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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관 선사 沈載寬 善射
서무정에서 집궁, 무덕정에서 전국에 명성 얻어
기사입력 2020-10-11 오후 8:50:00 | 최종수정 2021-02-26 오후 8:50:54   

서무정에서 집궁, 무덕정에서 전국에 명성 얻어

심재관(沈載寬). 1922년 - 2012년.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청송 심씨 25세손이며, 인천유형문화재 제32호인 심즙 신도비(沈楫 神道碑)의 주인공인 심즙의 13세손이다. 1922년 2월 17일에 경기도 부천군 서곶면(西串面) 가좌리에서 아버지 심관섭과 어머니 민병학 사이에서 삼형제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으며, 마라톤과 시도대항 축구대표를 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았다. 활쏘기를 하게 된 동기는 외조부와 선친이 함께 활쏘는 것을 보고 입문하게 되었는데 처음 활쏘기에서 5발중 2발을 명중시키니 구경을 하던 선친이 2중례를 해야 한다며 그날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활쏘기와 익숙한 외조부와 선친의 영향으로 대물림 활쏘기를 하게 되었으며, 집에 활터가 있어서 걸음마 할 때부터 아버지가 쏘시는 화살을 주어드리고 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전언에 따르면 심재관은 10살 무렵부터 활을 쏘기 시작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우궁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군대에서 손을 다쳐 잠시 활을 놓는 휴궁기 이후 좌궁으로 다시 활동하였다.

심재관(沈載)의 공식적인 집궁 시기는 활터 자료의 손망실로 인해 기록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개울가 근처에서 과녁 2개를 놓고 활쏘기를 시작한 인천 서무정에서 공식 집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인천 무덕정으로 소속을 이정(移亭)하여 김현원 하상덕 등과 함께 전국에 강호 무사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전국대회에서 수십 차례 입상하였으나, 미국 이민과 국내 거주를 반복하는 와중에 각종 대회 수상 자료가 손실되어 정확한 입상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대한체육회 및 대한궁도협회 등의 기록을 참고로 몇 가지 확인이 되었다. 특히 국궁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기록도 확인되었다.

1977년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였으며, 당시 단체전 우승과 함께 개인전 부문에서 25시중 22시를 득점하여 1위에 올랐고, 2위(하상덕 20중)와 3위(김현원 20중)도 인천 무덕정 소속의 경기도 대표 선수들이 모두 차지했다.

또한 1987년도 대전 대덕정에서 개최된 대한궁도협회 주최 제1회 중앙회장기쟁탈 전국대회 결선 재순에서 인천 무덕정 소속의 ‘김현원 하상덕 오세준 구명기 심재관’ 5명이 출전하여 모두 5시 5중의 몰기로 25중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대기록은 전국으로 퍼져 무덕정의 명성이 높아졌다. 한편 무덕정에서는 이날을 기념하고자 5명의 출전선수에게 감사장을 주었다.

80년대에 심재관과 함께 활쏘기를 한 궁사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좌궁으로 연궁중전을 사용했으며, 길게 끌어 쐈다고 한다. 또한 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손재주가 뛰어났으며, 새 각궁이 나오면 궁장이 해궁을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해궁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해궁 관련하여 궁장이 심재관 명궁에게 물어볼  정도로 각궁의 이론과 실전에 대해 해박했다고 한다.

대한궁도협회에서는 1985년부터 종합선수권대회 입상자에게 명궁칭호를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심재관은 1985년도 대한궁도협회 명궁패를 받았다. 또한 1986년도에 종합선수권 준우승자에게 부여되는 충무명궁 칭호를 받았으며, 아울러 최초 9단 승단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대한궁도협회에서 발행하는 명궁록에 1번으로 등록되어 있다.

심재관(沈載)은 주로 인천 무덕정 소속으로 전국에 이름이 나면서 전국대회 입상을 위해 전국 각지의 활터에서 요청하여 초청사범으로 많이 활동하였으며, 가족의 기억과 시지 등의 각종 기록으로 확인한 결과 청주 우암정, 영월 금호정, 부천 성무정, 서울 황학정, 묵호 등지에서 사법 지도를 하였다.

