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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이름 유래-황학정 黃鶴亭
기사입력 2020-10-13 오후 9:32:00 | 최종수정 2020-11-24 오후 9:32:39   
황학정은 1899년(고종 36년) 고종황제의 御命어명으로 세워져, 갑오경장 이후 위기를 맞은 활쏘기가 되살아난 계기가 된 활터다. 같은 해 독일 하인리히 왕자가 조선을 방문 하면서 '조선의 고유한 무술이 있으면 구경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아, 활쏘기 시범을 보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조선일보 기록이다. 『졸지에 덕수궁에서 황제께서 무감을 내려 보내시어 경희궁 안에서 관병식을 하는데 활 쏘는 것을 덕국 친왕에게 구경시킬 터이니 시각을 지체 말고 활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분부가 내렸지요.(중략)....이튿날 장안에서 궁수 여섯을 뽑아 들였습니다.....(중략) 여섯 사람이 활을 쏘기 시작하였는데 대개 화살 다섯을 가지고 네 개 또는 다섯 개를 땅땅 막히니까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 마다 덕국인의 박수 갈채가 일어 납니다.』 

고종황제는 경희궁 안에 황학정을 세우고 가끔 친사親射하며, 민족의 혼과 호국정신이 담긴 활을 국민들에게 권장하고, 민간에게 개방했다. 고종이 쏘던 활 호미虎尾가 현재 육군사관학교내 육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지금도 황학정에는 황제의 어진御眞을 상징으로 걸어 놓고 예禮를 갖추고 있다. 황학정에는 정간正間이 없다. 황제의 칙령 이후 한양과 전국 각지에서 활쏘기가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당시 황태자이던 순종이 황학정 총재로 있다가, 고종황제 양위후 사두체제로 바뀌어, 5대 사두까지는 신분이 당상관堂上官을 지낸 궁내부宮內府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일제가 총독부 관사를 짓기위해 황학정이 철거될 뻔 하였지만 - 태극기를 창안한 - 박영효의 노력으로 1922년 사직공원 뒤, 인왕산 기슭에 있던 등과정登科亭터로 옮겼다. 

[고종황제가 쏘던 활 虎尾]

 황학정 이름은 '학처럼 머나 먼 거리를 함께 날아가는 의리義理와 사후射侯의 황색 정곡正鵠을 맞힌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후란 솔포 과녁을 말하는데 당시는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베(포, 布)로 만들어 세웠고, 정곡은 과녁 1/3정도의 크기로 모지게 만들어 과녁 가운데 붙였다. '정곡'이라는 말에서 '정곡을 찌르다'는 말과, '맞힌다'는 '과녁 的'을 써서 '적중的中 하다'라는 뜻의 어원語原이 보인다. 황학정 창건시 현판은 6.25 전쟁으로 불타버리고, 지금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83세 되던 1958년에 휘호揮毫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황학정 현판]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선조대왕은 국민의 상무정신을 진흥코자 경복궁 안에 오운정五雲亭을 세우고, 민간에게 개방하여 활쏘기를 장려하므로, 활쏘기가 민간사정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무과시험이 자주 시행되어 많은 민간사정이 생겨나고 국민들 사이에 활쏘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당시 한양도성 안팎에는 48개나 되는 민간사정이 있어, 서로 세勢를 겨루었는데 터편사, 남북촌 편사, 골편사 등이다. 이 편사는 나중에 장안편사로 발전하게 되는데, 후에 별도로 살펴 볼 계획이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강압적인 무단정치武斷政治로는 식민지 조선을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정책을 문화정치文化政治로 바꾼다. 이 때부터 경향 각지에서 많은 궁술대회가 열리며, 활쏘기가 영욕榮辱의 시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 궁술문화를 계승하여 꽃피웠다는 영화榮華의 시기와, 활쏘기로서 나라를 지키고 도의道義를 바로 세우는 강인한 무반武班의 기개氣槪 보다는, 술 마시고 기생과 함께 즐기는 퇴폐적 놀이로 전락하는 치욕恥辱을 겪게 된다. 나라 잃은 한량閑良들이 갈 길을 잃은 모습이다. 

