의 느낌은 달변이었으며, 행정적인 경험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만남은 2011년 2월 16일 필자가 활터에 대한 현장조사를 하기 위해 용무정에 방문하여 공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여러 가지 사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2011년 3월 12일 세미나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윤명궁은 필자에게 자신이 편집한 궁술교본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집궁을 결심한 이후, 윤명궁의 추천으로 용무정에서 자연스럽게 집궁하게 되었으며, 이후부터 등정례를 비롯하여 예절과 격식, 그리고 신사(新射)로서의 처신과 활쏘기와 관련된 기초지식을 배우기 시작한다.
2. 빈활을 당기다(빈활당기기)
3월 중순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싸늘하다. 올해의 추위는 유독 오래가는 것 같았다. 4월 중순까지 겨울날씨가 계속되었으니 꽤 추운 날씨였다. 사원[新射]으로서 용무정에 첫 발을 딛인 것은 입사원서를 작성하고 일주일 뒤인 2011년 3월 22일이다.
활터에 오르니 구사(舊射:용무정의 고문님들) 세 분이 활을 접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용무정은 시간에 따라 활을 내는 궁사들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새벽시간에는 4-5명의 궁사들이 직장에 출근하기에 앞서 활을 낸다. 그리고 오전시간에는 사두님과 연세가 지긋한 노인분들, 그리고 고문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전까지 활을 내고 돌아간다. 다음으로 오후시간에는 자영업자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궁사들이 활을 낸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직장에서 퇴근한 궁사들과 궁도대회에 출전하는 궁사들이 집중적으로 활을 내고 있다. 특히 선수들은 야사를 통해 집중적인 습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사범은 대체로 오전시간부터 오후까지 활터를 관리하면서 신사들을 지도한다.
활터에 올라 사범의 소개로 고문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궁방에서 사범과 함께 했다. 사범은 활터에서의 예절과 행동거지, 그리고 용무정의 특징적인 사풍에 대해 간단하게 구두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연습궁을 통해 활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이 이어진다. 활을 얻는 방법과 활을 부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주의할 내용을 특히 강조하여 설명한다.
화피단장을 허벅지에 끼우는 방법
활의 윗장 냥냥고지에 현을 거는 방법
활 윗장 도고지에 현을 붙이는 방법,
그리고 활 아랫장의 냥냥고지에 반대편의 현을 거는 방법 등 ...
인용문과 같이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더불어 사범의 시연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활을 언고 부리는 연습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으나 직접 하기에는 꽤 어려운 과정이었다. 百聞以不如一見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줌피를 잡는 방법과 중구미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한다. 우궁의 경우 좌측 손으로 줌피를 잡고, 우측 손으로 현을 당기게 된다. 그래서 좌측 손을 줌손이라 하고, 우측 손을 깍지손이라고 한다. 줌피를 잡고 활을 고정시키는 연습을 한동안 반복하니 손바닥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궁체를 익히기 위해 발의 위치, 상체와 줌손의 위치를 배웠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활쏘기의 궁체와 줌손의 모양이 예전부터 내가 수련한 합기도의 몸체와 잡기, 힘쓰기가 유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줌손과 궁체를 바로잡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깍지손으로 현을 당기는 방법을 익혔다. 처음 한동안은 깍지손에 깍지를 끼지 않고 맨손으로 현을 당겼다. 그리고 5일 후 처음으로 깍지를 끼고 현을 당겼다. 깍지손으로 현 당기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렵고 난해함을 느낀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습궁을 통해 빈활당기기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사범의 시연, 연습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었다. 집궁 첫날에 배운 것 치고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혔다.