특히 서울 황학정의 1971년도 사범 활동기록과 2000년도에 발간한 책 황학정 백년사의 좌목에 1978년 11월 11일 입사(入射)한 것으로 이름이 등재된 사실이 눈에 띈다. 좌목에 기록된 황학정 입사일과 당해연도 전후의 전국대회 입상기록을 살펴본 결과 인천 무덕정 소속으로 표기된 자료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이는 당시 원 소속과 초청사범으로 활동 중인 활터 두 곳의 이름으로 왕성한 활동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심재관(沈載)은 뛰어난 궁술 실력에도 불구하고 늘 경쟁 상대인 타 궁사를 배려하는 겸손함이 몸에 배였으며, 가족의 전언에 따르면 선친께서는 ‘항상 활을 쏠 때 80 퍼센트는 운이 따라 주어야 하기 때문에 2등 3등도 모두 명궁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배려하는 마음의 후덕한 한량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생활을 해온 심재관(沈載)은 2003년 대한궁도협회 선수 등록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쏘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심재관(沈載)은 민경숙 여사와 슬하에 1남 5녀의 자녀를 두었고, 1990년 경 부터 자녀들을 따라 미국으로 갔으며, 그때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다가 2012년에 포트랜드에 사는 친손주 품에서 91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 주요대회 입상현황
 ․ 1975. 우승. 제14회 신라문화제 제7회 전국남녀궁도대회
 ․ 1976. 우승. 제15회 신라문화제 제8회 전국남녀궁도대회
 ․ 1977. 우승. 제58회 전국체육대회 단체전 및 개인전 우승
          1위 심재관(22중) 2위 하상덕(20중) 3위 김현원(20중)
 ․ 1978. 우승. 제4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 1981. 우승. 남해대교 개통통기념 제2회 전국남녀궁도대회
 ․ 1982.  2위. 제63회 전국체육대회 단체전 및 개인전
 ․ 1984. 우승. 제65회 전국체육대회 개인전
 ․ 1985.  3위. 제66회 전국체육대회 단체전
 ․ 1986. 우승. 진남제전 제3회 체육부장관기 전국남녀궁도대회
           권금천 오세준 한인수 정윤석 심재관
 ․ 1986.  2위. 제441회 이충무공탄신기념 제25회 대통령기쟁탈 전국시도대항궁도대회
 ․ 1986.  2위. 전국궁도종합선수권대회
 ․ 1987. 우승. 대한궁도협회 주최 제1회 중앙회장기쟁탈 전국대회(대전 대덕정)
           김현원 하상덕 오세준 구명기 심재관(25시 25중)
 ․ 1987.  2위. 제442회 이충무공탄신기념 제26회 대통령기쟁탈 전국시도대항궁도대회
 ․ 1987. 우승. 제68회 전국체육대회 단체전 및 개인전 우승
 ․ 1990. 우승. 마산시민의날 가고파큰잔치 제1회 체육부장관기 제5회 전국남녀궁도대회

△ 대한궁도협회 입승단 현황
  ․ 1971: 초단. 1974: 2단 3단. 1977: 4단 5단.
  ․ 1978: 6단. 1980: 7단. 1985: 8단.  1986: 9단.
 ․ 명궁패 1985년도 수여

△ 각종 자료 사진
 ․ 덕할매와 미술놀이 블로그 참고
 ․
http://blog.naver.com/shd1959/222094926714


9단증, 최초 9단에 올랐다.


미국 이민후 귀국시 마다 넷째 딸 가족과
인천 무덕정을 방문하여 활을 냈다.


생전에 사용하던 각궁 및 궁대


궁낭, 촉돌이 등 당시 사용하던 사구(射具)


우승 시지. 1975. 제14회 신라문화제 제7회 전국남녀궁도대회 


황학정 사범으로 활동 당시의 만개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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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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