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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 무과합격증
조선시대 무과 마지막 장원급제
기사입력 2013-09-09 오후 2:53:00 | 최종수정 2014-10-29 오후 2:53:22   

황학정 사두이자 조선궁술연구회 초대 회장인 성문영 공은 구한말 무과 출신자로 입신 양명한 사람이다. 외동아들인 성낙인 옹에 따르면 성문영 공은 6개월에 걸쳐서 치러진 무과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온깍지궁사회에서 성 옹의 유족으로부터 받아온 자료 중에 그와 연관된 자료가 있어 큰 관심을 끈다. 바로 무과 합격증인 성문영 공의 홍패이다. 홍패란 과거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는 증서인데, 붉은 종이에 써서 주기 때문에 홍패라고 한다.

조선시대 과거는 크게 소과와 대과로 나뉘는데, 소과는 문과의 1단계인 생원진사과를 말한다. 여기서 합격하면 흰 종이에 합격증을 써주는데, 백패라고 한다. 백패를 받은 수험생은 조선시대의 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를 더한 뒤에 다시 시험을 치른다. 이것이 대과이다. 이 대과를 통과하면 관리에 임용된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이 임금 앞에서 보는 전시이다. 문과무과 모두 전시에 합격하면 홍패를 준다. 무과에서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한 뒤에 전시에 진출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 공의 아들 성낙인의 말과 이 홍패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 옹은 자신의 아버지가 무과 장원이라고 했는데, 장원이라면 홍패 안의 기록이 갑과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기록을 보면 병과이다. 그냥 합격한 것이지 장원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장원 소식을 기억하는 성낙인 옹의 말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도 다른 대회이거나 무과의 중간단계에서 장원한 것을 전시에서 장원한 것으로 잘못 기억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서로 뒤섞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무과 급제자들이 전시에 나가기까지는 수많은 시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생긴 기억의 혼동일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이번에 받아온 성 옹의 유품에는 성문영 이름 위에 장원이라고 쓰인 기록도 있어서 성 공의 장원에 대한 아들 성낙인의 기억은 근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무과 합격증으로 받은 홍패는 분명한 사실이고, 장원은 아니지만 병과로 등과한 것임을 확인한 것은 근대 활쏘기 역사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일이다.

광서 16년은 중국의 연호이다. 서기로는 1890년에 해당한다. 공의 나이 21세 되던 해이다. 만으로는 20세이다. 2,179인이 합격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 굉장히 많은 사람을 뽑았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문과 입격자는 33명을 뽑아서 마지막으로 임금 앞에서 전시를 치러 갑을병 3등급으로 나누어 임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무과는 임진왜란 이후 이런 체제가 문란해져서 많은 사람을 뽑았다. 심지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10,000 이상을 뽑은 적도 있어서 문과와 달리 <만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연히 문과 합격생들로부터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원래 조선이 문과를 중시한 나라여서 무과를 좀 우습게 여기는 경향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으로 인해 무과를 문과이 비해 낮춰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양반이고, 이 양반이란 말은 문반과 무반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고 보면, 문과든 무과든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필생의 염원이었다. 그리고 지배층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또 한 가지는, 이 무과 합격증이 활쏘기에 암시하는 바는, 조선궁술연구회를 이끈 중추세력이 바로 무과출신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활만 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예도 두루 섭렵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궁술>이라는 책이 활 수련 최고의 경지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증거이다. 이 홍패는 <조선의 궁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이 괜히 활의 나라가 아니라 분명한 근거가 있음을 이런 자료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의 활쏘기는 모든 무술을 섭렵한 단계에서 나온 세계 최고의 무술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전통을 잘 잇고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조선시대의 무과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온깍지궁사회 제공)


[2014.10.29, 기사 내용 일부 수정함]

기사제공 : 국궁신문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의 사진
1930년대 조선궁도회 초기 도장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초대회장의 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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