드디어 빈활당기기에 돌입한 것이다. 추후에 안 사실이지만 빈활당기기도 사대에서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관례임을 알았다. 그러나 당시의 날씨가 추워서인지 궁방에서 빈활당기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약 10일가량 빈활당기기를 하니 궁력이 늘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30파운드의 연습궁이 부담스러웠던 것이 한결 수월함을 느낀다. 이후부터는 40파운드의 활을 이용하여 연습하고 있다. 그만큼 궁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내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3. 그리고 주살질
그리고 다시 1주일이 지났을 쯤, 빈활당기기를 위해 활에 현을 거는 나를 사범이 밖으로 나오란다. 아무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니 사범이 안내하는 곳은 주살질을 연습하는 곳이다. 그리고 화살의 오늬를 절피에 먹이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절피에 살의 오늬를 먹여본다. 처음으로 활과 살이 만나는 순간이다. 한편으로 설레기도 하고 흥분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이 나의 생각대로 날아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사실 주살질이란 화살의 촉에 줄을 연결하여 놓았기 때문에 주살질한 활은 멀리가지도 않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다만, 나 혼자만의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사가 처음으로 갖는 동경이며, 건방짐이겠다.
주실질은 빈활당기기와 차원이 달랐다. 빈활당기기는 현을 당기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할 뿐 현을 놓는 연습, 즉 깍지손을 떼는 연습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주살질은 살을 먹이고, 현을 당기고, 현에서 깍지손을 떼는 동작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주살질 과정에서 현이 팔을 쳐서 멍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현이 오른쪽 뺨을 쳐서 아픔을 느끼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서 ‘활은 임금님 뺨도 친다.’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그러나 빈활당기기를 할 때보다는 주살질이 재미도 있고,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는 효과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즉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인해 활쏘기에 대한 동경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습사를 하던 사범이 사대에서 나를 부른다. 사범은 일반 사원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사범의 시연과 함께 나에게 사대에서 한 대의 살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줄 요량이다. 연습용 살을 건네며 옆에서 발시 할 것을 주문한다. 갑작스런 사범의 주문에 사대에 선 나는 조심스럽게 주살질을 하듯 살을 먹인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될 듯 싶다. 이상하게도 이때 나는 주몽과 고려의 작제건(作帝建)과 왕건, 이성계, 그리고 명궁 중에 명궁으로 유명한 정조대왕의 활쏘기가 생각이 난다.
이 얼마나 건방지고 치기어린 생각이란 말인가 !!!
빈활당기기 3주와 주살질 10일이 고작인 신사 중의 신사가 ...
그것도 정식으로 발시도 하닌 이벤트 차원으로 처음 선 사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궁들을 생각하고 있다니 ...
그러나 명궁들에 대한 생각도, 자신감과 건방짐도 잠시 일순간일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을 먹이고, 현을 당겼으며, 발시했는지 모르는 순간에 살은 고작 50m도 못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이것이 활쏘기인가? 물고기가 도망가듯 꼬리를 요동치며 비행한 화살이 무겁의 잔디밭 중간에 떨어져 화살의 깃도 보이지 않는다.
발시(發矢)가 끝난 나는 민망함에 사범을 바라보고, 사범은 빙그레 웃으며 아무말 없이 눈으로 나를 위로할 뿐이다. 그리고 사범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원래 그런 거예요!!!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주살질을 하면서 나는 간혹 사대에서 습사를 하는 사원들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생각을 나는 분명히 하고 있었다.
사범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사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원래 그런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답을 본인(나에게서)이 직접 찾도록 했던 것이다.
4. 드디어 활을 내다
처음으로 사대에 서보았던 경험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新射로서, 앞으로 궁력이 향상되고 舊射가 된다고 해도, 치기어렸던 당시 나의 건방짐은 나를 되돌아보는 좋은 경험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나는 주살질과 빈활당기기를 더욱 정진할 수 있었다. 그것은 활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대에서 비록 연습궁과 연습살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사대에 서는 영광의 날이 왔다. 4월 7일 사범과 함께 단 둘만의 습사였다5).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범이 일전에 설명했던 사대에서의 예를 다시 한 번 설명한다. 그리고 사범은 과녁을 향해 묵념을 하며 ‘제가 먼저 냅니다.’ 한다. 나는 ‘많이 맞추세요!’한다. 그리고 사범은 살을 낸다. 관중이다. 잠시 후 나는 과녁에 인사를 하고 ‘활 배우겠습니다.’라고 한다. 이에 사범은 ‘많이 맞추세요!’라고 한다. 잠시 후 나는 천천히 살을 먹이고 만작하고, 발시. 그러나 어이없다.
