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이 꽃 피운 활-⑥

입력 : 21.05.19 15:53|수정 : 21.05.29 15:53|국궁신문|댓글 0
사예결해, 사법비전공하, 사결, 정사론

정조대왕이 꽃 피운 활-⑥
- 조선의 사법서 : 사예결해, 사법비전공하, 사결, 정사론
 
 우리나라 고유의 사법서는 정조 시대에 처음 나왔다. 정조 1년(1777)에 「사예결해」를 시작으로, 정조 22년(1799)에『사법비전공하』가 발간되었다. 「사결」은 정조 때에 쓰였지만 그 후에 나왔다. 사법서가 나오기 전 수천 년 동안은 궁술이 구전口傳되어 오거나, 일부 식자識者들이 중국의 사법서를 읽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활쏘기는 무과 시험이나 사냥, 전쟁 또는 내기와 같은 실전에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활쏘기를 잘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잘 남아 있다. 『조선의 궁술』에 실려 있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많은 선사善射들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의 혈통에 흐르는 활쏘기 유전자를 보는듯하다. 
 
 임진왜란(1592년)을 겪으면서 선조를 비롯한 후대 왕들이 활쏘기를 장려하고, 과거시험에 무관을 많이 등용했다. 광해군 때는 변방 경계를 위해 한 해에 만여 명을 뽑아 만과萬科라는 명칭이 생겼다. 현종 때는 신분이 낮은 백성들 까지 활쏘기로 무과에 등과하여 벼슬을 바라며, 한성에 유숙하는 사람이 이만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성의 쌀값이 급등했다. 문관이 무관을 업신여기는 정도가 심해지고, 사대부 자제들이 무과에 응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폐단이 있던 반면에 궁술이 전국에 보급되고 활터가 많이 생겨났다. 『조선의 궁술』에 나오는 얘기다. 어느 시대 보다 활쏘기가 번창하던 시기였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궁술교범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사법서는 활을 주로 다루던 무인들 보다 문인들이 한문으로 썼다. 우리 고유의 전통 사법서는 네 가지로, 정조 시대에 나온 세 가지와 고종 때 발간된 『정사론正射論』있다. 정사론은 저자가 유일하게 무인이다. 이 중에 두 가지 사법서는 수 세기 동안 묻혀 있다가 한 학자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조선의 궁술』은 최초 사법서가 나온 후 152년이 흐른 뒤, 일제 시대 1929년에 발간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시대 사법서 의미를 순서대로 살펴본다. 
 
1. 사예결해 射藝訣解
 최초의 전통 사법서로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가 2018년 발굴되었다. 약 세 쪽 분량의 짧은 규범이지만 한량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유적 표현들이 여럿 실려 있다. 사법약언射法約言(활 쏘는 법을 요약한 말)이다.
□ 시위에 메긴 살의 오늬를 깍지손으로 감싸면 그 형세가 ‘기울어진 지붕의 서까래’와 같다. 
□ 시위를 다 당겨서 만작한 뒤에는 활의 몸체가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있는 형상’ 이 된다. 실제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가는 모습이 궁금하다.
□ 시위를 놓는 것은 ‘천리에 뻗친 큰 산맥의 흐름에서 끝내는 단지 한 혈처穴處를 찾기 위함이며 그 혈처를 비켜나가지 않도록 따지는 것과 같다.’ 풍수지리에 쓰는 말이다. 
□ 발시는 시위를 당기면서 마치 ‘빨래를 짜듯 양손을 비틀고 기운과 숨을 들이쉰다.’ 집궁할 때부터 듣던 말이다.
 