 이렇게 전통 궁술이 흥행화, 오락화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자, 궁술계의 각성을 촉구하는 여론이 일어난다. 그 결과 1928년 중앙기독청년회(회장 윤치호) 주최, 동아일보 후원으로 제1회 전조선궁술대회가 열린다. 대회준비를 위해 서울과 경기지역 14개 사정 대표들이 모여 『조선궁술연구회』를 발족시키고, 황학정 5대 사두인 성문영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조선궁술연구회』는 이듬해인 1929년 활쏘기의 고전古典인 『조선의 궁술』을 발간하여, 구전口傳과 단편短篇으로 전해오던 활쏘기를 집대성 集大成하는, 활문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조선궁술연구회』가 오늘날 대한궁도협회의 전신이다.

 6.25 전쟁의 상처는 컸다. 황학정 건물은 살아 남았으나 '황학정 좌목, 황학정기, 현판' 등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 후 사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허물어진 정과 과녁 하나를 복구하여, 1958년 한국일보사 주최, 대한궁도협회 주관으로 '제1회 전국남여활쏘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하여 활쏘기를 장려 하였고, 문교부장관, 서울특별시장이 수행하여 거의 국가적인 행사였다. 이 대회는 1968년 제11회까지 여러 정亭을 돌면서 이어져, 전쟁으로 폐허가된 활쏘기를 부흥시키고 대중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좌측에 앉아 있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

 요즘 정의 구사舊射들은 젊은 신사新射들이 궁력을 키우는 일에 과거만큼 관심이 없어 삭회朔會 참석율도 낮고, 각종 경기 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걱정 한다. 사회적으로 골프 인구가 늘어나고 취미생활이 다양화 되면서, 휴일의 여가시간에 가족을 우선으로 하고, 활쏘기를 즐기면서도 조직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풍조라고 보고있다. 이런 경향은 활쏘기에 관한 언론보도에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해방전후 동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매체에서 대한궁도협회와 협력하여 많은 전국대회를 개최하였지만, 지금은 발행 면수가 몇 배 늘었지만 전국대회 조차 기사화 되지 않는다.

[황학정.서울시유형문화재 제25호]

 황학정은 전통 활문화 계승과 아울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몇가지 살펴보면, 우선 개량궁 개발로 활쏘기 대중화에 기여했다. 5.16 군사정부의 관심으로 대한궁도협회가 양궁 보급에 노력할 때 국궁사법의 양궁접목, 국산양궁 개발 등에 역할을 했다. 황학정의 차경현씨가 국산양궁을 개발하면서 쌓은 기술로 70년대 중반에 개량궁을 처음 만들고, 제작 기술이 점차 발전하며 값비싼 각궁과 같이 성능 좋고 저렴한 활을 보급하면서, 누구나 쉽게 활쏘기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궁1번지, 궁도입문, 황학정 백년사, 국궁교본'을 펴 내고 궁도교실 등을 운영하며, 근대궁도 종가로서 자부심과 함께 활문화 계승에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밖에, 한양 도성 안팎의 사정들을 세 편으로 갈라 활쏘기를 겨루던 '장안편사'를 복원하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게 하였고, 경기도 지방 농촌의 한량들의 대중문화이던 '활 백일장'의 복원방안을 시 당국에 제출하기도 했다. 황학정에는 활쏘기 관련 세가지 문화재가 있었다. 앞서 사진으로 본 '황학정 건물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장안편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7호, 또 하나는 지금은 작고하였지만,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7호 전통활쏘기 보유자 장석후'씨다. 

 글을 쓰며 참고한 책은 '황학정 백년사'(황학정. 2000), '활터 조사보고서'(국립민속박물관. 2007) 등이고, 관련 자료는 SNS 검색 등으로 얻었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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