모두 5순을 쏘았는데 1순은 모두가 무겁근처의 잔디밭에 화살이 떨어진다. 아직 추운 날씨 때문에 잔디가 없었지만 그래도 연전하는데 활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2순과 3순은 무겁의 모래밭과 잔디에 살이 떨어진다.
◀ 사범과 함께 습사하고 있다.
이정도만 해도 성취감은 대단했다. 조금만 연습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3순의 연전을 하고 돌아오면서 사범은 화살이 거리가 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충고를 한다. 사범의 충고는 적중하고 있었다. 4순의 초시가 과녁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깍지손의 통증으로 인해 현을 당기기가 어렵다. 나머지 살은 모두 무겁터에 떨어졌다. 아무생각이 없다. 다만 초시가 과녁을 넘었다는 것만이 기쁠 뿐이다. 5순 역시 살의 방향은 중구난방이다. 활터의 용어로 앞 나고(과녁의 오른쪽 방향에 떨어짐), 뒤 나고(과녁의 왼쪽에 떨어짐), 잔디밭에 앉고, 말할 수 없다. 사범은 ‘처음 사대에 선 것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고 위로해 준다. 그러나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깍지손의 통증도 느낀다. 긴장한 듯하다. 그러나 깍지손의 통증을 사범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정식으로 사대에 습사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사범도 이 정도면 됐단다. 그만 내자는 뜻이다. 활을 접고 있는데, 사범이 앞으로 내가 사용할 개인장비(활과 화살)를 주문한단다. 나는 그냥 ‘예’라고 대답했다.
5. 일중(一中)과 삼중(三中)의 감격
처음으로 사대에서 활을 낸 것은 나에게 보람이자 기쁨이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성취욕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5순을 습사에 대해 복기(바둑에서 복기를 하듯)를 했다. 그러나 25발의 발시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잔디밭과 무겁터에 떨어진 활살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리고 귀가 후에도 습사에 대한 잡념으로 복잡하다.
다음 날인 4월 8일은 S대학에서 오전 강의가 있다. 강의는 하는 둥 마는 둥 습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 잡는다. 예전과 다르게 점심도 안하고, 활터로 향한다. 활터에 다다르니 점심시간이라서 인지 아무도 없다. 혼자서 준비운동을 하고 주살질을 했다. 그 무렵 사범이 사원 2명과 함께 재등정하고 잠시 후 사원들이 습사를 하는데 나는 계속 주살질 중이다.
그때쯤 사범이 습사하자고 청하고, 둘 만의 습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주살질을 열심히 한 때문인지, 첫 발을 발시하고 조금(2-3초 후)있으니 ‘꽝-’하는 굉음이 음향으로 들리고, 사범이 ‘축하합니다. 1중입니다.’라고 한다.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어-’라는 비명아닌 외마디 비명만 나올 뿐,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배운 대로 과녁에 묵례로 예를 표했다. 그리고 계속된 나머지 4발의 화살을 어떻게 쏘았는지 기억이 없다. 연전을 위해 이동하면서 사범은 1중의 상징성을 설명하면서 4발의 불(不)6)보다는 관중된 한 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나의 자세와 만작의 자세 등 긍정적인 이야기만을 계속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그러한 자세와 만작으로 활을 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기실 사범은 나를 격려하여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아무튼 기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사범은 일중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한다. 나도 익히 일중례에 대해 알고 있던 터이다. 나는 고민을 한 끝에 4월 월례회(4월 10일 일요일)7)에 일중례를 하기로 했다. 월례회가 있던 날 나는 간단한 다과(과일과 주류)를 준비하여 등정을 하니, 모든 사원들이 축하를 해준다.
