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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활쏘기의 산 증인 성낙인 옹의 사진
마지막까지 조선의 궁술을 전하고...
기사입력 2013-07-14 오후 11:03:00 | 최종수정 2013-07-29 오후 11:03:41   





아마도 이 사진은 성낙인 선생의 유품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사진은 날짜가 2001년 9월 21일이라고 찍혔으니,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사진 속의 배경은 성낙인 선생의 자택이고, 사진 속의 인물은 정진명 접장과 성순경 접장이다.

정 접장의 회고에 의하면 이 날 오후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주최한 <국궁 대중화의 현황과 과제>라는 세미나가 열렸고, 거기 참석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오게 된 까닭에 오전에 일찍 올라와서 문안을 드리러 갔다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는 느닷없이 찾아온 중풍 때문에 오른쪽 손발이 불편할 때였고, 마침 활을 정리하려고 마음 먹은 상태여서 당신이나 문안을 간 두 사람이나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표정이 밝기보다는 좀 엄숙한 분위기이다.

성낙인 선생은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의 외동아들로 해방 전에 집궁하였고, 1960년대 중반부터는 활터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황학정에 맺은 인연을 끝내 놓지 못하여 적은 황학정에 계속 두고 회비도 낸 까닭에 회원 신분은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김집 사두가 황학정의 역사를 정리할 때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즉, 한국 전쟁 통에 사라진 황학정기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가 그것의 복사본을 내주어 황학정기를 복원하는 데 기여를 했고, 또 <황학정백년사>를 쓰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고 몸소 고증하기도 했다. 국궁1번지인 황학정에서 근대국궁사를 정리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러다가 이 무렵에 황학정에서 회원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정리 대상이 되었고, 마침 풍도 맞고 해서 당신도 활터와 인연을 정리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고 전한다. 그러니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다.

국궁사에서 성낙인 선생이 중요한 이유는, 국궁계 내부의 변화 때문이다. 국궁계는 1970년대 들어 그 전과 엄청나게 달라졌다. 제도와 양식 그리고 풍속 면에서 환골탈태라고 할 만큼 달라졌고, 특히 개량궁이 등장하면서 사법까지 달라져서 양궁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궁체의 변화가 일었다. 그런 점에서 활터의 이같은 변화를 멀리한 원로 구사가 있다는 것은, 활터의 원래 모습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반가운 일이다.

마침 2001년도에 온깍지궁사회가 출범하여 우리 활의 옛 모습이 어땠는가 하는 실상을 찾을 무렵에 성낙인 옹과 연결이 되어 실로 성 선생의 고증은 옛 활쏘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디딤돌 노릇을 했다. 특히 <조선의 궁술>에서 묘사한 풍속과 사법을 정확히 아는 당사자에게 듣는 활 이야기는 너무나 소중하고 놀라운 체험이었다고, 성 선생을 만난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회고한다. 논어를 읽다가 공자를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사진 속의 인물인 성 접장과 정 접장은 물론이고, 입산 전까지 1년에 두세 번씩 서울로 찾아가서 문안을 드리곤 했던 장창민, 류근원 접장이 그런 경우이다.

이 두 사진은, 그런 관계를 나타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자신이 준 사진을, 유품으로 받아온 감회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착잡하다고 정진명 접장은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성 선생의 꼼꼼한 성품이 느껴진다. 우리 활의 본래 모습이 어떤지를 모르면 우리 활의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성낙인 선생은 오랜 세월 활터를 멀리했어도, 가장 중요한 기준과 가치를 국궁인들에게 일깨워준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활터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때 성낙인 선생은 그 해답의 중심에 있다.


성 선생의 입산 한 해 전인 2010년 1월19일
종로3가의 지중해 다방(지하) 앞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국궁신문

기사제공 :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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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전체 1   아이디 작성일
10년 rmatntks 2013.07.15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아름다운 인연의 끈은 이어졌습니다. 큰 나무는 늘 거기에 있었고 쉴 가지와 그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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