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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이름 유래-석호정 石虎亭
1435년경 세워진 활터, 전통 이어져...
기사입력 2020-10-20 오후 2:55:00 | 최종수정 2020-12-08 오후 2:55:04   
 석호石虎란 호랑이 처럼 생긴 돌이다. 석호정은 조선 초기부터 남산의 장충단奬忠壇 공원 근처에 있었다. 남산은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으로, 서울 남산은 목멱산木覓山이라고도 부르는, 서울 한가운데에 있는 천혜의 명당이다. 석호정은 남산의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활터이고, 장충단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순국한 충신과 열사를 제사하는 제단이다.

 석호정이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 漢 나라 때의 장군將軍 이 광李 廣이 북평태수北平太守 시절에 밤길을 가다가, 큰 호랑이를 만나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활을 쏘았는데, 다음날 가 보니 화살이 호랑이 닮은 돌에 깊이 박혀 있어 기이히 여기고, 다시 쏴 봤더니 튀어 나오더라' 라는 사중석몰촉射中石沒鏃의 고사古事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매사에 심혈을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라는 뜻이다.

 
 석호정의 창건 연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435년(세종 17년) 세종이 성내에 8곳의 활터(射場)을 설치하고 번(番)을 난 군사들로 하여금 습사하게 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1435년경에 건립 되었다는 개연성이 있다고 한다. 보물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는 제주 관덕정이 1448년(세종 30년)에 건립 것으로 보아, 그 보다 앞서 한양에 사장射場이 세워졌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현존하는 활터 중 석호정의 뿌리가 깊고 역사적으로 많은 난관을 겪으면서도, 여러 활쏘기 문화가 석호정을 통해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옛 석호정 위치가 확인된 곳은 세 곳이다. 처음에는 무과시험장으로 사용되던 남소영南小營 활터이다. 남소영은 조선시대 수도방위 오군영五軍營의 하나인 어영청御營廳 분영分營으로서 중구 장충단의 남소문 옆에 있었다. 이 곳에서 1625년(인조 3년)부터 오늘날 전주대사습全州大私習놀이의 원조인 사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음 장소는 비파정琵琶亭 활터로 현재 장충단공원, 동국대학교 안에 있으며 옛 석호정 활터 표지석이 있다. 세번째 장소 역시 장충단공원 안에 있었다. 1930년 일제강점기 사진에 석호정이 나와 있는 데, 이 활터가 6.25 전쟁 중 불타므로, 인근에 있던 백운루白雲樓를 고쳐 활터로 쓰다가, 남산 터널공사로 인해 1970년 현재 위치로 옮긴 것이다.
 
〔백운루를 고쳐 만든 1960년경의 모습〕

 석호정과 황학정은 우리나라 국궁계의 쌍두마차와 같다. 황학정은 고종황제의 어진이 걸어 놓은 활터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과거부터 황학정은 정계 인물이 많은 반면, 석호정은 재계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제1회 전조선궁술대회가 1928년 개최 되었는데 이 대회를 계기로 '조선궁술연구회'가 구성되고, 그 중추적인 역할을 황학정 사원들과 석호정 사원들이 하게된다. 이듬해인 1929년 조선궁술연구회가 활쏘기의 고전인 『조선의 궁술』을 펴 냈다. 조선궁술연구회가 지금의 대한궁도협회 전신이다. 당시 석호정의 활쏘기 실력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조선의 궁술』에는 도성 안밖에 40개의 활터 이름이 나오는데, 도성 아래대(下村)의 석호정이 가장 오래된 고정古亭으로 표기하고 있다. 

 해방 후에도 석호정의 사회적인 위상은 대단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1949년 당시 나라의 지도자였던 백범 김 구(金 九) 선생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석호정을 방문했다. 사진에 보면 김 구 선생이 가운데 앉아 있고, 석호정 사두가 김 구 선생 좌측에 앉아 있다. 인촌 김성수(金性洙)도 사진 제일 우측에 보인다.  


 사진에는 석호정의 주련(柱聯) 4개가 보이는데 좌측부터 판독이 힘든 '동원몰남석東源沒南石과 판독이 명확한 이이위천하以利威天下, 관덕정심중觀德正心中, 쟁야기군자爭也其君子'가 붙어 있다. 이 4개의 주련은 석호정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구로 서 '우리 동이족의 근원은 남산 위 호랑이처럼 생긴 돌을 쏘아 몰촉시킨 민족으로, 활쏘기의 이로움으로써 천하에 위엄을 보이고, 덕을 살피는 활쏘기로 마음의 중심을 바르게 하니, 이런 다툼이야말로 군자답지 아니한가'란 해석이다. 사진 맨 앞에 앉아 있는 4명은 기생들이다. 이들은 한량이 관중을 하면 '지화자' 창唱으로 분위기를 띄워 주었다. 지금도 장안편사나 지방의 활터에서 전승되고 있다.

 석호정은 오늘날 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1959년 석호정 석봉근 선생이 청계천에서 구입한 중고 활로 석호정에서 시작한 양궁이 20년만인 1979년에 김진호가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양궁 초기에는 5.16 군사정부의 관심과 황학정 사원들의 국궁사법의 양궁접목, 국산 양궁개발 등의 역할이 많았다. 

 지금 석호정은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뒤, 소나무 숲길을 걷는 운치 있는 산책길 옆에 있다. 사대射臺에 서면 건너편 숲속의 과녁이 너무 아름다워 처음 방문하는 활꾼들은 찬탄을 금치 못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하는 남산의 경치를 즐기며 활쏘는 한량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활쏘기를 관람하며 관중하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명당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활터 환경에 걸맞게 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고,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시간을 제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국 대부분의 활터는 새벽 여명黎明부터 야사夜射까지 자유롭게 개방하므로 젊은이들이 직장에 구애받지 않고 활쏘기를 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석호정도 그런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현재 석호정은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라면 관설사정官設射亭인 셈이다. 서울시는 오랜 역사속에 빛나는 전통 활터의 보전과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활쏘기 문화 발전과 전통계승의 바탕이 되는 시대 변화의 물결에, 속도감과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는 정도가 관官과 민民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민생들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활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 석호정 사원들에게 운영을 맡기고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석호정 사원들은 신•구사新•舊射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국 최고의 활터 석호정의 발전은 물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활쏘기의 전통계승과 대중화 취지에 맞다고 할것이다. 

 두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덧붙인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대왕은 민생들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진흥코자 경복궁 안에 오운정五雲亭을 세우고 민간에게 개방하여 활쏘기를 장려하므로, 수천년간 전해오던 활쏘기를 크게 부흥 시켰다. 고종황제는 무과武科시험 폐지로 위기에 빠진 활쏘기를 우리 민족의 혼과 호국정신이 담겨 있다고 어명御命을 내려, 경희궁 안에 황학정 黃鶴亭을 세운 뒤 민간에게 개방하여, 전국 각지에 활쏘기가 되살아난 계기가 된 사실이다.  

 끝으로 정조대왕으로부터 활쏘기를 잘하지 못하여 벌을 받았다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남산 활터 詩로 마무리한다. 

 '봄날 제천(산벚샘)에서 마구 쓴시' (중략)...펄럭이는 새옷, 술병차고 /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자 앞을 지나는데 / 돌아보니 동자가 화살통을 짊어졌네 / 이들 모두 남산의 옛 활잡이들 아닌가 /...(중략) 

글을 쓰면서 참고한 책은 '우리 활터 석호정(나영일, 2012)'이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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