일중례를 마친 이틀 후(4월 12일) 개인장비(활과 화살)8)가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인 4월 14일 새로운 감격을 맛본다. 그것은 3중을 한 것이다. 내가 생각을 해봐도 대단한 기록이다. 개인장비를 구입한 이틀 후에 3중을 하다니. 주변에 있던 사원들이 축하를 해주었다(이때 삼중례는 자연스럽게 생략하게 되었다). 이후, 25일(1회), 29일(2회), 5월 8일(1회)에도 3중을 하였다. 이제야 활쏘기에 대한 흥미가 무엇인지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5월 11일에는 세 번의 3중과 함께 처음으로 4중을 하였다. 나의 입장에서는 4중보다는 관중하지 않은 일시(一矢)가 자꾸 머리에 남는다. 이에 사범은 “그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욕심인 것이다. 무언가 될 것 같은 생각이 활을 내는 것보다는 나에게는 더욱 중요해진다. 이것이 사람이 갖는 욕심인가 보다. 그래서 신사(新射)하고 하나보다.
이에 《禮記》에 등장하는 “故射者, 進退周還 必中禮, 內志正, 外體直, 然後持弓矢審固”9)이란 문구가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예의[必中禮]도 상실하고, 바른 마음[內志正]도 없으며, 올바른 궁체[外體直]도 없다. 오직 과녁과 관중에 대한 생각뿐이다. 이것이 신출내기 궁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아니지 않는가!!! 욕심만이 앞에 있으니, 신출내기 궁사로서 그 자격도 없다 하겠다. 애처롭고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난 5월 22일(일요일). 15순을 쏘았는데, 첫 순에 4중을 비롯하여 7번의 4중과 3중(2회), 2중 5회, 1중을 세 번 하게 된다. 이 날은 정기 월례회가 있던 날이다.
6. 드디어 몰다
지금 그 궁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습사를 하는 와중에 관중에 연연하는 나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는 사범의 주문이자 당부의 말이다. 사범의 이 말은 관중보다는 현재의 궁체를 유지하여 꾸준하게 활을 내면, 나중에 궁체가 몸에 익어서 관중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 역시 평상시 학생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설명하면서 운동의 의미를 전달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3일 동안 활을 내지 못했다. 꽤 바쁜 며칠이었다. 그리고 5월 26일이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리고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그날이 왔다. “그님이 오셨다.”
비가 내리는 아침부터 개인적인 업무로 인해 활터근처에서 일을 보았다. 생각보다 일찍 업무가 끝났다. 이때가 정오쯤의 시간이다. 활을 낼 것인가, 아니면 귀가하여 강의준비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핑계로 귀가하였다. 그러나 상념과 피곤이 밀려온다. 2 시간정도를 이렇게 보냈다. 안되겠다. 나는 다시 활터에 가기고 마음먹었다. 이때쯤 날씨가 갰다. 활을 내기에는 좋은 날씨다. 등정하니 4-5명이 활을 내고 있다.
