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과녁의 향기
2008-12-22
2008-12-22
과녁의 향기
궁대를 띠고 설자리에 나서면
과녁은 꽃송이처럼 부풀고
마음은 벌처럼 그곳으로 날아간다
무겁으로부터 날아드는 향기에
처마 밑 공기도 환히 부푼다.
상은 마음에 따라
거울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 같기도 한 것.
세상은 공평하여
헛것일수록 분명하게 잡히니
신기루가 목마른 자에게 더욱 실감나듯
눈 먼 자들을 위하여
과녁은 저렇듯 마음속에서 빛나다.
그러니 부푸는 과녁은 부푸는 대로 두고
옥빛으로 빛나는 처마 밑 공기도 그대로 두는 것이
헛것에 씌이지 않는 일이다.
가장 올바른 명중은
마음을 거두어
과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
그럴수록 향기는 더 멀리
더 진하게 따라온다.
그대가 과녁을 놓을 때
과녁이 비로소 돌려주는 것이 있어
그것으로부터 꽃의 향기가 나나니,
과녁은 한 송이 탐스런 꽃이다.
【출처】활에게 길을 묻다|고두미 기획시선1|정진명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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