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굳이 묻지 않아도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에 가 닿기 전에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은 각궁이다. 각궁을 다루면서 각궁을 만들어낸 조상의 슬기를 배우고 그것을 다루면서 조상들이 한 동작과 몸짓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우리는 조상들이 걸어갔던 몸의 길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진정한 한량이 된다. 진정한 한량이란, 활을 쏘아서 과녁을 맞히는 기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궁과 죽시 속에 스민 조상의 숨결을 이해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이 활터에서 우리 활을 쏜다고 해서 진정한 한량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국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활쏘는 사람일 뿐이다. 외국인이 진정한 한량이 되려면 각궁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인들도 배우기 힘들어하는 각궁을 외국인이 배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두 가지 점에서 외국인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각궁 다루는 기술 자체와 언어. 국궁계에서 외국인에게 영어로 각궁 올리는 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국궁이 노인들이나 하는 운동이라고 알려진 마당에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춘 사람을 꼽자면 국궁계에서는 다섯 손가락도 남아돌 것이다. 그 만큼 힘든 일이다.

독일 궁사 칼 자일링거(Karl Zeilinger)의 한국 활 사랑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디지털 국궁신문>에 기사화 된 것을 비롯해서 근래에는 <조선일보>에서 몇 차례 그에 관한 기사를 다루어서 지명도가 꽤 올라갔다.

그런데 칼은 한국말을 잘 못한다. 그래서 칼이 독일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활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사람이 온깍지궁사회의 성순경 사계장이다. 성 사장은 평생을 외국계 은행에서 일한 까닭에 영어에 능통하다. 그래서 국궁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형편이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칼에게 성 사장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스승이다. 그렇지만 성 사장조차도 각궁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 사장은 칼에게 각궁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을 찾다가 온깍지활쏘기학교의 류근원 교두에게 부탁하기에 이른 것이다. 류근원 교두는 현직 영어교사이다. 게다가 각궁도 잘 다루니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독일 궁사 칼은 마침내 한국 활의 꽃인 각궁을 배우게 되었다.
 

2012년 12월 8일(토). 충남 논산. 성순경 명무의 집에서 칼의 각궁 공부가 이루어졌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올해 5월 14일에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각궁은 한두 번 곁눈질하고 다루어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점을 절감한 칼의 요구로 각궁 공부가 한 번 더 이루어진 것이다. 먼저 온깍지활쏘기학교의 류근원 교두가 각궁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설명하고 활을 얹을 때의 주의사항을 알려준 다음에 실제로 올리는 법을 시범 보였다.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활창애를 이용해서 얹는 방법과 도지개를 이용해서 무릎치기로 얹는 방법. 그렇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랐다. 유럽인들의 신체구조가 한국인과는 현저히 달라서, 한국인들이 아주 쉽게 하는 것을 유럽인들은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릎치기로 할 경우에 허벅지가 두꺼운 유럽인들은 시위를 얹은활에서 발을 빼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들까지 일일이 해결하며 가르쳐주어야 하는 일이어서 단순히 한국의 활량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도 많이 걸렸고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지만 각궁을 배우려는 사람의 열정과 가르쳐주려는 사람의 정성이 만난 자리에서는 장애가 있을 수 없다. 무려 5시간에 걸쳐 각궁 올리는 법을 가르치고 배웠다. 칼의 열정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각궁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떻게 그 소식을 접했는지, 각궁에 관심을 보인 한량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원래 성 사장의 시골집은 사람이 별로 드나들지 않는 한가한 곳이었는데, 이 날은 폭설이 내렸는데도 각궁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한량들로 시끌벅적했다. 청주에서는 장창민, 정진명, 윤석명 접장이 왔고, 군산에서는 윤백일 접장이, 안양에서는 박행섭 김상일 접장이 왔으며, 구리에서는 이정한 접장이 왔다. 덕분에 성순경 명무의 집안은 하루 종일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칼은 두 번째 각궁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야 서울로 돌아갔다. 오는 19일 출국을 한다고 하니, 아마도 이번 겨울에는 독일 하늘에도 각궁의 시위소리가 울려 퍼지리라. 각궁은 이렇게 세계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각궁이 전 세계인의 유산으로 한 층 더 품격 있는 자리매김을 하기 바란다

무사내외@국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