초순(初巡)에 4중이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2순부터 6순까지는 평년작에도 못 미친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사원들과 담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몇몇 사원이 활을 접었다. 그리고 7순째는 송헌동고문(87세), 이진원접장, 그리고 김사범과 활을 냈다. 3중이다. 습사를 마치고 사범은 “괜찮다고 충고하며, 줌손과 깍지손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그 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송고문도 활을 접는단다. 이제 이진원접장과 나, 그리고 김사범이 사대에서 습사를 한다. 3번 과녁이다. 송고문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초시가 관중이다. 사범을 계속을 불을 쏜다. 2, 3, 4矢가 모두 관중이다. 평상시 같으면 이때쯤 사범이 한마디 할법하다. 그런데 사범은 조언은커녕 나와 눈도 맞추지 않는다. 주변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마지막 5시의 순서가 왔다. 이때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오며, 입고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만작하여 발시다. 살이 중간쯤 비행하고 있는데, 옆에서 사범이 한마디 한다. “가라, 가라, 이거 가면 ...”. 그리고 바로 “꽝-”하는 소리가 들린다. 관중이다. 아니 몰기 초몰기다. 나는 바로 과녁을 향해 묵례로 예를 표하고, 사범은 나에게 “축하합니다. 초몰기입니다.”라고 하며 수인사를 청한다. 이후, 송헌동고문, 이진원접장도 수인사로 축하인사를 한다. 이에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아 이것이 몰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활을 냈는지 기억에 없다. 나중에 사범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오늘 나의 궁체가 꽤 괜찮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범은 7순이 끝났을 때, 아마도 몰기가 나올 것 같은 생각을 했단다. 궁체가 예전과 다르게 반듯하게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몰기를 하던 8순 때에는 설명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평상시에 사범은 안정된 궁체를 강조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날 습사를 마친 나는 몰기에 감사하는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내가 집궁하는데 도움을 준 윤명궁도 초대하여 자리를 같이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29일 활터에 등정하니 어떻게 알았는지 사원들이 축하를 전한다. 그리고 활터의 ‘소식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초몰기 5月 26日 18시 20분 김이수(중) 송헌동, 이진원, 김송주
표1 초몰기 전후의 습사기록
※ 실제로 5월 22일은 15순을 쏘았는데, 습사기록지에 기록된 것이 9순이다.
소식판의 기록은 초몰기를 한 일시와 시간, 몰기인이 기록되어 있고, 몰기를 증명하는 참여자들도 명기하고 있다. 초몰기의 경우에는 2명 이상이 목격해야 초몰기를 인정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접장(接長)이 된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활을 내는 모든 궁사들에게 초몰기는 궁사로서 접장이라는 칭호를 받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접장이란 칭호를 받는다는 것은 집궁을 공식화하고, 활터의 사원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 1>은 초몰기를 전후한 습사의 기록이다. 그리고 3일 뒤인 29일에도 21중을 했다. 나름 만족한다.
그런데 초몰기는 우연이었나 보다!!! 6월에 접어들어 2일부터 5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활을 냈다. 하지만 초몰기를 전후한 그때의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1중을 하기도 어렵다. 이래서 단순한 것이 활쏘기이지만 어렵다고 하는가 보다.
Ⅲ. 활터의 풍경과 한가함의 철학
1. 활터의 풍경
사원자격으로 용무정에 처음 등정한 3월 22일, 3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싸늘하다. 올해의 추위는 유독 오래가는 것 같았다. 4월 중순까지 겨울날씨가 계속되었으니 꽤 추운 날씨다.
◀ 그림2 용무정의 사대에서본 무겁터와 과녁
활터에 오르니 구사(舊射:용무정의 고문님들) 세 분이 활을 접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용무정은 시간에 따라 활을 내는 궁사들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새벽시간에는 4-5명의 궁사들이 직장에 출근하기에 앞서 활을 낸다. 그리고 오전시간에는 사두님과 연세가 지긋한 노인분들, 그리고 고문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전까지 활을 내고 돌아간다.
다음으로 오후시간에는 자영업자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궁사들이 활을 낸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직장에서 퇴근한 궁사들과 궁도대회에 출전하는 궁사들이 집중적으로 활을 내고 있다. 특히 선수들은 야사를 통해 집중적인 습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사범은 대체로 오전시간부터 오후까지 활터를 관리하면서 신사들을 지도한다.
이쯤에서 활터로서 용무정의 풍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용무정은 유림배수지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용무정은 용인시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신축하여 이전한 것이 2002년이다.
◀ 그림3 용무정 사정의 모습
활터의 방향은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산 능성이 병풍을 치고 있으며, 왼쪽은 개울이 흐른다(<그림 2>). 주변에는 골프연습장과 정구장 등 생활체육시설이 함께 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는 6.25때 중공군들이 후퇴하다가 몰살당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혼자서 야사를 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다’고 사원들은 이구동성이다.
