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담축제와 한-몽 친선 활쏘기
2002-08-08 12:11:39
1. 나담 축제란 무엇인가?
놀이라는 뜻을 가진 나담은 몽골 최대의 민족 축제이다. 나담축제는 그 역사가 한 200년 이상 오래된 몽골인들의 민족 축제인데 처음에는 산, 바위, 강의 신에게 예배하고 씨름, 활쏘기, 말타기를 즐기던 샤머니즘적인 고유 풍속에서 매년 8월에 시행되었으나 1921년 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활불 정부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은 7월 11일을 기념하기 위해 7월 11일부터 13일 까지 3일간 거행되고 있다.
몽골 최고의 축제일답게 나담때가 되면 몽골의 모든 가게와 관공서등의 모든 업무가 중지되어 마비되고 몽골인들은 이날을 위해 1년을 산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 동안 시골에서 떨어져 살며 못 보았던 친지들과 가족들이 울란바타르(수도)로 올라와 서로 마유주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휴가를 보내게 된다.
나담때면 씨름, 활쏘기, 말타기의 운동경기가 열리며 우승자에게는 큰 영예로 기억된다. 지방(시골)에서는 작은 나담이라 하여 나담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며, 볼거리가 많다.
[나담 활쏘기 대회 광경]
2. 초청을 받게 된 동기
2001년 5월 몽골 활쏘기 지역 협회장인 후두리씨등 3명이 이종영 교수(대구 팔공정)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동해지구 친선궁도대회에 참석하고 대구 및 경주와 서울을 관광하고 돌아갔다.
이에 대한 답례로 15명 정도 한국 궁도인을 초청하였는데 팔공정에서 김무석 사두, 정재권, 장석채, 이종영 접장, 김선이, 박순해, 최복집, 김순선 여무사, 여종철(사북 백운정), 오연이(의령 홍의정), 박동일(연천 학소정), 이석희(부산 사직정), 안장숙(안산 광덕정), 홍사순(서울 백운정)등 14명이 참석하였다.
관광 안내는 칭기스 여행사(몽골주재 함석규 사장)가 담당하였으며, 통역은 몽골대학 한국어과 4학년생인 뭉크 체첵이란 여학생이 하였다. 상량한 모습으로 정확한 한국어 실력이 수준급이었으며 매우 인상이었다.
3. 몽골 국가의 개요
1) 공식명칭 : 몽골(Mongolia), 몽골은 '용감한' 뜻은 지닌 부족명임
2) 독립일 : 1924. 11. 26일 중국으로부터 독립.
3) 위치 : 중앙 아시아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
4) 수도 : 울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 영웅이라는 뜻
5) 면적 : 156.7 만 ㎢(남북한의 7배)
6) 인구 : 242.3 만명(약 70만명이 수도에 거주)
7) 종족 : 할흐몽골족(81%), 카자흐족(6%), 테르베트족(3%), 브리야트족(2%)등 17개 부족
8) 언어 : 할흐몽골(khalkh mongolia)
9) 기후 : 건성 냉대기후(평균온도, 겨울 -25, 여름 18도)
10) 종교 : 라마교(94%), 이슬람교(6%)
4. 관광일정
7월 9일.
16시 25분 경에 인천 국제공황을 출발하여 20시경에 몽고에 도착하였는데 출발할 때 국궁장비가 스포츠 용품이 아니고 무기류로 분류되어 있어 약간의 애로 사항이 있었다. 결국 장비는 같은 비행기로 가지 못하고 다음날 비행기로 뒤 따라왔다.
몽골의 하루는 매우 길게 느껴진다. 아침 5시에 해가 뜨고 저녁 10시에 해가 지고 11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이 날은 자이산 전망대를 구경하였다. 이 곳은 1965년에 세운 2차 대전중 러몽 연합군의 승전 기념탑이 있는 곳이며, 울란바타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전망대이다.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7월 10일.
테를지 국립공원을 관광하였다. 가는길에 오보(성황당)를 구경하고 몽골에서 유명한 거북 바위도 구경하였으며, 대초원에서 말타기를 즐기며 유목민의 집을 방문하여 마유주와 빵과 치즈를 대접받고 답례로 담배와 우리나라 동전과 달러화 등을 주었다.
숙소는 옛날에 공룡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거대한 공룡 모형이 있는 겔(유목민집)에서 잤는데 여기에는 활을 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모두들 열심히 몽골 활쏘기를 즐겼다.
7월 11일.
이날은 나담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일찍 떠났다. 규모가 크고 국가 행사인 나담 축제는 11시에 시작되었는데 국가적 축제답게 규모가 크고 광경이 장엄하였다. 인상적인 것은 옛날 사용하던 국기와 왕이 타던 수레의 행진이었다.
개회식이 끝난후 행사장을 나와 활쏘기 경기가 행해지는 곳으로 갔다. 엄청나게 큰 규모였다. 6개 라인이 설치되었고 관람석은 발디딜 곳이 없었다. 남녀 구별없이 혼성으로(남3명 7미터, 여2명 60미터) 활쏘기를 하는데 몽골 민족이 세계를 제패하였다는 그 저력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다시 멍겅모리트란 휴양지로 떠났다. 도중에 바가노루라는 지방도시(석탄광산지대)에 도착하였는데 거기에는 나담 경마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경마대회는 18km를 남의 도움없이 달리는 경기인데 참가 자격은 나이가 남녀 공히 5세에서 11세까지의 어린이들이며 말은 3년생 이어야 참가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몽골인 전통 복장인 푸른색, 붉은색의 비단옷을 입고 말 위에 서서 비호같이 달리는 모습은 경탄을 뛰어넘어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등위는 5등까지를 시상하는데 수상자는 평생을 간직하는 영광이라고 한다.