2. 사법비전공하 射法秘傳攻瑕
 정조 22년(1799)에 발간된 사법서다. 평양감영, 곧 기영箕營(평양감영을 달리 이르던 말)에서 군사훈련 목적으로 발간한 책이다. 원전은 중국의 병서인『무경칠서휘해武經七書彙解』〈청대淸代(1700) 주용(朱墉)이 편찬한 병서〉말권末卷을 번역하여 복간한 것이다. 당시 무과시험 과목에『무경칠서』강독이 들어 있었다. 
 조선에서 『사법비전공하』는 훌륭한 사법교범으로 인정 받았다. 후에 발간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사결射訣」의 내용 중 70%가 이 책을 인용했다고 한다. 번역 초기에는 우리나라 전통 사법을 담은 비전이라거나, 원본이 단행본이라고 알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자가 바로 잡았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에도 『사법비전공하』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어 『사학비수공하射學秘授功瑕』란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동안 국궁과 일본궁도가 매우 다른 체계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사법비전공하』를 통해 중국, 한국, 일본의 궁술계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궁술을 공유하고 교류해 왔다는 것이 사실이 드러났다. 
 
무경칠서휘해 / 정사론                      
 
3. 사결 射訣
 『임원경제지』「사결」은 정조 때 초계문신 출신으로 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낸 서유구徐有榘가 저술한 사법서이다. 그는 정약용과 함께 실용적 세계관을 지닌 실학자로서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임원경제지』는 당시 나라의 근간이던 농업을 중심으로한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이다. 총 16부로 나누어 농업, 제조업, 상업, 예술, 교양, 취미 등 각 분야별로 내용을 정리했다. 활쏘기 수련과 관련된 사결은 13부 《유예지遊藝志》에 실려 있다.  
 사결에는 서유구가 젊은 시절 활을 잘 쏘지 못한 경험을 살려, 실제 자신이 활을 배우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정보를 모아 글을 썼다. 이런 바탕에서 활쏘기 기초부터 활과 화살의 관리법 까지 전과정을 체계화 시켰다. 처음 배우는 사람의 연습법(초학연습初學練習)을 시작으로, 활쏘기 바른자세(임장해식臨場楷式), 자세의 결점(자병疵病), 바람과 기온(기풍風氣), 활과 화살 제조와 보관법(기구器具) 등 당시 활쏘기의 수련방식과 궁시弓矢 관리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또한, 『임원경제지』는 당시의 활쏘기 풍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임원林園의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활터(射亭)의 모습에 대해서는 14부 《이운지怡雲志》에, 활쏘기 의례儀禮였던 향사례鄕射禮에 대해서는 12부《향례지鄕禮志》에 실려 있다. 이 책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나라가 망한 시대 1930년대에 세상에 나왔다. 평생 실학을 추구하며 30여년동안 골몰하여 쓴 책을 ‘장독대 덮개로 쓰기에는 충분하다’고 했으니, 겸손함이 더운 여름날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근 듯 서늘하다.   
 
4. 정사론 正射論
 조선 시대 제일 나중에 나온 사법서로, 고종 9년(1872)에 장언식張彦植이 지었다. 그는 첨절제사僉節制使(조선 시대 각 진영에 속하였던 무관직으로, 절도사節度使 아래이며 ‘첨사’라고도 부름)를 지낸 무인이다. 
 이 책이 나오기 약 70년전 순조 8년(1808)에 훈련대장을 지내던 김조순이 활쏘기에 관해 그의 친구 심상규와 주고받은 한시漢詩가 있다. 시에 나오는 ...彼爲地中蝟(피위지중위. 저는 땅속의 고슴도치요) 我爲枝上鵲(아위지상작. 나는 나뭇가지 위의 까치라네)... 구절의 彼와 我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정사론』을 훑어보다가 이 글자가 눈에 띄어 시야가 트였다. 彼와 我란 용어가 김조순과 심상규가 주고받은 한시에 쓰인지 약 70년 뒤에 『정사론』에도 쓰였다. 사법이 이어져 오면서, 이 용어도 계속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彼와 我가 정확하게 어떤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는지 밝혀야 할 부분이다.
 