용무정의 규모는 다른 활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사정(射亭), 무겁, 과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정은 궁방과 휴게실, 내실, 용인시협회 사무실, 사대(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녁은 사대와 짝을 이뤄 4관이다. 그리고 무겁터는 대부분 잔디가 깔려 있으며, 과녁이 있는 무겁자리는 모래가 깔려 있다. 정자의 크기는 약 200평, 활터 전체의 크기는 약 5,000평 규모이니 꽤 큰 편이다.
현재 전체사원은 약 80여명인데, 정기적으로 꾸준히 습사하는 인원은 50여명 남짓이다. 물론 여무사도 6명이 활을 내고 있다. 한편 다른 활터에 비해 고등학생과 중학생 10여명이 주말을 이용하여 활을 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주변의 활터(수양정, 연무정, 서울 공항정) 사원들도 여러 명이 방문하여 활을 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습사를 할 때에는 2관과 3관에서 습사와 편사를 하고, 1관은 웃어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4관은 개인적으로 습사를 할 때 사용하거나, 신사들이 빈활당기기를 할 때 사용한다. 습사할 때 연전은 순번을 돌아가며 실시하는 방법과 습사한 인원이 다함께 실시하는 방법을 병행한다. 순번에 의해 돌아가면서 연전을 할 때에는 팔찌동 윗자리에서부터 순서대로 실시한다. 서로의 편리성을 감안한 방식이다. 이때 다른 사원은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반면에 모두가 연전에 참여하는 방식은 자신이 발시한 화살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사대에서 보이는 화살의 방향과 과녁에 직접 가서 화살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확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습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원의 연령은 16세 부터 87세까지 다양하다. 부부사원도 있으며, 부자사원, 직장동료사원도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일반직장인은 물론이고 농부, 상업인, 학생, 연구원, 공무원, 경찰관, 의사, 선생님, 군인,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한 노인들까지 있다. 그러나 연령, 직위, 직업을 막론하고 서로 존칭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은 신구(新舊)가 만나는 교육의 장소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등정할 때, 초시(初矢)할 때, 몰기할 때, 습사를 청할 때 등 대부분의 예절은 《朝鮮의 弓術》에 기록된 전통적인 예법에 준하여 예를 갖추어 자신의 마음을 표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획일적이지도, 부자연스럽지도,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활터에서 생활을 익혀가며, 보고 듣고 느껴서 마음으로 표현한다.
등정할 때에는 먼저 본 사람이 ‘안녕하세요?’와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고,
초시(初矢)를 낼 때에는 ‘활 배우겠습니다.’라고 하면 ‘많이 맞추세요’라고 화답한다.
몰기를 했을 때에는 묵례로 감사의 마음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은 ‘축하합니다.’라고 격려한다.
습사를 청할 때에도 ‘한 순 내시겟습니까?’라고 청하면, ‘예’라고 화답한다.
연전을 할 때에도 서로 청하는 것이 예의다.
