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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이름 유래- 살곶이정亭
태조 이성계의 화살 꽂힌 벌판에서 유래
기사입력 2020-10-27 오후 8:41:00 | 최종수정 2020-12-21 오후 8:41:38   
 살곶이정 이름은 '살곶이 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곶이 벌'은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점 동쪽의 너른 벌판, 뚝섬의 옛 이름이다. 한문으로는 '화살 전箭, 한강쪽으로 튀어 나온 땅이라는 곶串, 평평한 곳이라는 평坪을 써서 전곶평箭串坪'이라 불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자기의 뜻을 거스리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자들을 죽이고, 태종으로 등극하자 함흥으로 내려가 은둔한다. 이방원이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려고 여러 신하들을 보냈으나,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갇혀 돌아오지 못한다. 함흥차사가 생겼다. 세월이 흐르고 잇다른 신하들의 간곡한 청으로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를 태종은 이곳 중랑천에서 맞이하는데, 이때 태조가 아들 태종을 향해 활을 쏜다. 신궁神弓인 아버지의 화살은 빗나가 땅에 꽂혔다. 그 후 화살이 꽂힌 땅이라는 ‘살곶이 벌’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중랑천 군자교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살곶이정'은 30여년 전인 1987년에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이름으로 창정創亭하였다. 창정 당시 현재의 위치보다 군자교 윗쪽에 있던 군자정은, 10년 후 1997년 살곶이 다리 아랫쪽인 중랑천 하류로 이전하며 이름을 ‘살곶이정’으로 바꾸게 된다. 번창하던 정亭은 중랑천변에 주민통행이 많아지고, 체육시설과 인접하여 안전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이전 후 약 20년만인 2016년에 폐쇄되고, 2년 후 201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재개정하였다.
  
 왕위 계승 문제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치르며 왕위에 오른 태종, 부자지간의 애증이 서린 이곳 살곶이 벌판은 활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쏜 화살이 꽂힌 곳, 태종을 비롯한 조선왕실이 활을 쏘던 사냥터이기도 했고, 군사들의 훈련장이자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이며, 근처 답십리에 ‘활터마을’이 있던 곳, 인근에 '매 응鷹'자를 쓰는 응봉산鷹峯山 무학봉에서 활을 쏘면 화살에 맞은 새가 살곶이 벌에 떨어졌다는 얘기 등 활과 관련된 고사가 많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살곶이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보물 제1738호 살곶이 다리 '전곶교箭串橋'다. 왕십리와 뚝섬 사이로 흐르는 중랑천 하류 성동교 아래에 중랑천을 건너는 널돌다리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로 통행하는 길목이다. 영월로 유배길을 떠난 단종도 이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압구정도'에서 살곶이 벌과, 살곶이 다리 모습을 볼 수 있다. 

▲ 겸재 정선의 압구정도. 한명회가 압구정에 지은 정자인데 그림 왼쪽 상부에 멀리 중랑천과 살곶이 다리가 보인다.간송미술재단

 세종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공한 이 다리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방원이 살곶이 벌에서 사냥과 군사훈련을 할 때 살곶이를 건너기 위해 놓았다고 한다. 이후 살곶이 다리는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공사 때 석재로 징발당함으로써 훼손되었고, 을축년 대홍수엔 일부가 유실되었다.

 다리가 놓인지 6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돌다리를 걸어보면, 난간이 없는 다리가 주는 시원함과 돌이 주는 신선한 느낌에 발걸음과 마음이 진중해 진다. 살곶이정에서 중랑천 하류 방향 약 3.5km 거리에 있다. 쉽게 찾으려면 지하철 한양대역에서 내리면 된다. 살곶이정을 찾는 한량들은 한번 들려 볼만 하다. 지금 남아 있는 살곶이 다리는 일부 훼손 되었지만, 아직도 옛 교각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이다.
 
〔살곶이 다리〕

 살곶이정 이름에서 아쉬웠던 점은 '살곶이벌'의 역사에 걸맞게 활터 이름을 '살곶이터'라고 하면 더욱 고유한 역사적 가치를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순 우리말의 매력을 지닌 활터 이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경기도 안성에도 순 우리말로 된 활터 '마춤정'이 있다. 다른 하나는 매년 여름철 중랑천 범람으로 활터 피해를 걱정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설을 보강하는 일이다. 관할 구청과 정치가들은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취지를 살려, 활쏘기 대중화로 시민들의 심신수련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전국에는 천변川邊 고수부지高水敷地에 있는 활터가 많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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