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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이름 유래-덕유정 德游亭
조선시대 민간사정 활문화의 보고
기사입력 2020-10-06 오전 9:44:00 | 최종수정 2020-11-15 오전 9:44:03   
활터 이름 유래-덕유정 德游亭
조선시대 민간사정 활문화의 보고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덕유정은 민간사정民間射亭으로서 사계좌목射契座目과 편액扁額 등 역사적으로 활문화에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이 남아 있는 활터이다. 그런 만큼 활터 이름 유래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살펴보겠다. 덕유정은 200여년 전 지방 민간사정의 원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꾼이라면 누구나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활문화의 보고寶庫와 같은 정亭이다. 

 덕유정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사회적 배경을 살펴 본다. 금강 하구에 있는 강경은 내륙 깊숙히 위치 하면서도 금강 하구와 가까워 해상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조선 후기 17세기 말부터 큰 시장이 섰다. 번창하던 시절인 일제 초기부터 반세기 동안 각종 수산물과 농산물의 거래규모가 호남지방에서 제일 큰 규모였다. 강경은 해방 후까지 평양, 대구 시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힌 상업도시였고, 지금도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여럿 남아 있다. 당시 팔고 남은 서해 해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법이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전국 최대 젖갈시장로 꼽힌다.

 호남선 철길을 통해 인근 평야의 쌀을 강경역에 모아, 강경포구를 통해 일본으로 수탈하던 역할이 해방 후 없어지고, 인근 지역 농•공업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 목적으로 금강하구둑이 생겨, 서해 물길이 막히므로, 수운교통 수단인 강의 배들도 사라져, 지금은 강경포구가 한적한 공원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은진현恩津縣 소속으로 현감縣監이 덕유정에서 재판을 했다고 한다. 

 덕유정 창설 연도는 분명하지 않으나 덕유사계德游射契가 1828년(순조 28년)에 창립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는 강경포구가 번창하던 초기로 보인다.

 
 전국에 390여개 활터 가운데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활터가 많지 않다. 덕유정  운영은 사계射契의 계비契費로 지원하였다. 사정에서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강학講學을 하고, 과거시험 무과 활쏘기인 사예射藝를 가르쳤으며, 사원들의 활터 규범인 사체射體가 있었다. 사계는 '활터의 중수와 활터의 운영'이 기본 목적이고, 또 다른 목적은 사계원들 간의 애경사哀慶事 부조扶助 였다. 사계는 계례契例를 만들어 계원들의 규범 및 계의 운영원칙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후 갑오경장과 무과시험 폐지를 기점으로 활쏘기가 개인의 심신 수련 운동으로 가치가 변함에 따라, 사정과 사계 조직이 합쳐져, 현재의 활터 운영 방식이 되었다.

 덕유사계 운영에 관한 기록은 사계좌목에 자세히 남아 있다. 사계좌목은 12권이 발간 되었으며, 1828년 사계조직 이후 2007년까지 시대별로 기록한 덕유정의 역사서 이며, 덕유정 활터 풍속과 사계운영 지침서이다. 덕유사계의 성격은 '자제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적 집단'인 학계學契 혹은 서당계書堂契 성격과 유사했으며, 물질적 이익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계원들은 은진현의 유지로 추정된다. 사진은 사계좌목 5권 표지이다.


  처음 작성된 사계좌목 1권은 덕유정계서德游亭契序, 좌목座目, 입의立議 순順으로 기록 되었으며, 덕유정계서에는 활터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고, 덕유사계의 설립목적이 명시 되어 있다. “유아정액 취의어사 관덕유어예(惟我亭額 取義於射 觀德游於藝). 우리 사정射亭의 편액은 『예기(禮記)』에서 활쏘기로 덕德을 본다라는 말에서 '德' 자와 『논어(論語)』에서 예藝로서 논다는 '游' 자에서 뜻을 취했다.”고 했다. 또한 '내가 일찍이 덕유德游의 뜻을 생각해보니 『예기』에 외체外體가 바른 자는 먼저 그 뜻을 바르게 하며, 이것으로 그 덕德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논어』 에 군자의 겨룸은 오로지 활쏘기에 있으니, 이것으로 덕에 논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덕유정 이름 유래를 알 수 있다. 좌목은 사계원들의 명단이고, 입의는 덕유사계의 기본원칙으로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덕유정의 성쇠에 따라 쇠퇴한 사계를 다시 일으킨 내용을 기록한 사계복설서射契覆設序, 갑오경장 이후 쇠잔한 사계를 다시 일으키고자 한 내용을 기록한 사계중설서謝契重設書가 사계좌목에 남아 있다. 또한 시대 상황에 맞게 사계좌목의 내용이 체계화 되고 구체적으로 보완되었다. 