그리고 활을 접을 때에는 특히 정중하다. 주변의 사원과 구사에게 먼저 물러남을 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예절을 활터에서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주변의 사원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듣고, 그대로 따라서 할 뿐이다. 이에 대한 용무정의 사범은 “예절과 상대에 대한 배려는 가르친다고 되나요. 애들도 아니구. 본인이 느껴서 그렇게 해야지요!!!”라고 설명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렇게 인위적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활터의 문화는 현대인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자연스럽게 예를 표하고, 주변사람을 배려하는 풍경을 볼 때면 신구(新舊)가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득하는 최고의 장소가 활터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2. 습사(習射)와 편사(便射)
필자가 집궁한 이후, 4월에는 20회, 5월 14회 등정하여 습사를 했다. 총 34회이니, 격일 또는 3일에 한 번씩 습사를 한 꼴이다. 그리 많은 횟수가 아니다(다른 사원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 정도면 게을리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해 나의 초몰기를 목격했던 이진원접장은 “콩나물에 물 주듯이 하라”고 충고한다. 즉, 콩나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떡시루에 건실한 콩을 넣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다. 그러나 물은 시루 구멍으로 바로 흘러내리고 만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씨눈에서 싹이 나고 콩나물로 성장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공부도 이와 같지 않은가! 시험을 위해 벼락치기공부를 하는 학생과 꾸준하게 조금씩 학업에 충실한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 이렇게 이접장의 충고는 습사의 ‘習’字가 ‘되풀이하여 반복적으로 익히고, 연습하여 손에 익숙해지게 한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설명이다. 체육도 이와 같이 아니한가. 다른 운동이나 체육도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기를 지도자들은 권한다. 그러나 활쏘기에서 습사의 과정은 고단하고 힘든 과정이다. 단순해 보이기만 한 활쏘기의 과정. 똑같은 과정을 그것도 혼자서 반복해야 하는 자신과 싸우는 과정이다.
때문에 활쏘기에서는 편사(또는 내기)라는 제도가 있다. 서로 편을 나누어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활쏘기에서의 경쟁은 스포츠에서의 경쟁과 다르다10). 상대편과 선의적으로 견주면서 평상시 습사한 본인의 능력을 능동적으로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팀윅의 중요성과 상대팀을 배려하는 마음까지도 함께 배우게 된다. 즉, 고되고 힘든 습사의 과정을 편사를 통해 피드백하는 것이다.
필자도 4-5차례 편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관중률이 낮은 내가 편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같은 편에게는 큰 핸디캡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편에서 먼저 핸디캡을 배려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같은 편의 구성원들은 나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핸디캡을 극복한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스포츠가 아닐까? 그러서 나영일은 활터에 대한 글(조선시대의 국궁문화)에서 활터를 ‘스포츠클럽의 원조’, ‘전통 스포츠문화의 뿌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 오시일순(五矢一巡)의 철학 ; 여유와 한가함의 철학
처음 활터에 올라 사원들이 습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활쏘기가 정말 운동이 될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활을 쏘는 시간보다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별도의 운동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다. 보통 7명이 한 사대에서 습사 할 때, 1순을 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정도, 연전하는 시간은 약 5분정도 소요된다. 이에 비해 담소의 시간은 약 10분 정도이다. 즉, 1순을 쏘는데 걸리는 시간은 25분 정도인데, 그 중에서 개인이 활을 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3분이 채 안된다. 그러니 신사의 입장에서 운동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할 만 하다. 이와 같은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신사들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그래서 특히 젊은 신사들은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습사를 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습사하는 경우를 간혹 목격하게 된다.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신사들은 보통 4관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습사를 하는데, 어떤 사원은 오시(五矢)씩 활을 쏘지 않고, 10矢에서 30矢를 한 순에 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습사는 궁력을 키우는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궁체를 바로하고 관중의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신통하지 않다는 것이 사범의 설명이다. 또한 그것은 활쏘기 예법에도 어긋난다고 충고한다. 왜 전통적으로 습사를 할 때에 5시를 일순으로 하는가? 그것은 활쏘기가 갖는 ‘한가함과 여유의 철학’이다. 습사를 하고 연전을 하는 동안 담소를 나누며 세상살이를 공부하면서 ‘삶의 철학’을 배우는 또 다른 공부를 함께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궁체도 바로 선다.
