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④ 좌수영 어구정

입력 : 23.03.22 14:59|수정 : 23.03.22 14:59|국궁신문|댓글 0
18세 중반, 왜구를 경계하고 무사들의 궁술 훈련을 위해 설립

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④ 좌수영 어구정
18세 중반, 왜구를 경계하고 무사들의 궁술 훈련을 위해 설립

부산 수영구에 있는 좌수영에는 네곳의 활터가 운영되었다. 좌수영 성내에는 ‘명후정(명후당)이 있었고, 남문 밖에는 어구정과 청곡정이 활쏘기와 관련한 기록을 갖고 있다. 또한 좌수영 남쪽 5리 지점에 수군의 장대(將臺)가 있었는데 도시를 치렀던 연무정이다. 이번에는 좌수영 남문 밖 활터 ‘어구정(禦寇亭)’을 소개한다.(심곡)

■ 여지도서(輿地圖書)  1759년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이다. 『여지도서』의 「수군절도영(水軍節度營)-좌수영(左水營)」편에는 3곳의 활터에 대한 기록이 있다. 특히 「좌수영지지도(左水營之地圖)」에는 ‘연무정과 어구정’에 과녁이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 어구정(禦寇亭) 武士試才所
   무사의 재주를 시험하는 곳이다.
○ 연무정(練武亭) 將臺
   장대(將臺)이다.
○ 좌수영지지도(左水營之地圖)
   지도 명칭은 “좌수영지지도(左水營之地圖)”이며, 좌수영과 성 밖에 있는 활터인 어구정과 장대(연무정)과 표시되어 있다. 좌수용지지도에서 좌측에 연무정이 있으며, 장대(將臺)로 표기되어 있다. 위쪽에는 정자가 있고 아래 쪽에는 과녁인 솔대에 솔포가 걸려있다. 활터 둘레로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좌수영의 왼쪽에는 어구정이 표기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정자가 있고 왼쪽에는 작은 둔덕이 있으며 솔대에 솔포가 그려진 과녁이 있다. 연무정(장대)과 어구정은 지도상에서 좌수영의 남쪽에 위치한다.
 

[좌수영지지도]


[어구정 정사 및 과녁]
 
 
■ 내영지(萊營誌) 1850
  -『國譯 萊營誌』. 2001. 釜山廣域市史編纂委員會
   『내영지(萊營誌)』는 1850년(철종 원년) 경상도 동래부 관내에 자리 잡고 있던 경상좌수영에서 편찬한 영지(營誌)이다. 활쏘는 장소로 3곳의 기록이 있으며, 어구정과 명후정의 사정기문(射亭記文)이 있다. 어구정의 기문을 소개한다.

○ 어구정(禦寇亭)
   남문 밖에 있다. 곧 활쏘기 연습하는 곳이다.
○ 연무정(練武亭)
   남문 밖 5리에 있다. 수군의 장대(將臺)이다.
○ 명후정(明侯亭)
  본영의 남루(南樓)를 수선하여 익종(翼宗) 기축(己丑, 1829년)년에 수사(水使) 안광찬(安光贊)이 새로 건립하였다.
 
◇ 어구정 ◇
○ 어구정기(禦寇亭記), 구간(具侃, 1757년 수사로 부임)이 기문을 지었다.
   이 정자에 편액을 어구정이라 하여 걸어놓은 것은 무슨 뜻인가?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문을 겹으로 설치하고 딱딱이를 쳐서 도적을 대비하고", "활과 화살의 예리한 무기로 천하에 위엄을 나타낸다"1)고 하였고, 몽(蒙)괘의 상구(上九)에 "도적을 막아내는 데 이롭다" 2)하였다. 그러한즉 국가에서 관문을 설치하고 활 쏘는 재주를 익혀서 난폭한 도적을 막아내는 것은 또한 우리 성인의 가르치심이로다. 

  보잘것없는 내가 재능이 없음에도 임금의 커다란 은혜를 입어서 중대한 직책을 맡았으니, 충성심으로 남쪽 변방에 대한 염려를 덜고자 병졸들을 다그치고 활과 화살촉을 정하게 단련하면서도, 우리 장수와 병사들을 온전하다 여기지는 아니하는데, 태평시대 백년 동안 예사로 날을 보내느라 무예를 가르치던 옛 집의 들보와 도리가 흔들려 무너지고 또 본영의 옛 터에는 꺼리는 일이 있었다. 이에 봉급을 할애하고 재목과 기와를 모아서 새 터를 잡아 예전보다 규모를 넓혀서 늦봄에 공사를 시작하여 초여름에 낙성하였다.

  건물이 높이 치솟아 시계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이른바 대마도(對馬島)와 대판성(大板城)을 마치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듯하다. 그런즉 무릇 우리 장수와 병사들로서 활을 잡고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화살 끝을 주목하고 활시위를 울리면서 적개(敵)의 강렬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자 없으리라. 이 소문이 이르는 곳이면 먼 곳의 사람들도 두려워할 것이니, 또 어찌 화살과 화살촉을 낭비할 일이 있겠는가?

 오직 우리 장수와 병졸 및 각 진의 군교(軍校)들은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하나로 하여, 억센 활을 당기고 긴 화살을 사용하여 명중시키는 재능을 힘써 가꾸어서 미리 적을 방비하는 계략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위로는 국가의 수 백년 은혜로이 기른 혜택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주장(主將)이 새로운 정자를 건립하고 이름 지은 뜻에 부응하도록 한다면 참으로 만 번 다행이겠다. 우리 원수(元帥)께서 이미 제 과녁도 맞추지 못하면서 장수와 졸개들에게 책망은 잘 한다고 한다면, 분명코 이는 스스로를 경계하는 데 하나의 도움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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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1) ≪주역(周易)≫ <계사(繫辭)> 상(上)에 문을 곁으로 설치하고 딱딱이를 쳐서 도적을 대비함은 예(豫) 괘에서 취한 것이다[重門擊柝 以待暴客 蓋取諸豫]"라고 하였고, 또 "나무를 굽혀서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화살을 만들어 활과 화살의 예리한 도구로 천하에 위엄을 나타냄은 규(睽) 괘에서 취한 것[弦木爲弧 剡木爲矢 弧失之利 以威天下 蓋取諸睽]"이라 하였다.

 주석2) ≪주역≫ <몽(蒙)> 괘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격몽(擊蒙)이니 도적이 되면 불리하고 도적을 막음에 이롭다[擊蒙不利爲冠利禦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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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2 지방지도(경상좌수영영지도형, 慶尙左水營營址圖形)
   - 활터명칭: 사정(射亭), 장대
     좌수영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동 일대에 있었으며, 사적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활터는 ‘사정(射亭)’으로 표기되어 서문과 남문 사이 성 밖에 있으며, 남문 방향으로 장대가 있다. 사정으로 표기된 부분은 ‘어구정’으로 추정되며, 장대의 이름은 연무정이다. 여지도서에 포함된 지도에는 장대와 사정(射亭)에 과녁인 솔포가 그려져 있다.
 
[1872지도. 좌수영 장대 및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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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소개될 내용은  「동래부순절도와 동래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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