 덕유사계의 운영은 입의立議 및 계례契例에 따라 계원의 계비(출자금)를 비롯하여 계전契錢의 재정확대 방법과 강회 및 계회의 개최를 명시 하였으며, 정기적인 궁술대회를 개최하여 입상자에게 상금과 상품을 수여하는 등 궁력 향상을 도모하였다. 운영 조직은 계장契長, 부계장副契長, 유사有司, 계원契員으로 구성 되었으며 계장은 사백射伯 대우를 했다. 주목 할만한 것은 사계좌목에 29명의 여성 이름이 올라 있는데 기妓, 여사女射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사계좌목에는 덕유정의 구성원과 임원 선출방식 등을 담은 각종 규례가 나오는데, 임원은 사백射伯, 접장接長, 권무勸武, 공원公員, 장무掌武이다. 사백은 사두射頭와 같은 사정의 최고 우두머리로, 지금도 호남지역 일부 활터에서 통용된다.

 
 접장은 부사두 역할을 하고, 권무는 사예를 가르치는 사범을 말하나 현재는 총무 역할을 하고 있다. 공원은 정의 제반 잡무를 돕고, 장무는 총무 역할을 했으나 현재 사용하지 않는 호칭이다. 이런 호칭은 덕유정 방문시 유의 해야할 일이다. 

 덕유정의 활쏘기 풍속도 사계좌목에 명시되어 있는데 『조선의 궁술』 '古來의 射風'과 유사한 내용이 있다. 사백 및 관장官長의 영접 절차, 대우待遇, 설자리 풍경 및 동진동퇴同進同退, 퇴정退亭, 취격聚格 등의 규율을 정해 놓은 활터의 윤리규범이다. 취격이란 규범을 위반한 한량에게 격식에 따라 처벌하던 일이다. 

 덕유정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을 보면, 당시 활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인 당산제 주관, 은진현 향교 지원(本縣校宮補弊節目), 관아의 행정업무 대행 및 강경 포구의 상거래에 대한 각종 조세 징수(完文) 등이 있다. 덕유정 사백이 전前 부사府使 또는 현감縣監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쉽다. 덕유정 옆에 관해루觀海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옥녀봉에 있던 것을 옮겨 놓았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덕유정 세가지 옛 풍속은 활문화에 의미 있는 행사이다. '권무잔치'는 덕유정 건축을 기념하는 행사로 매년 5월1일 시행하며 권무가 주관한다.   '접장잔치'는 매년 백중일(음력 7월15일)에 접장(부사두)이 주관하며 선생안 제사와 자정自亭 대회로 치룬다. '과녁제'貫革祭는 대보름 전날 음력 1월14일에 열리며, 사원들의 무사안녕과 시수향상, 화합 등을 다짐하는 행사로 공원들이 주관한다. 현재는 사계는 운영되고 있지 않으나, 이런 풍속은 유지되고 있다.

 덕유정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여년의 역사실록인 사계좌목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6.25 전쟁 중 이것을 정 뒤뜰에 묻어 보전한 이행구씨의 큰 역할이 있었다. 이런 공적을 기려 금년 선생안 제례시 접장 추서追敍와 신위神位를 등재 하였다. 이행구씨는 덕유정 시동矢童과 고전告箭을 보며 정을 관리하는 '정지기'를 했던 사람이라 한다.

 코로나 전염병 예방을 위해 활쏘기를 못하는 대신, 활터 이름 유래를 살펴 보면서 나보다 앞서 걸어간 한량들의 생각의 자취를 더듬어 보며, 글 쓰는 보람과 용기를 얻게된다. 활터 이름에 우리 조상들이 활을 쏘며 정신적으로 추구하던 이상理想을 함축하고 있음을 배우고 있다. 사대射臺에 서면서 '활 배웁니다'라는 말 대신에 책장을 넘기면서 활 배우는 요즘이 새삼스럽다.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중이다.  

글을 쓰며 참고한 책은 '활터 조사보고서, 덕유정'(국립민속박물관. 2007)이고, 관련 자료는 '덕유정의 문화와 풍속'(이건호, 한영국. 2004)과 SNS 검색 등으로 얻었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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