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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정 閑山亭 - 충무공 忠武公 활터
간조•만조 때마다 거리감각이 다른 해전훈련 활터
기사입력 2020-11-03 오후 8:15:00 | 최종수정 2021-01-14 오후 8:15:13   
간조•만조 때마다 거리감각이 다른 해전훈련 활터

 한산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부하 군관들과 활을 쏘던 곳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많은 활쏘기 기록이 있는데, 한산정에서 활 쏜 기록이 대부분이다. 충무공이 이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수군水軍의 특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즉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해 실제 해전에서 적선敵船과의 실전거리 적응훈련에 좋아, '간조•만조 때마다 거리감각이 다르고 계절•날씨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는 해전海戰의 특수성을 감안했다'고 한다. 단순히 화살이 바다를 건너 날아가는 아름다운 활터 풍광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산도는 경상, 전라, 충청 3도 수군의 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있던 곳이다. 초대 통제사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임명됐다. 지금의 '통영統營'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충무공은 이곳에서 1593년(선조 26년)부터 1597년(선조 30년)까지 약 4년 동안 전쟁이 있거나 제삿날, 몸이 아픈날 등을 빼고는 군사들과 거의 매일 활을 연마했다. 인근 지역에 있는 환선정, 관덕정, 해운대, 진해루 등에서도 활을 쏜 기록이 있다. 『난중일기』에는 이들 활터에서 '수하手下들과 내기를 해 진 편에서 떡과 술을 내 배불리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차례 나온다. 한산정에서는 장군의 건의에 따라 1594년(선조 27년) 무과특별시험 별시別試가 치러졌다. 무과에 급제한 하삼도下三道 - 경상, 전라, 충청 - 출신 군관들이 백여 명 이었다고 한다. 

 당시 활이 전투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왜군의 조총 유효사거리가 약 50m인데 비해, 활의 유효사거리는 그 보다 약 2~3배 먼 무기였다. 물론 편전片箭인 경우 사거리가 훨씬 더 멀고 위력적이 었다.

 섬 앞 바다는 195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최대 해전海戰인 한산대첩閑山大捷이 펼쳐진 곳이다. 충무공이 학익진鶴翼陣으로 왜군 함대를 크게 무찌르고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했다. 조선 수군은 이 대첩에서 왜선 59척을 부수고 왜장 2명과 왜의 수군 8천여 명을 수장시켰다. 한산대첩은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권 율 장군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불린다. 

 공公은 한산대첩 이듬해인 1593년 전라좌수영의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기고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운주運籌는 '지혜로 계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부하들과 활을 쏘며 소통하고 작전을 세웠던, 오늘날의 해군 작전사령부와 같은 곳이다. 운주당 안에 수루戍樓와 활터가 있었다. 운주당은 충무공이 모략에 의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일어난, 정유재란 때 1597년(선조 30년)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왜군에 패하며 소실됐다. 후에 통제사 조 경(趙 敬)이 중건하고, '제승당制勝堂'이라 명명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제승은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제승당과 한산정의 모습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고증을 거쳐 - 충무공 유적지 정화사업 - 1976년에 신축되었다.

 〔제승당 내부〕
 
  『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진중陣中에서 약 7년간(1592년 ~ 1598년)에 걸쳐 붓으로 쓴   한문 일기본日記本으로, 국보 제7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전쟁과 관련된 기록과 함께, 당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난중일기』에 한산정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수군통제영 내의 활터 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은 많이 나온다. 『난중일기』와 활에 대해서는 다음 차례에 살펴보겠다.

 현재 충무공 시호諡號를 따서 지은 활터명 '충무정'이 전국에 세 곳 있다. 전남 여수시, 충남 아산시, 경북 영주시에 있다. 무武에 기반한 활터 이름 연무정鍊武亭은 여섯 군데가 있고 -인천시, 수원시, 태백시, 논산시, 거제시, 목포시- 열무정閱武亭이 통영시, 영암군 두 군데 있다. 이 밖에도 전국 활터 명칭 조사 자료를 보면, 무武의 명名을 지닌 활터가 전체 활터명의 15.6%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전통 활쏘기 정체성 확립 방안 수립, 문화체육관광부 연구 용역, 2011년 5월)

 〔한산정 과녁〕

 한산도는 견내량 아래 고성과 거제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섬 전체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선시대에 목장으로 활용했다. ‘한閑가한 산山’이다. 또는 ‘큰 뫼(한 뫼)’라는 뜻이 있다고도 한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도,제승당 가는 배로 들어갈 수 있다. 한산정 이용은 많은 관광객 안전을 고려하여, 약 일주일 전에 제승당관리사무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수루에서 본 바다〕 
      
 공公이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세운 망루인 수루戍樓에 앉아 지은 詩를 읇어 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정 이름 유래를 끝으로 활터 이름 유래를 마무리한다. 활터 이름 유래를 살펴보게 된 배경은 집궁 시절부터 관덕觀德, 천양穿楊, 덕유德游 등 '활터 이름 의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뤄 두었다가, 코로나 전염병으로 여유가 생겨 큰 맘 먹고 시작하여 지금까지 왔다. 사대射臺에서 '활 배웁니다' 말 대신 책장을 넘기면서 활 배우는 즐거움으로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력(Story)을 지닌 활터가 있으면 계속하겠다. 활쏘기 入門 시절 경험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내용 수준은 낮다. 

 지금까지 얻은 답은 '활터 이름에는 우리 조상들이 활을 쏘며 정신적으로 추구하던 理想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활터 이름 유래를 시작할 때는 용감했지만, 알아 갈 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시수矢數가 전부가 아니고, 외눈박이 활꾼이었음을 깨닫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심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은 있었으나, 아는게 별로 없는 빈수레 였다(활알못 : 활을 잘 알지 못하는 한량). 앞서간 한량들과 활 앞에 겸손해 진다. 다만 한량의 德目, 한량의 品格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글을 통해 舊射는 답을 찾고 新射는 질문을 가졌으면 좋겠다.

 다음부터는 활 문화와 관련된 얘기거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얘기거리(Story)가 있어야 전통유산(Heritage)이 되기 때문이다. 新射 시절부터 忠武公의 『亂中日記』, 茶山의 『牧民心書』는 알았지만 그들의 활쏘기 등 활 문화가 궁금했었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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