필자도 연전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10矢를 발시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편리하다는 장점이외에는 다른 장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첫째는 앞에서 설명한 《예기》의 “內志正 外體直”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궁체는 흐트러짐이 생기고, 맘은 관중에 대한 생각으로 바른 마음을 갖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줌손과 깍지손이 활의 장력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깍지손의 통증은 만작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으며, 발시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가함의 여유이다. 일순이 끝나고 나면, 다섯 번의 발시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여유롭게 갖는 것이 궁력을 키우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전통적으로 대사례와 향사례 등에서 사법보다는 예를 중요시 하였던 이유가 아닌가 판단된다. 그래서 활쏘기의 용어 중에 일시천금(壹矢千金)이란 말이 있는 듯하다. 화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신중을 기해 발시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Ⅳ. 所懷 ; 그리고 활쏘기는 계속되다
빈활을 당겨도 살은 무겁터를 지나 과녁을 향하다
마음이 꼬리를 흔들며 창공을 가른다
주살질을 해도 살은 무겁터를 지나 과녁을 향한다.
마음이 꼬리를 흔들며 창공을 가른다
활을 낸다
깍지손을 떠난 살의 깃이 꼬리를 치며 창공을 가른다
쏜살같이 무겁터를 지나 과녁을 향한다
관중도 불도 괜찮다.
오직 바른 마음과 곧은 몸을 유지할 뿐이다(內志正 外體直)
이것이 五矢一巡이 갖는 한가함과 여유로움의 철학이다
세상살이를 공부하는 삶의 철학이다.
그래서 하나의 살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라고 한다(壹矢千金)
나의 삶이 깃이 되어 창공에서 꼬리치며 춤추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활을 낸다.
그리고 내일도 활을 내련다
【참고문헌】
김이수(2010). 21세기에 바라본 조선의 궁술. 서울: 한국학술정보(주).
이중화(1929). 朝鮮의 弓術. 경성: 조선궁술연구회.
황학정백년사편찬위원회(2001). (近代弓道의 宗家)黃鶴亭 百年史. 서울: 黃鶴亭.
김이수, 허일웅(2002). 현암 송덕기와 택견에 대한 연구. 대한무도학회지, 4(1), 189-201.
김이수(2007). 안자산의 무예관 연구-《朝鮮武士英雄傳》을 중심으로-. 한국체육학회지, 46(3), 1-10.
스포츠 둥지(http://www.sportnest.kr)
【주석】
1) 유럽은 2m에 가까운 장궁을 사용하였다고 전하는데, 1545년에 튜더왕조가 사용했던 궁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북미인디언들의 활쏘기는 아시아에서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인데, 주로 목궁을 사용한다. 인도와 페르시아의 활(crab bow)은 한국과 같이 복합궁에 단궁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티벳과 터키, 몽골과 중국의 활은 각궁이며, 일본의 특징은 2m가 넘는 장궁을 사용한다.
2) 2008년부터 “체육철학으로 활을 쏘다 : ≪朝鮮의 弓術≫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3) 논문의 주제는 “『朝鮮의 弓術』에 관한 연구(1)-현대적 가치와 의미”이다.
4) 용무정을 선색한 것은 필자의 의지라기보다는 윤한의선생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5) 다른 사원들은 3관과 4관에서 활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사범과 단 둘이서 2관에서 살을 냈다.
6) 활쏘기에서 불(不)이란 1순 모두가 관중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나머지 관중하지 않은 4발을 의미한다.
7) 용무정의 월례회는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 있다. 그러나 4월의 월례회는 다른 행사로 인해 둘째 주인 4월 10일에 실시되었다.
8) 활은 47파운드의 카본궁이고, 화살은 6돈 5냥, 6치 5분의 카본살이다.
9) 《禮記》〈卷八〉射義 第 四十六편에 등장하는 문구로, 활쏘기에 대한 내용으로, ‘예부터 활쏘기를 하는 사람은 들고 날 때 읍하고 사양함을 중요하게 하여야 하며, 의지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한 후에야 활을 잡음에 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10) 본질적으로는 활쏘기와 스포츠의 경쟁은 같은 개념일 것이다. 다만, 스포츠에서의 경쟁은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 스포츠의 병폐로 인해 퇴색된 부분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스포츠의 경쟁은 결과에 치우쳐진 스포츠의 경쟁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