자욱한 먼지속을 일망천리한 초원 위를 총알같이 달리는 어린모습(우리나라 유치원생 정도)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람 인파는 오육천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모두 자동차 아니면 말을 타고 왔으니 그 말 구경이 장관이었다.
7월 12일.
멍궁 모리트 휴양지에서는 겔(유목민집)에서 잤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옆에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돌무덤이 있고 주위에는 많은 유목민이 양과 말을 방목하고 있었다.
말타기를 하고 유목민 가정을 방문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우리 일행을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전통 풍습에 대한 설명과 전통 음식을 대접받았다. 한국과 몽골인의 정을 나누는 화기 애애한 분위기였다.
여기는 우리 일행을 위하여 특별히 활을 쏠 수 있는 관혁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가죽을 생긴 그대로 네모난 틀 위에 메워놓고 활쏘기를 하여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오연이, 홍사순 여무사와 여행사 운전기사인 폰착다와, 바트이레뒤씨가 열심히 하였고 다른 일행은 종일토록 말달리기를 하였다. 밤에는 한,몽친선 디스코 대회가 열렸는데 몽골측에서는 낮에는 말타기를 도아주던 주위의 유목민과 식당의 주방장 요리사 관리인등 10여명과 함께 새벽 2시가 넘도록 몽골의 술과 음식을 즐기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영원한 추억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동작과 즐거움의 표현은 지구촌 어딜 가나 같은 모양이다.
7월 13일.
한,몽골 친선 활쏘기를 종일토록 하였다.
칭겔테 지방인데 울란바토르에서 30분 거리였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여 보니 100여명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환영하였고 몽골식 관혁과 한국식 관혁을 규격에 맞추어 특별히 제작, 설치(145미터)되어 있었다. 몽골 활쏘기 총회장인 엥흐타이왕씨와 칭겔테 지역 협회장인 후두리씨가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서로 상견례를 하였다.
[필자의 몽골 활쏘기 광경]
한국측은 팔공정 김무석 사두님이 한 사람씩 소개하였고 몽골측은 엥흐타이왕 총회장이 소개하였다. 그리고 서로 짝을 이루어 서는 순서였다. 나는 한 30살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짝이었는데 조그마한 키에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전통 의상을 입고 청순해 보이는 모습에 상냥한 웃음으로 열심히 몽골 활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성의에 감사하여 기념 사진도 촬영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편전(애기살) 하나를 선물하였다. 그는 매우 좋아하였고 오래도록 간직하겠다고 하였다.
우선 활쏘기 진행 방법은 먼저 몽골활로 몽골 선수 남자 3명, 여자 2명이(남자 70미터, 여자 60미터) 화살 4개씩을 가지고 쏘고 다음에 그 자리에서 우리 일행 남자 3명, 여자 2명이 몽골식으로 쏘았다.
한 순 경기가 다 끝나고 나서 한국 관혁에 한국선수 5명이 5개 화살을 먼저 쏘고 다음에 몽골 선수 5명이 5개 화살을 한국 관혁에 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몽골 선수들이 예상외로 잘 쏘았다. 보통 2, 3중은 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몽골 궁사의 우리 활 쏘기]
오후 8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승부는 무승부로 하였고, 기념품을 서로 증정하였다.
몽골측에서는 총회장이 우리측에게 감사장 수여가 있었다. 한 사람씩의 소개와 감사장 수여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우리측에서는 준비해간 활과 화살을 증정하였다. 매우 고마워 하고 신기해 하였다.(활 3장, 화살 30개)
이어서 회식 시간이었다. 호르혹이라는 특별 요리가 준비되었다. 이 요리는 잡은 염소고기를 토막내서 불에 달군 돌과 함께 감자, 당근, 마늘, 파(야생종)등을 밀폐된 용기에 넣고 1시간 정도 지나면 잘 익는다. 이를 마유주(말 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약 4도 정도)와 함께 먹으면서 여담의 시간을 즐겼다.
돌아오는 시간에 후두리씨 아버지가 운영하는 활 만드는 공장에 들려 몽골 활 제작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7월 14일.
귀국 길에 올랐다.
8시 10분 : 아쉬움을 남기면서 몽골의 울란바토르 국제 공황을 이륙하였다.
8시 40분 : 비행기 창 밑으로 한없이 펼쳐진 항토 벌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비 사막위를 날고 있는 것 같았다.
9시 40분 : 북경 상공을 통과하면서 아래를 보니 도시의 규모가 매우 커 보였다.
9시 50분 : 바다가 보이고 둥근 해안선이 나타난다. 큰 도시도 보인다. 청진 아닐까? 비행기가 방향을 동쪽으로 향한다.
10시 04분 : 낮게 떠 있는 구름 사이로 바다와 섬들이 보인다. 서해에 접근 중이다. 여기는 대~한민국.
11시 00분 : 인천 공항에 안착하였다. 출국할 때와 같이 또 다시 활과 화살 보따리를 다 풀라고 하지는 않을는지?
5. 몽골 활쏘기의 경기 방식
1) 거리 : 남자 70미터, 여자 60미터(여자는 남자 앞 10미터 전방에 선다)
2) 작대 : 1대는 남자 3명, 여자 2명이며, 화살 차는 법과 깍지 끼는 법, 줌 보는법, 짜는법등은 우리와 거의 유사하다. 1순은 화살 4개.
3) 관혁.
[오하이, 관중하였습니다]
- 지면 3미터 안에 들어가서 표척을 쳐야 관중으로 인정
- 총 40개의 화살을 발사하며, 1차 20발 최고 득점자, 2차 20발은 줄없이 원통만 놓고 최고 득점자가 우승 차지.
글, 사진 : 경기도 연천군 궁도연합회장 박동일
국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