 『정사론』 제22편 관련 부분이다.
 “얼굴〔面〕과 체(體)는 활쏘기〔射〕의 나〔我〕이다. 팔〔臂〕과 마디〔節〕는 활쏘기〔射〕의 저〔彼〕이다. 저 것〔彼 : 팔과 마디〕이 먼저 나〔我 : 얼굴과 체〕를 따르면 활쏘기〔射〕의 규〔規〕이고, 내〔我〕가 먼저 저것〔彼〕에 따르면 활쏘기〔射〕의 불규〔不規〕이다....저〔彼〕와 내〔我〕가 바르면 사체(射體)는 간극(間隙)이 없고, 사체(射體)에 틈(隙)이 없어야 하나로 합치되어 이룬다.” 
 面與體射之我也 臂與節射之彼也 彼先從於我則射之規 我先從於彼則射之不規 ....彼我若與正則 射體無隙 射體無隙則爲一合而成
〔출처. 정사론(김세현 국역).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학예지 제15집. 2008〕
 
5. 사법서 발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우리나라 전통 사법서는 조선 시대에 발간된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세 가지가 정조 시대에 쓰였다. 서영보의 『사예결해』, 평양감영의 『사법비전공하』, 서유구의 「사결」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종 때 발간된 장언식의 『정사론』이다. 모든 사법서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책으로 발간되었고, 사예결해는 『전통활쏘기연구』(창간호. 2021. 4)에 실렸다. 
 
 우리 고유의 네 가지 사법서 중 두 가지는 근래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서영보의 『사예결해』와 장언식의 『정사론』이다. 역사학자이며 한량인 김기훈(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의 숨은 노력의 결과이다. 전문가들의 해석을 거쳐 『정사론』은 2008년에, 『사예결해』는 2018년에 발표하였다. 그는 이밖에도 『사법비전공하』가 『무경칠서휘해』 말권을 복간한 것이고, 『사법비전공하』가 한·중·일 삼국이 공유한 사법의 뿌리라는 사실을 밝혔다. 전통활쏘기에 대한 연구가 잠자고 있던 귀중한 문화유산을 찾아내 세상에 알린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규장각, 조선왕조실록,  사계射契 등 역사 속에 묻혀있는 귀중한 활문화를 발굴하고 계승해야 한다. 열악한 연구 조건에서 열정만으로 전통활쏘기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몇몇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Walking Dictionary)을 잠재우지 말아야 한다. 세미나 개최, 학술지 제작 등 얼마 되지 않는 연구비를 걱정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전통활쏘기연구회 몇몇 사람의 열정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끝으로, 우리나라 전통 사법서가 나오기 전 식자識者들이 쓰던 중국의 병서(사법서 포함)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 기효신서紀效新書. 명明의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병서. 임진왜란 때 이병서를 활용하여 왜군을 물리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선조가 이 책을 연구하여 훈련도감을 두고 삼수(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를 조직하였다.
□ 사경射經. 당나라 왕거(王琚)가 쓴 책이다. 중국 최고의 사법서로 사법에 대한 논리와 내용을 교리敎理처럼 다루고 있는 경전과 같다 하여 사경射經이라 한다. 관련 용어로 사결射訣, 사법射法, 사학射學, 사보射譜 등이 있다.
□ 유향(劉向). 전한 말기(BC206~BC8)경 최초의 사법서인 열녀전烈女傳 저자
□ 이정분(李呈芬). 중국 명나라 시대 사경射經의 저자
□ 몽계필담夢溪筆談. 송宋나라 심괄(沈括)의 저서로 활과 화살 제작 공학기술서
□ 무경칠서휘해武經七書彙解. 청대淸代(1700) 주용(朱墉)이 편찬한 兵書
□ 고 영(高 潁). 1638년 2월 15일 무경사학입문정종(武經射學入門定宗 : 상·중·하 3권)과 무경사학입문정종지미집(武經射學入門定宗指迷集 : 1~5권) 사서를 발간하여 동아시아 궁술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사람
□ 고공기考工記. 활 및 화살 제조법에 관한 전문연구서로서 중국 청나라 이전까지의 제작방법을 기록해 놓은 서적
 
양희선(서울 화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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